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11] 그 많던 개들은 누가 다 치웠을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2021년 8월 15일 미국이 아프간에서 갑작스레 철수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 군인과 관계자들, 각국의 교민들이 아프간을 탈출하며 카불 공항이 아수라장이 된 적이 있었다. 전 세계 언론이 아프간의 미군 철수와 그에 따른 혼란을 보도하던 와중에 이런 뉴스가 있었다.

철장에 갇혀 어디론가 끌려가는 개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촬영했다.

“반려동물을 보면 한 나라의 인권이 보인다” 했는데…
뉴스에 따르면 영국 해병대 출신의 한 퇴역 군인이 아프간에서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프간의 정세가 복잡해지자 그는 영국 의회를 설득해 전세기를 빌렸고, 170마리의 유기견과 함께 영국으로 탈출했다.

당시 이슈에 대해 위기 상황에서 ‘동물의 목숨이 먼저인가’ 아니면 ‘사람의 목숨이 먼저인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개인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필자는 동물과 사람의 우선순위와는 별개로 생명에 대한 존중은 곧 인권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아프간에선 더욱 그렇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 곳곳의 하얀 건물들이 깔끔한 인상을 주지만 거리의 인적은 드물었다. 

북한,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간은 지구상에서도 손꼽히는 최악의 인권 사각지대다. 필자는 북한을 다녀온 적은 없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트는 지금까지 일곱 차례 다녀왔다. 아슈하바트는 도시 전체가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들로 빼곡해 ‘천사의 도시’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아슈하바트의 하얀 거리 사이에는 인적이 매우 드물었다. 거리 곳곳에서 군인과 경찰들이 감시하며 통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관광객들도 허가된 지역에서만 출입과 촬영 등이 가능했다. 철저한 통제 속에서 돌아가는 아슈하바트의 실상은 인권과 자유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각별했다. 투르크메니스탄에는 덩치가 매우 큰 품종인 알라바이가 ‘국견’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기에 거리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알라바이는 훗날 거리를 더럽히고 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말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의 명마 아할 테케(현지어). 한혈마 또는 적토마라고도 불린다. 털이 짧고 피부가 얇은 이 종은 기생충에 피를 곧잘 빨아 먹히곤 하는데 과격한 운동 후에는 그 모습이 마치 피를 흘린 듯 보여 한혈마라는 이름이 붙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역대 대통령들도 승마를 매우 좋아해 ‘아할 테케’라는 말의 혈통을 유지시키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적토마도 아할 테케 종으로, 강인한 생명력과 지구력을 자랑한다. 그 명성은 세계적으로도 익히 알려져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인권’은 열악하지만 ‘동물권’만큼은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았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만난 떠돌이개. 목에 채워진 인식표는 개체가 지자체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의 사례도 흥미롭다. 필자는 그리스를 취재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떠돌이 개들을 수없이 봤다. 떠돌이 개들의 목에는 인식표가 채워진 경우가 있었다. 이는 견주가 아닌 해당 지자체가 맡아서 채운 것으로, 각 지자체가 책임지고 유기견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스의 신전이나 명소에선 개들이 관광객들에게 애교를 부리고 음식을 얻어먹는 것이 흔한 광경이었다.

철장에 갇힌 거리의 개들과 가난한 잡역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다시 아프간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아프간은 2021년 8월 탈레반의 재집권 이후 사회정화 명목으로 거리를 청소하고 불법 건축물을 철거했다. 이때 탈레반은 거리의 오물을 주워 먹으며 병균을 옮긴다는 이유로 유기견들을 살처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아프간의 거리에선 개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필자도 지난달 아프간 현지 취재 과정에서 거리의 개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다만 개들이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만 간혹 목격했다.

칸다하르의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관상용 새. 케이지의 위생상태가 매우 열악해 새들의 건강이 우려됐다. 아프간에선 가정에서 새를 기르는 게 오랜 전통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새들은 여러 병균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그런데 동물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탈레반의 비합리적이고 일관적이지 않은 면이 드러난다. 아프간의 저자거리에선 관상용 새가 거래되곤 했는데, 이는 탈레반의 허가가 있어서 가능했을 터다. 새들을 살펴 보니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항생제 등 예방주사를 접종하지 않은 채 온갖 병균에 노출돼 있는 새들이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 비유하자면 그 옛날 초등학교 앞에서 병들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아리를 사고파는 행위와 유사했다. 탈레반이 유기견에 들이밀었던 이유대로라면 병든 새를 사고파는 행위 또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시장에서 구걸하는 소년들. 뒷편의 새장 안에서 병든 새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는 뭇생명에 대한 존중은 인권에 대한 존중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나름의 변이 있겠지만 탈레반이 유기견을 다루는 방식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동물을 쉬이 여기는데 인간을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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