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7] 아직까지는 먼 두 나라, 한국과 아프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북한 국가대표 축구팀이 국제대항전에서 패하면 선수단이 귀국 후 처벌받는다고 하는데 진짜인가?”

필자의 아프간 입국 심사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사적으로 했던 질문이다. 자기들끼리 내기까지 했다는데 필자도 알 길이 없어 그럴지 모른다는 답 밖에 줄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우스운 문답이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현지 식당에서 발견한 한국 일간지. 한국의 종이신문이 아프간으로 수출(?) 돼 포장지나 음식을 덮어두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정 동안 아프간 서민들의 일상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아프간 사람들에게 필자를 한국인이라 소개하면 그들 대다수는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만 물었다. 필자가 정확히 답변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이 많아 당혹스러웠던 적이 제법 있었다. 고연령층의 경우 남한과 북한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꺼내 들었던 주제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었다. 김정은 정권이 연일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다는 뉴스는 아프간에서도 꽤나 잘 알려진 듯 했다.

카불에서 만난 한국의 중고 봉고차. 아프간 거리에서 한국차를 찾아보긴 어려웠지만, 건설현장 등지에서 두산기업의 중장비 차량들이 종종 보였다.

북한 사람들의 삶도 단골 주제 중 하나였다. 아프간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실제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지, 또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프간은 북한과 더불어 전세계에서 손 꼽히는 최빈국 중 하나다. 탈레반 정권이 북한의 인권 문제와 경제난, 식량난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켜 자국민들에게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이 북한보다는 낫다’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칸다하르에서 만난 중산층 청소년들. 이들은 BTS와 GD의 팬을 자처했다.

아프간의 서민들은 한국에 대해서 잘 사는 나라 정도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갖고 있을 뿐 한국이란 나라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중산층 이상의 경우 한국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한류를 좋아해 BTS나 GD 등 유명 가수들의 팬을 자처했다.

다만 아프간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특정 산업군에서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사례는 있었다. 필자가 현지의 고급 미용실을 갔을 때의 일이다. 우리가 흔히 바리깡이라 부르는 클리퍼나 염색약 등 한국산 제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미용실 직원은 “한국 미용제품이 아프간에선 고급으로 인식되며 중국산보다 품질이 훨씬 뛰어나 애용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타 권역 사람들의 국적을 한 눈에 구분하기 어렵듯이 필자가 한국인이라 소개하지 않으면 아프간 사람들도 나를 한중일 어느 한 곳에서 온 동아시아계로만 여겼다. 그래서 자연스레 한중일에 대한 아프간 대중의 시각도 알게 됐다.

바미안시에 소재하는 실크로드호텔. 이 호텔 구내 일식 레스토랑엔 일본 문화와 음식을 즐기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한다. 

아프간 사람들은 대체로 중국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강대국의 침탈로 느껴졌을 것이다. 현지에 머무는 중국인들도 아프간 사람들을 하대하려는 경향이 보였다. 반면 중국인만 아니라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국적 불문하고 환대해 줬다.

아프간의 도로를 점령한 일본산 차량들. 간혹 미국 포드사의 차량이나 중국산 차들도 보였지만 매우 극소수였다.

아프간은 특히 일본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 바미안에서 오랫동안 일식당을 운영해온 일본인에 따르면 아프간인들이 일식을 좋아하고 레스토랑도 워낙 유명해 수도 카불에서까지 찾아올 정도라고 한다. 도로 곳곳이 일본 토요타 사의 차량들로 뒤덮인 것도 필자가 상상하지 못했던 진풍경이었다.

한국콩이 아프간 전역에 재배된다는 유튜브를  보고 카불, 칸다하르, 바미안 곳곳의 시장과 식료품 상점을 찾아다녔지만 그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사실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필자는 한국에서 아프간으로 넘어오기 전 관련 기사와 영상들을 보며 정보들을 수집했다. 정말 필요하고 또 정확한 정보들이 있었던 반면 사실여부가 의심되는 것들도 있었다. 이른바 국뽕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한국산 콩 종자가 아프간에서 널리 퍼져 현지에서 좋은 이미지를 얻었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고 했는데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허구에 가까웠다.

한국의 일부 단체들과 기업들이 아프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과 아프간의 교류는 국가 차원으로 보나, 민간 차원으로 보나 매우 미미하다. 2021년 8월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한국 대사관마저 아프간을 철수한 상황이다. 아프간이 우리에 대해 잘 모르듯 우리가 아프간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국과 아프간의 거리, 아직까지는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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