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두얼굴 3] “지켜볼 것이다. 아프간을 얼마나 잘 이끌어 나갈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이하 아프간)을 두 차례(1996년~2001년, 2021년~현재)에 걸쳐 통치해 왔다. 탈레반의 아프간 집권 1기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폭정으로 얼룩졌다. 2021년 집권 2기를 맞이한 탈레반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말하지만 그들을 향한 서구의 시선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탈레반이 말하는 그들 스스로와 서구가 말하는 탈레반, 어느 것이 탈레반의 진짜 얼굴인가. 2023년 12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몸과 마음으로 부딪힌 이신석 ‘아시아엔’ 분쟁지역전문기자가 있는 그대로의 탈레반과 아프간을 전한다. -편집자
아프간의 관공서나 정부기관은 탈레반의 통제 하에 돌아가는 듯 했다. 아프간에 머무는 동안 체류허가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방문했었는데, 담당 직원 뒤에서 그 과정을 감독하는 이 역시 탈레반이었다. 북한의 보위부처럼 각 기관 곳곳에 요원들을 배치한 탈레반은 아프간의 모든 군인과 공직자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탈레반은 언론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제한된 자유를 허용했다. 아프간 정부에는 문화정보부라는 부처가 있고, 또 그 건물 내에는 아프간 국영방송국 4사가 입주해 있다. 이들 방송사들은 탈레반의 관리 감독을 받을 것이다. 그 외의 민영방송국들은 이란이나 방글라데시, 인도 등 인접국의 콘텐츠를 받아 송출한다. 원천 차단이 아닌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들 나름의 유화정책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공공장소에서 음악방송을 제외한 축구중계나 시사프로그램, 드라마 등의 자유로운 TV시청이 가능했다.
반면 인터넷 통신환경은 의외로 원활했고 또 자유로웠다. 수도 카불을 비롯한 칸다하르, 바미안 등 지방 도시에서도 인터넷 접속이 수월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는 물론 웹사이트 차단도 없어 서구의 사이트, 심지어 성인 사이트까지 접속이 가능했다. 인접국인 이란만 해도 VPN을 계속 우회해야 인터넷 차단을 벗어날 수 있었다. 현지에서 휴대폰 심카드를 살 때도 여권, 비자, 체류증명서 등 몇 가지 서류만 제출하면 별 다른 제약이 없었다.
카불 시내에는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기 부담스러운 고급 레스토랑들이 더러 있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나 아프간에 체류하는 해외기업인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다. 그 곳에서 식사를 하다 보면 누군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보통 검은색 계통 상의에 가죽 자켓을 입은 그들 중엔 탈레반 정보부 요원이 제법 많았을 것이다.
탈레반이 집권 2기를 맞이한 지도 어느덧 1년반, 도로와 시내, 언론과 관공서 등 아프간의 곳곳엔 그들의 손길이 미치고 있었다. 일부의 영역에서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과거와 분명 다를지라도 그 근간엔 탈레반의 철저한 통치체계가 자리해 있다. 아프간을 살아가는 국민들은 이러한 탈레반을 어떻게 바라볼까?
필자는 아프간 수도 카불에 이어 2대도시라 불리는 칸다하르에 머물며 현지인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칸다하르는 물라 아무르가 탈레반을 창설한 곳으로, 아프간과 탈레반의 주류인 파슈튠 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탈레반의 심장과도 같은 곳에서 다시금 탈레반의 통치를 맞이하게 된 이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
식당 세 곳을 운영하고 있는 중산층 A씨는 “1980년대 소비에트 점령기에는 저격수들이 연습삼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조준 사격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며 “소련을 물리친 무자헤딘(아프간의 반군 게릴라. 아랍어로 ‘성전에서 싸우는 전사’를 의미)의 내전이 벌어졌을 때도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르고 살해됐다. 내전에서 승리해 아프간 전역을 통일한 것이 탈레반이었다”고 말했다.
“2001년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 미군정이 들어섰다. 과거와 같은 말도 안되는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지금의 아프간 집권기보다 통제가 훨씬 심했다. 예를 들어 내 소유의 농장에 가려면 지금은 단 두 번의 검문만 거치면 되지만, 미군정 당시에는 약 20차례의 검문을 통과해야 했다”는 그의 말에서 어딘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당신은 탈레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약 40년간 전쟁을 겪으며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상황에 너무 지쳐버렸다. 이제서야 그 전쟁이 사그라 들었다. 나는 탈레반도 아니며 그들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총성 없는 평화가 찾아온 것이 매우 감사하다. 지금 탈레반이 노력하는 부분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켜볼 것이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얼마나 잘 이끌어 나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