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 수아레스의 ‘눈물’과 가나의 ‘해원’

우루과이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3일(한국시간) 알와크라의 알자눕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가나와의 3차전을 2-0으로 이겼으나 다득점에서 한국에 밀려 16강 진출이 좌절되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카타르월드컵 조별예선전 경기가 끝나고, 16강전이 시작되었다. 아시아를 대표한 팀 중에서 일본, 한국, 호주가 예선을 통과했고, 중동의 3팀, 주최국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은 탈락했다.

카타르는 예선전을 벌이지 않고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약한 팀은 아니다. 2019년 가장 최근 벌어진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강팀이다. 에쿠아도르와 개막전 경기에서 카타르의 국민들은 2:0으로 지고 있던 후반에 자리를 뜨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한두 골은 얼마든지 순식간에 역전이 가능하고 모든 국가대표팀의 경기는 국민의 응원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가장 간단한 원칙이 외면된 카타르는 패배했다. 카타르는 2번째 경기에서도 패해 가장 먼저 탈락이 확정되었고, 전체 팀 중 유일하게 3패로 개최국으로서 치욕적인 결과를 얻었다. .

사우디아라비아는 첫 번째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2:1로 승리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사우디는 다음날을 휴일로 지정했고, 빈 살만 왕세자는 승리한 사우디 선수 전원에게 롤스로이스 한대씩을 선물로 지급한다고 선언하였다. 하지만 첫 승리의 괴력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사우디는 예선 탈락했다.

이란은 첫 경기의 국가연주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자국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동참하면서 국가제창을 거부하였다. 귀국해서 어떤 일들이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위험한 용기 후 불안한 마음’으로 벌어진 영국과의 첫 경기에서 이란은 6:2으로 대패했다. 아시아의 맹주라고 불릴 정도로 강했던 이란 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경기였다. 마음을 되잡고 싸운 2번째 경기에서 웨일즈를 2:0으로 잡아서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해도 16강 진출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으나, 마지막 미국과의 경기에 아쉽게 패배해서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예선에서 가장 극적인 경기는 일본의 스페인 경기 승리와 대한민국의 포르투갈 경기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강팀과 한조에서 독일과 스페인을 꺾고 1위로 16강에 진출한 일본은 당연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일방적으로 밀리는 점유율에서 탄탄한 수비로 버티다 역습으로 독일과 스페인에 역전승을 거둔 일본은 축구의 새로운 전략을 제시하는 듯하다.

일본 못지않게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한 팀은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고, 동시에 열리는 우루과이와 가나 전에서는 우루과이가 가나에게 두골이내의 골 차이로 이겨야만 16강에 진출한다. 대한민국은 포르투갈 전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지만 가나와 우루과이 전에서는 우루과이가 2골을 넣을 때까지는 응원하되, 그 다음부터는 가나를 응원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하기는 우루과이가 먼저 2골을 넣고 그 다음부터는 가나가 잘 해서 더 이상 골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가나가 잘해서 비기면 또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희박한 확률이지만 따져보면 매우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그대로 만들어졌다. 경기 막판까지 포르투갈에 지고 있던 대한민국은 90분이 지나고 추가시간에 기적적으로 역전골을 넣었고, 우루과이는 가나에 2:0으로 이겨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사실 대한민국과 가나는 우루과이에 감정이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민국은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해서 우루과이와 만나서 한판승부를 벌였으나, 1:1로 팽팽하게 맞서던 경기 후반 수아레스의 결승골로 아쉽게 탈락했다.

가나의 우루과이에 대한 감정은 한국이 갖는 아쉬움을 넘어선다. 8강전에서 우루과이는 가나와 맞섰다. 2:2 동점 상황에서 후반 마지막 순간 우루과이의 골문으로 들어가는 골을 수아레스가 손으로 막았다. 수아레스는 바로 퇴장당했으나, 가나는 페널티킥을 실축해서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연장전에서 우루과이가 골을 넣어서 가나는 8강전에서 탈락했다. 손으로 결승골을 막은 수아레스는 “전혀 사과할 마음이 없다”고 해서 가나 국민을 분노케 했다. 한국보다 가나는 우루과이와 수아레스에게 큰 감정의 빚이 있는 셈이다.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에 2:1로 끝났지만 가나와 우루과이 전은 전반전 가나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바람에 앞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친 후 후반전에 2골을 우루과이에게 연속으로 허용해서 현재 2:0으로 가나가 지고 있었다. 정규시간은 지나갔지만 아직도 추가시간 10분이 남았다. 우루과이는 총력을 다했지만 가나는 차라리 한국은 몰라도 우루과이는 반드시 16강 진출에 탈락시키겠다는 듯이 최선을 다해 수비했다. 추가시간 가나가 한골을 넣기 위해 공격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끌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드디어 경기는 2:0 그대로 우루과이 승리로 정확히 시나리오대로 끝났다. 우루과이와 골득실도 같지만 다득점 원칙에 의해서 대한민국이 16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가나 축구팬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춤을 추며 기뻐했다. ‘코리아’를 연호하며 같이 기뻐했다. 탈락의 슬픔보다 ‘원수’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막아낸 기쁨이 더 컸던 것이다. 추가시간이 바로 끝나기 직전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에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수아레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보였다. 나에게도 그 장면이 측은해 보이지 않고 ‘쌤통’으로 느껴졌는데 가나 국민에게는 분을 참지 못하고 3번이나 국제경기에서 상대방을 물어뜯어서 ‘핵 이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말로라도 사과 한번 하지 않았던 수아레스의 눈물은 비록 16강에 진출하지는 못했지만 가나에게는 기분 좋은 해원의 순간이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서 가나의 결정적인 골을 손으로 잡아 막아내던 우루과이 수아레스

*김현원 필자의 직함 ‘팬다이머’는 “패러다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편견없는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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