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2] 아프간 전역에 펼쳐진 천라지망‥첩첩산중의 검문소를 넘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탈레반은 정치, 사회, 문화, 시민들의 일상 등 아프간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듯 보인다. 적어도 필자가 머물렀던 수도 카불과 칸다하르, 그리고 바미안에선 그랬다. 그들이 손대지 못하는 것은 타국의 외교공관 정도일 것이다.
아프간에 입국하기 위해선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지만 유럽 국가들에선 아프간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다. 대신 파키스탄, 인도, 이란,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등 인접국을 통해 아프간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나 아프간과 밀접해 있는 페샤와르에선 약 100달러,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 등지에선 약 3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필자는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비자를 발급받았는데 급행료까지 포함해 약 280달러를 지불했다.
이런 저런 절차를 거쳐 비자를 취득한 후 아프간 국경지대의 입국 심사장으로 향했다. 입국 심사는 탈레반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심사대의 직원도, 뒤쪽의 감시관도 탈레반이었다. 탈레반이 심사장에서의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듯했다. 심사를 통과해 국경에서 이르는 길목에도 군인들이 통제하는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검문소의 군인들 역시 탈레반의 통제 하에 움직였다.
도시를 드나들거나 도시 간의 외곽을 다닐 때의 검문은 유독 엄격했다. 군인이 통제하는 검문소와 탈레반이 통제하는 검문소가 각각 존재하며, 총 감독은 탈레반이 맡았다. 자국민의 차량 트렁크와 짐가방까지 샅샅이 수색할 정도인데 여기서 끌려가면 말 못할 고초를 겪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만 그런 줄 알았으나 아프간 어느 도시를 가나 마찬가지였다.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을 중심으로 천라지망을 펼쳐 놓았다. 카불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데, 탈레반 부대들은 산과 산 사이에 주둔하면서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물론 카불 시내 곳곳에서도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특히 경계가 심한 지역은 약 2km를 지나면서 검문소 10곳을 통과할 정도였다. 그 중에는 나도 모르게 은근슬쩍 지나쳤던 검문소들도 있었을 것이다. 검문소에선 신분증과 거주증명서(외국인의 경우 여권과 임시체류 허가증)를 검사한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거리를 순찰하는 하얀색 SUV차량들이 보이곤 했는데, 이는 아프간에서 권력의 상징과도 같다. 하얀색 SUV는 다른 차량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내를 거침없이 누볐다. 탈레반의 관리자급에 속하는 그들은 보초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근무 교대를 관리했고, 또 검문소에 들러 업무보고를 받기도 했다.
대형 상가 건물 등 사람이 밀집된 장소에 들어갈 때도 보안수색이 이뤄지는데 현지인들은 이에 적극 협조하는 편이다. 필자와 같은 이방인 입장에선 잦은 검문과 수색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으나 한편으론 오랜 기간 전쟁과 테러로 고통받았던 아프간 국민들의 마음이 헤아려 졌다.
카불 시내에선 거리를 순찰하는 탈레반 병사들도 종종 보였다. 이들은 전통 군복과 허름한 모자를 착용한 채 총기를 느슨하게 메고 다녔다. 병사들은 식당에서도 소총을 소지한 채 식사를 하곤 했는데, 지인으로 보이는 듯한 일반 시민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필자는 카불에서 체류하는 동안 시내에서 단 한번의 총성도 듣지 못했다. 군기가 일견 느슨해 보였지만 오랜 실전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그들은 적어도 총기에 관해서는 엄격한 규율을 따르는듯 보였다. 카불 시내에서 마주친 탈레반 병사들의 총구는 하나도 빠짐없이 아래를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