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9] 한국-아프간의 공통분모 ‘불교문화 황금기’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불교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 중 하나로, 그만큼 역사도 길다. 이슬람 국가로 알려져 있는 아프간에서도 과거 불교가 성행했던 기록이 있다. 한국과 아프간이 불교문화라는 의외의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필자는 아프간을 취재하는 동안 일부러 시간을 내 칸다하르 박물관과 카불의 국립박물관을 다녀왔다. 두 박물관에는 아프간의 불교문화가 헬레니즘과 융합해 번영했음을 증명하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멀리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까지 진출했었다. 그의 군대가 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머물렀던 곳이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사이에 위치해 있는 발루치스탄주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 지역에 헬레니즘 문화를 전파하기 이전까진 부처를 형상화하는 문화가 없었으며, 연꽃으로 수를 놓거나 벽에 굴을 파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헬레니즘 문화가 불교와 융합하면서 약 1세기경부터 부처가 형상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현 아프간의 북부 지방 일대에 세워진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이다.
알렉산더 대왕 원정 이후 들어섰던 박트리아 왕국은 현재의 아프간 지역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전이 주조되는가 하면 문화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쳐 헬레니즘 양식이 들어서게 됐다. 이후 쿠샨 왕조를 거치면서 불교문화는 더욱 풍성하고 찬란해졌다.
필자가 방문했던 칸다하르 박물관에는 뱀을 형상화한 기원 후 1세기의 조각들이 있었다. 박물관 담당자에 따르면 머리가 곱슬곱슬한 조각상들은 헬레니즘 영향을 받은 유물이라고 한다. 쿠샨 왕조 때 전성기를 맞이한 불교문화는 4세기에서 6세기를 거치며 보다 다양한 형태의 유산을 남겼는데, 아프간에 남아있는 부처의 조각상과 벽화 대부분은 그 당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필자는 이번 연재의 첫 글에서 아프간 곳곳에 불교 흔적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간다라와 실크로드의 통로역할을 했던 바미안 일대에는 석불을 비롯한 여러 유산이 남아 있다. 실제로 바미안 석불에는 부처상을 모시고 있는 감실과 그 공간을 둘러싼 벽화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한국의 불교는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시대 법성포 영광에서 포교한 것을 시초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가 활동했던 간다라 지방은 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일대로 아프간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간다라 지방과 그 영향을 받은 지역 일대에는 고대 불교의 기반 위에 헬레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이 융합하며 고유의 불교문화가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연유로 아프간 불교문화와 신라-통일 신라 시대의 불교문화는 유사한 측면이 있다. 또한 아프간과 통일 신라는 북방 스키타이 문명의 영향을 받아 동시대에 황금 문화가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통일 신라 시대 때 금으로 주조된 왕관과 장신구들은 아프간의 황금 문화와 유사한 측면이 있고, 양국 문화의 유사성은 학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필자가 방문했던 카불 국립박물관의 직원도 몇 해 전 경주박물관에 다녀오며 불교 황금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아프간 정부는 아슈라프 가니 전 대통령 때부터 박트리아의 중심지였던 발흐 주의 유적을 훼손하기 시작했고 2021년 탈레반 재집권기 들어 이러한 행태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레코-박트리아 왕국 시대를 꽃 피웠던 아프간의 황금기 문화유산의 파괴는 누구를 위한 행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