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6] 아프간에 국제 NGO단체의 손길이 없었다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앞서 필자는 파키스탄에서 육로를 통해 아프간으로 넘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2023년 말부터 아프간과 파키스탄은 불법체류자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데, 필자는 파키스탄에서 아프간의 국경을 넘어가며 지옥과도 같던 아수라장을 목격했다.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마을의 풍경.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선 유엔난민기구의 활동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아프간 불법체류자를 추방해야 하는 파키스탄 정부가 유엔난민기구의 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았나 싶다. 

나시르 아이자즈 <아시아엔> 파키스탄 지부장에 따르면 350만~400만명의 아프간 난민들이 파키스탄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40여년의 전쟁을 피해 온 사람들로, 대부분이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체류를 허가 받았다. 그러나 그들 중 별 생각 없이 넘어오거나 배우지 못해 관련 절차를 따르지 못하거나 전과 경력 등의 좋지 않은 일로 넘어온 이들은 체류 허가증을 발급받지 못했다.

파키스탄 거주 아프간 불법 체류자의 수는 50만에서 1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파키스탄 정부는 자국에서 벌어지는 ‘파키스탄 탈레반’의 테러에 불법 체류자들이 개입돼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파키스탄 정부는 2023년 11월 1일을 기해 “불법체류자들은 아프간으로 돌아가라”며 강제 송환에 나섰다.

파키스탄에서 추방당해 국경을 넘어가는 아프간 난민들

길게는 약 40년, 짧아도 수 년 이상을 파키스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등지고 모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지대는 매일같이 시위에 나서고 있는 난민들과 이를 진압하는 군인들로 아수라장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이 부분에 대해선 차후 다른 글을 통해 상세히 소개하겠다.

생지옥을 넘어 아프간으로 들어가자 필자를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군인이나 담당 공무원이 아닌 유엔난민기구 직원들이었다. 유엔난민기구는 파키스탄에서 강제 송환된 난민들이 아프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경제적 여력이 있는 난민들은 수용소 입소 대신 개별적으로 텐트를 치고 생활하기도 한다.

아프간에 상주하는 유엔난민기구 팀은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과 입국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직원들로 구성돼 있었다. 이들은 아프간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에게 임시수용소로 갈 지 아니면 개별적으로 텐트를 치고 지낼 지 물었고, 그 답변에 따라 난민들을 안내했다. 보통의 난민들과 같은 경로로 아프간에 들어간 필자도 유엔난민기구와 간단한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필자를 별실로 안내해 차를 한 잔 내어주며 식사를 권유했다.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온갖 험한 일을 다 겪었는데, 국경을 넘자마자 마주한 친절에 얼떨떨했다. 오죽하면 이들이 아프간 정부나 탈레반 정보부 요원들과 내통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오토바이 너머로 난민수용소가 보인다. 유엔난민기구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파키스탄에서 추방된 아프간인들을 위한 시설이다. 필자를 안내해준 모하메드에 따르면 아프간의 유엔난민기구의 총책임자는 타지키스탄에서 파견 나온 여성이며 외신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아프간 정부 측의 입국 수속을 밟으려 하자 유엔난민기구에서 절차를 도와줄 현지인 모하메드라는 친구를 소개해 줬다. 아프간이 미국의 통제를 받을 당시 미군은 파키스탄에서 아프간의 칸다하르 미군기지까지 이어지는 보급로를 구축했었다. 그래서인지 아프간의 다른 도로에 비해 길이 굉장히 잘 닦여 있었다. 모하메드는 미군 보급로를 따라가며 필자를 친절히 안내해 줬다. 입국부터 정착까지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이 없다면 난민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아프간을 지원하는 국제 NGO 단체는 이들만이 아니다. 필자는 칸다하르의 공항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의 아프간인 외과의사와 대화를 나눴었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아프간 남서부의 헬만드로 가서 직접 수술을 집도하며 현지 의료진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 헌신에 무한 존경심이 들어 연신 “Respect”이란 말을 건네며 그들의 행운을 빌었다.

칸다하르의 한 레스토랑. 필자가 이곳에서 만난 청년들은 간호학을 공부해 조국에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칸다하르에서 20명 정도 되는 청년들 무리에 합류해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성인 남성들로 구성된 이들은 자신들을 간호사 지망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간호사와 의사”라며 “아직은 수련 중이지만 하루빨리 정식으로 간호사가 돼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이들의 말처럼 오랜 전쟁과 질병으로 피폐해진 아프간은 그 무엇보다 의료시설과 의료진이 절실하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유엔의 모든 산하 단체들이 아프간으로 넘어와 현지인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아프간은 국제 NGO 단체의 원조에 의존해 살아가는 나라다. 의식주 중 하나인 식량만해도 약 3분의2를 해외 원조로 충당한다. 여행 도중 사귄 친구들과 우스개소리로 “단순 방문 목적으로 아프간에 온 외국인은 우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할 정도로 국제 NGO 단체들은 아프간 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NGO 단체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넘쳐난다. 2021년 8월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권력을 되찾자 많은 NGO 단체들이 이 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성인권이나 아동에 대한 처우가 매우 취약하다. 이전에는 유엔과 산하 단체들이 아프간 전반을 살피고 유엔에서 챙기지 못하는 부분들은 또다른 NGO 단체들이 지원했는데, 유엔을 제외한 여러 단체들이 아프간을 떠나면서 그 이상의 구멍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이곳에 남아있는 NGO 단체들의 도움 덕분에 아프간 국민들은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 아프간 사무소 직원들. 파키스탄에서 탈진한 채 아프간으로 넘어온 필자(가운데)는 간호사 사민(왼쪽에서 두번째)과 닥터 누르(오른쪽에서 세번째)로부터 따뜻한 차와 식사를 대접받았다. 맨 왼쪽의 모하메드는 아프간 입국 수속부터 칸다하르 시내 호텔 안내까지 많은 일들을 도와줬다. 필자는 이들과의 감사한 인연 덕분에 아프간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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