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특별기고] “클린스만 감독 웃음에서 한국우승 꿈을 봤다”
[아시아엔=김현원 팬다이머]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국축구대표 팀이 최종전에서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김으로써 논란이 많다. 김판곤 말레이시아 감독은 그동안 침체해 있던 말레이시아 축구를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받지만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2패로 먼저 16강에서 탈락했다.
김판곤 감독은 마지막 한국과의 경기를 앞두고 목숨을 걸었다. 이 상황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이 2패를 당한 상황에서 당시 최강의 독일과 붙은 것과 유사하다. 스웨덴과 멕시코에 아쉬운 패배를 당한 상태에서 최강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이겨도 16강 진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에서 한국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다. 한국은 이 경기에 목숨을 걸었고 독일에 2대0 승리를 거두었고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은 한국전 패배로 예선 탈락했다. 이 경기는 월드컵 사상 2위의 이변으로 선정되었다.
필자는 당시 학회 참석차 독일에 있었는데 식당에서 내가 한국에서 온 걸 아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쯔바이 닐(독일어로 2-0) 하는 것이었다. 아주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새롭다.
신태용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에 인도네시아 감독으로 출전해서 만년 약체인 인도네시아를 16강에 진출시켰다. 베트남을 아시안게임 8강까지 진출시켰던 박항서 감독을 필두로 대한민국 감독들이 이제는 동남아시아의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모습이 흐뭇하다.
축구는 점수가 많이 나는 야구나 농구와 달리 한방의 골로 결정짓는다. 공이 둥근 것과 같이 축구는 이변이 나온다. 현재 말레이시아는 한국에 비해 피파 랭킹이 100위 이상 쳐지고 있지만 1970-80년대 한국팀과 동남아시아팀 간의 경기를 많이 지켜본 필자는 감회가 새롭다. 당시 올림픽 예선전 외에 말레이시아와 태국에서 열리는 메르데카배와 킹스컵 을 경기를 보는 것이 국가대표팀 경기를 보는 유일한 기회였다. 당시 국가대표팀 이름은 1970년까지는 양지였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스폰서가 중앙정보부였기 때문에 양지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었다.
1972년 뮌헨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서울에서 열렸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일본은 올림픽 예선전이나 월드컵 예선전이 아니면 아시아 축구와는 섞이려 하지 않았다. 축구를 떠나 아시아 유일한 선진국으로 대접받는 일본은 한국과 다른 동남아시아팀들과 함께 아시아로 취급받는 것이 싫었다. 뮌헨올림픽 서울 아시아 예선전에서 말레이시아는 첫 경기에서 일본을 3-1로 대파했고 한국마저 1대0으로 이겨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전에서 멋진 헤딩슛으로 골을 넣은 아마드라는 말레이시아 선수의 이름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필자는 50년대에 세계최빈국에서 태어나 선진국까지 한세대 만에 변화하는 기적을 경험했고 그 가운데서 동참하였다. 처음부터 선진국에서 태어난 어린 세대들은 꿈에도 상상 못할 일이다. 외국 학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항상 선진국에 열등감을 갖던 나는 최빈국에서 지금은 거의 선진국의 수준에 도달했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했다. 내 말을 듣던 미국의 교수가 KOREA가 선진국이 아니면 누가 선진국이냐고 반론하는 것을 듣고 우리가 이미 선진국으로 대접받고 있음을 깨달은 적이 있다.
그 이후 한국도 박정희 대통령 이름을 딴 박스컵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동남아시아팀들을 주로 초청했으나 남미의 팀들도 초청해서 동남아시아를 벗어나는 국제대회로 만들었다. 1976년 박스컵 첫 경기가 한국과 말레이시아 경기였는데 한국은 후반 7분이 남았을 때까지 1대4로 지고 있었다. 그 때 차범근은 7분만에 3골을 넣는 기적을 일으켰고 한국팀은 브라질 상파울루주의 U21 선발팀과 함께 박스컵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그후부터 한국도 메르데카컵이나 킹스컵에 주로 대학 선발팀을 보내기 시작했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 아시아 예선은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다. 약체로 생각되던 말레이시아는 놀랍게도 예선전에서 한국과 일본을 꺾었고 결승전에서 다시 붙은 한국을 이기고 모스크바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올림픽이 소련의 아프간 침공으로 반쪽 올림픽이 되어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후 두 나라의 운명은 달라졌다. 한국은 1986년부터 월드컵에 단골손님이 되었고 말레이시아와의 FIFA랭킹은 100위 이상 차이가 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최근 2018년 아시안게임 예선전에서도 이변은 있었다. U23팀이었지만 황희찬 이승우 외에 손흥민 황의조가 와일드카드로 참가했던 최강팀이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는 한국은 0-2로 지고 있다가 후반 마지막 간신히 한 골 만회해서 1-2로 패배했다. 한국은 16강전부터는 모든 경기들은 다 이겨서 우승하였고 손흥민은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아시안컵은 16강부터는 단판 승부이다. 이제 시작이다. 2018년 아시안컵 말레이시아와의 경기에서 보았지만 월드컵에서도 우승팀이 예선탈락 위기에서 간신히 16강에 진출한 후 우승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1974년 우승팀 서독이 그랬고, 1982년 우승팀 이탈리아가 그랬다. 강팀들이 예선전에서는 원래 컨디션 조절과 경기력을 최고로 끌어올리는데 주력하다가 탈락의 위기까지 가기도 한다. 그래서 예선전에서 의외의 경기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16강 상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놀랍게 사우디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예선에서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2-1로 이기는 기적을 경험한 팀이다.
FIFA랭킹이 100위나 차이나는 말레이시아와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역사도 매우 큰 인연들이었고 그동안 우리에게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음을 필자는 오래전부터 지켜보았다. 이번 아시안게임 전체 경기가 사실 다 그렇게 보인다. 대한민국 축구는 아시안게임은 여러 번 우승했지만 막상 아시아의 가장 큰 축구 축제인 아시안컵과는 1960년 이후 우승 경험이 없다. 이번 예선전이 흔히 강팀들이 월드컵 예선전에서 경기력을 조율하는 그런 순간들이었다고 바라본다.
클린스만 감독은 말레이시아가 동점골을 넣어 3-3이 되었을 때 웃고 있었다. 한국 매스컴은 맹렬히 비난하고 있지만 나도 그 순간 이번 대회 최강 일본을 피했구나 하면서 안도할 수 있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가장 우승확률이 높은 2팀은 일본과 한국이다. 월드컵에서도 강자를 피하는 것은 당연한 전술이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의도적으로 피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16강에서의 탈락을 피했으면 좋지 않은가? 매스컴의 비난 속에 선수들이 행여 주눅들까 걱정이다. 나는 사람 좋아 보이는 클린스만의 웃음 속에서 한국이 우승하는 꿈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