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10] 청렴결백과 특권의식, 상충하는 두 단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미 군정 치하 아프간의 고질적인 문제는 부정부패였다. 사회 구성원의 도덕적 해이가 쌓이면서 나라 전체에 구멍이 생겼고, 이 탓에 수적 열세였던 탈레반은 아프간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 ‘아프간 국민들도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프간 정규군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었다.
계몽주의 관점에서 보면 아프간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를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유럽국가들은 이성으로 무지를 타파하자고 외쳤다. 한국도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농촌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계몽운동이 퍼졌고, 이 시기를 거쳐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비단 한국만의 사례가 아니다. 이는 근현대사의 전환점을 성공적으로 넘어선 국가들에게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반면 아프간의 변두리 외곽 지역은 지금도 부족국가처럼 돌아가고 있는 곳이 많다. 아시아의 수많은 국가 중에서도 가장 깊고 험해, 인적 교류가 뜸했던 아프간은 지금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 폐쇄적인 지형구조가 아프간 전반에 계몽운동이 퍼지는 것을 막는 바람에 절대다수의 피지배층은 사회구조의 모순을 깨닫기는커녕 근현대사회에 걸맞는 소양을 기를 수 없었다. 극소수의 엘리트 지배층은 피지배층을 착취하며 부정부패로 사욕을 채워갔다.
미국이 아프간을 통제할 때만 해도 아프간은 서방 세계의 원조로 생존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부패했던 아프간의 지배층은 NGO 단체들로부터 커미션을 챙기거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위들로 탐욕을 채워 나갔다. 이러한 폐습이 위로부터 아래로 내려와 나라 전체를 병들게 했다.
워낙 받는 것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프간의 피지배층은 무언가를 바라기만 한다. 아프간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은 필자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눈치챈 순간부터 무리한 금품을 요구하곤 했다. 행인들은 필자에게 구걸을, 상인들은 필자에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느라 바빴다. 한적한 교외로 가면 사람들이 그나마 순박했지만 적어도 아프간의 수도 카불은 그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필자가 접촉했던 탈레반들은 단 한 명도 금품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들은 더 나아가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주요 TV 채널들을 장악한 채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는 불법 건축물을 철거하거나 마약중독자를 내쫓고, 범죄자를 체포하는 모습들을 송출했다.
그러나 탈레반이 대가 없는 금품을 삼가고 사회 병폐를 바로잡으려 해도 그들만의 특권의식은 존재하는 듯 보였다. 필자가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을 때 일이다. 기내의 중간쯤 좌석에 앉아있었는데 앞 열의 비즈니스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이륙시간이 다가왔지만 비행기는 떠날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성직자처럼 하얀 전통 복장을 착용한 무리가 탑승해 제일 좋은 앞 열 좌석부터 앉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프간의 새로운 지배계층 탈레반이었다. 그들은 좌석을 사전에 지정하지 않았는지 기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전세기라도 탄 듯이 말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승객들 사이에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모습이 그리 낯선 광경은 아닌지 뒷좌석의 한 승객은 필자에게 그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다고 귀띔했다.
과거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당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는 그린존이라는 지역이 있었다. 그린존은 이라크 주재원의 집이나 공관들이 밀집해 있는 고급주택가로, 3~4m 높이의 담장과 철저한 경비로 거주자들의 안전을 보장했다. 아프간에도 바그다드의 그린존과 같은 지역이 있는데, 바그다드와 달리 외국인이 아닌 탈레반의 고위층과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아프간의 지배계급에 속하는 탈레반은 외국인들에게 부당한 금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이 통제하는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정 시절의 아프간과는 분명히 달랐다. 오히려 사회적인 해악을 근절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뒷 돈 한 푼 안 받고 나라를 위해 애쓰는 탈레반은 다른 보상이 필요했던 것일까. 안하무인의 태도와 좋은 거주지를 독점하고픈 욕망은 탈레반의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청렴결백과 특권의식, 상충하는 두 단어가 탈레반의 두 얼굴 속에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