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4] ‘여성인권 사각지대’ 오명과 현실 사이의 미묘한 간극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탈레반의 정책에 의해 아프간의 여성 마네킹은 목 위가 없다. 이 촌극은 여성인권 사각지대 아프간의 상징이 됐다. 사진 속 마네킹이 입은 화려한 색상과 패턴의 옷은 아프간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더욱 대비된다.

여성인권 사각지대. 탈레반 치하 아프간의 또다른 오명이다. 서구 언론의 뉘앙스를 통해 아프간을 접하는 우리의 인식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간 여성인권과 현실 사이의 미묘한 간극은 필자 개인적으로도 흥미로운 주제였다.

탈레반의 심장이라 일컬어지는 칸다하르에서 부르카를 쓴 여성이 시장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아프간의 2대도시 칸다하르에서 겪었던 일이다.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근원지로, 그 어느 곳보다 탈레반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는 보수적인 도시다. 현지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미니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학생 40여명이 교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버스에 탄 채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옆에 있는 아프간 현지인에게 “여학생들이 버스로 통학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그가 “여성이 교육받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칸다하르에서의 또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부촌에 거주하는 친구의 초대를 받아 그 집을 방문했다. 여학생 둘이 마당에서 소젖을 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소녀들은 자신의 어린 동생들이라 했다. 친구의 말로는 아버지가 부인을 여럿 두어 어린 동생들도 제법 있다고 했다. 호기심이 생겨 소녀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재학중인 소녀들은 수의대와 의대 진학이라는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젖소를 열심히 돌보고 있던 소녀는 동물이 너무 좋아서 수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또다른 소녀는 조국의 고통받는 환자들을 돌보고자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이 아프간의 부유층에 속해 있지만, 여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고 또 꿈을 키워가는 모습은 우리가 아는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카불의 젊은 여성들이 히잡만 쓰고 거리를 활보했지만 탈레반의 제재는 없었다.

수도 카불에 막 발을 디뎠을 때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히잡을 적당히 걸쳐 머리의 절반을 드러낸 여성이 선글라스와 검은 가죽부츠로 잔뜩 멋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거리엔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들이 더러 있었지만 그들의 걸음거리로 볼 때 중년 이상의, 어느 정도 연령대 있는 여성들 같았다. 반면 그보다 젊은 연령층의 여성 대부분은 부르카를 착용하는 대신 이란 여성들처럼 히잡을 걸치고 다녔다. 그 중 일부는 캠페인 같은 모금활동을 벌이며 남자들과 대화도 나누곤 했다.

바미안의 수공예 상점가. 점포 주인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들은 영어로 물건을 사고파는데 능숙했다.

바미안은 아프간의 다른 도시들과도 또 달랐다. 젊은 여성들은 브루카 대신 히잡을 걸쳤고 화장까지 한 이들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수공예로 잘 알려진 바미안에는 30여곳의 점포들을 모아 놓은 상점가가 있었는데, 점주 모두가 여성이었다. 아프간을 다니면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길에서 눈을 마주친 여성들이 호의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필자에게 기분 좋은 인상을 남겼다.

카불 시내에서 회색 패딩과 검은색 상의를 입은 여성이 홀로 길을 나서고 있다. 카불에서 만난 여성들은 지방 소도시의 여성들과 달리 대체로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았다.

아프간 여성들은 이동의 자유가 없어 남성의 동행이 없으면 외출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과거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있었던 사실이기에 아프간에서도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얘기였다. 탈레반이 이동에 제약을 걸어 여성들은 거주지의 70km 이상 벗어날 수 없었다. 즉 혼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나 도시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거주지 내에선 여성끼리 다니거나 홀로 다니는 여성들이 흔하게 보였다.

다만 세간의 보도대로 아프간 전역의 여성들을 위한 미용실 등의 뷰티샵이 전면 폐쇄된 것은 사실이었다. 현지인에 따르면 모든 미용실이 문을 닫았지만, 속눈썹이나 가발, 화장품, 향수 등의 미용제품를 파는 곳은 대형 상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점의 여주인들과 얘기해보니 그들도 탈레반이 뷰티샵을 폐쇄하는 것을 보고 걱정이 많았는데, 소매상의 영업까지는 방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영하를 넘나들던 어느 날, 한 여성이 하천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물은 얼핏 봐도 오염이 심해 보였다.  

아프간의 여성 인권은 서구 언론이 즐겨 다루는 자극적인 소재다. 그들은 탈레반이 여학교를 폐쇄해 여성의 교육권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여성의 자유 그 자체를 박탈한다고 말해왔다. 여성이 차별 받거나 학대당하는 모습도 서구 언론의 먹잇감 중 하나다. 그러나 필자가 아프간에서 목격한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칸다하르 공항에서 홀로 여행 중인 중년의 여성을 목격했다. 같은 비행기에 탑승한 그녀의 짐가방을 기내 선반에 올려주었는데, 아프간 남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한 행동이었다. 낯선 외국 남성의 도움은 필자뿐만 아니라 그녀에게까지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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