[新난중일기] 군인의 사생관 확립은 선택이 아니다

싸움이 치열할 때 판옥선 사이로 용머리를 내민 거북선이 적선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한다. 적선이 산산조각날 때면 조선 수군(水軍)의 사기는 하늘을 찌른다. 상상할수록 짜릿하다.​​

한편, 거북선 안에 있던 승무원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돌격용 거북선이 적선을 들이받는 충파(衝破) 전술에서 내부 승무원은 적진에 몸을 던져야 한다. 거북선 출정을 명하는 북소리가 울릴 때면 심장이 멎을 듯한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충파로 인한 굉음과 충격으로 거북선 내부는 아수라장이 된다. 아비규환 속에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을 떨칠 수 없다. 거북선의 위용있는 돌격 이면에서 승무원들은 생사에 관한 고뇌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군은 적과 싸울 때 무력의 행사에 필요한 여러 요소를 통합한다. 이 요소들은 유형전력과 무형전력으로 나뉜다. 효과적 전투력 발휘를 위해서는 이 둘의 균형과 조합이 필요하다. 유형전력은 실체와 가치가 존재하는 형태가 분명한 힘이다. 병력, 무기체계 등 외형적 자산을 말한다. 반면, 무형전력은 유형전력처럼 실체와 가치가 존재하지만, 형태가 없다. 사기, 군기, 대적관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무형전력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확고한 사생관(死生觀)이다.​

거북선 운용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케 한 것은 무엇일까? 명확한 사료에 의한 확인이 쉽지 않지만, 불심(佛心)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순신은 전란 중에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난 스님을 승장(僧長)으로 임명했다. 이들은 의승군(義僧軍)으로 구성된 표호별도장, 유격별도장, 양병용격장 등과 같은 돌격대의 지휘를 주로 맡았다. 사생관이 확실한 승병들은 돌격대에서 목숨을 거는 선봉장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다. 육군의 돌격대 역할을 해전(海戰)에서는 의승수군(義僧水軍)이 탑승한 거북선이 수행했다.​​

전라남도 구례에는 화엄사 말사(末寺)인 연곡사가 있다. 보물로 지정된 동승탑비(東僧塔碑)가 있는 단정한 절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스님은 머리가 용이고 몸통이 거북이인 연(鷰)을 타고 왔다고 한다. 이 연은 몸통 위에는 날개를 달고 있어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넌다. 동승탑비는 이 연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사진은 구례 연곡사

전라남도 구례에는 화엄사 말사(末寺)인 연곡사가 있다. 보물로 지정된 동승탑비(東僧塔碑)가 있는 단정한 절이다.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스님은 머리가 용이고 몸통이 거북이인 연(鷰)을 타고 왔다고 한다. 이 연은 몸통 위에는 날개를 달고 있어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넌다. 동승탑비는 이 연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화엄사 자운대사는 이순신의 군사자문이자 승군대장이었다. 자운대사의 진중일기에 따르면 동습탑비 모양을 따라 거북선을 설계했다고 한다. 불행히 진중일기가 일제에 탈취된 탓에 사실 확인이 곤란하다. 나주 출신 군관 나대용이 거북선을 개발했다지만, 이 또한 공식기록이 아니기에 두 주장을 균형있게 살필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자운대사가 거북선 설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돌격용 거북선의 탑승에 사생관이 확고한 의승수군을 기획단계에서부터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불교는 호국불교라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언뜻 보아서 살생을 금하는 스님이 승군이 되어 참전하는 것이 모순으로 비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930여 차례의 외침을 받으면서도 침략전쟁을 단호히 거부했다. 따라서 외침에 의연히 맞선 우리의 호국불교는 숱한 생명들을 보호하는 불교의 정법을 따른 것이다. 나아가 불심이 사생관이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친 터라 분연히 전장에서 목숨을 던질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 승군의 첫 활약은 고구려 때 살수대첩이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항마군이라는 정규군으로 활동한다. 특히 화통도감을 통한 화약제작과 화포 운용을 비밀리에 담당한 기술요원들은 모두 승군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億佛) 기조로 인해 승군을 유지할 수 없었지만, 전란이 발생하면 전국에서 의승군이 들풀처럼 일어나 싸웠다.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에서 싸운 휴정, 유정, 영규, 처영 등 수많은 스님들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 갑오경장으로 승군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누란 때마다 승군은 빠짐없이 등장하였다.

아울러,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한 호국불교가 전장에 나간 군사들의 사생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임전무퇴의 기상 화랑 관창은 적진에서 목숨 버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금산전투에서 조헌이 이끄는 의병과 달리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승병은 이름없이 유명을 달리했다. 사생관 확립에 기여한 호국불교의 진수는 신라의 <세속오계>, 고려의 <훈요십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10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군에서 종교행사 참여 강요는 종교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하였다. 강제적 종교행사로 병영 내에서 크고 작은 폐단이 발생했다. 심지어는 종교에 대한 거부감까지 갖게 만들었다. 이제는 군에서 종교행사 참여를 강제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종교행사를 찾는 장병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사실이다.

거북선 사례처럼 종교가 전투력에 미치는 힘은 실로 막대하다. 종교에 기반한 사생관은 무형전력의 핵심이다. 장병들이 각자의 종교를 갖고 자발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

오늘날 K-방산의 눈부신 진격 소식을 여기저기서 접한다. 각종 전차, 자주포, 전투기 등 무기체계 외에도 전투복, 급식, 생활관 등의 개선도 눈에 띈다. 한편, 사생관이 확립되지 않은 군은 제 아무리 막강한 무기체계로 무장되더라도 종이호랑이일 뿐이다.

조국이 원할 때 지체 없이 죽음으로 뛰어들어야 하기에 군인은 늘 수의를 입고 산다. 당장 올지도 모를 죽음을 준비해놓고 군인은 언제나 수의를 걸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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