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 정의를 믿는 자의 눈은 태양같이 빛난다
이란 대표팀은 영국과의 경기 전 조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약속한 듯이 어깨동무를 하고 침묵했다. 이란으로 돌아갔을 때 어떤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영국의 매체는 처형의 가능성마저 거론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국가제창을 거부한 것은 자국의 반정부시위에 지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지난 9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던 22세 여대생 마흐사 아마니의 의문사로 촉발된 시위는 석달 째 이어지고 지금까지 500명 가까운 시위대가 사망했다. TV 카메라는 이란대표팀이 국가제창을 거부하는 순간 관객석에서 울먹이며 박수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임한 영국과의 첫 경기에서 대패한 후 전열을 가다듬은 이란은 2번째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과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 가능성이 예상되었지만 아쉽게 미국에 패배하였다.
IOC와 FIFA는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어떠한 정치색도 배재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월드컵 축구는 선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대결이지만 선수들은 국민을 대표한다. 국민이 한마음으로 함께 응원하게 된다. 국가 간의 대결에서 선수와 국가는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일본과의 대결에서는 꼭 이겨야 하는 마음을 대한민국 국민이면 갖게 되는 것이다.
현대 스포츠에서 순수란 무엇인가? 스포츠에서 어떤 의미를 전하려는 사람들은 약한 자들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강한 자들은 구태여 스포츠를 통해서 의미를 전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스포츠의 마약과 같은 짜릿함에 취해서 국민들이 정의를 돌아보지 않기를 바란다. 이는 승패를 떠나서 정정당당하게 싸운다는 순수한 스포츠 정신으로 표현된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힘없는 약자들은 이 세상 누구의 관심도 끌기 힘들기에 스포츠를 통해서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국가제창 거부로 표현된 목숨을 건 ‘위험한 용기’를 통해서 자국의 반인권 실태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이란대표팀의 목적은 어떤 방법보다 효율적으로 달성되었다. 많은 이란 국민들이 이란팀이 16강 진출에 실패하는 순간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서 환호를 내질렀다. 이란 정부와 같이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당연히 ‘순수한 스포츠’를 강력히 주장할 것이다. FIFA도 IOC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사상 가장 위대한 저항의 상징은 미국의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 200미터 경기에서 최초로 20초 벽을 깨뜨리며 놀라운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흑인선수 토미 스미스와 동메달의 존 카를로스이다. 이들은 시상식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맨발로 서서 함께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 높이 들었다.
맨발은 흑인들의 가난한 처지를, 검은 장갑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상징이었다. 1968년은 노벨평화상을 받고,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된 해였다.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지만 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미 육상계에서 제명당했다. 미국의 두 선수는 그 이후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미국의 두 선수 외에 은메달을 받았지만 인종차별 항의에 동참하는 뱃지를 흑인선수들과 함께 가슴에 달았던 호주의 육상영웅 피터 노만마저 이단자로 낙인 찍혀 호주 육상계에서 매장당하고 매스컴으로부터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호주 역시 미국 못지않게 백호주의라는 이름으로 인종차별이 진행되고 있던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피터 노만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지지를 철회하면 징계를 풀고 공식적인 무대에 설 수 있게 해 주겠다는 호주 육상계의 회유를 물리쳤다. 그는 공식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잡일을 하면서 어렵게 살다가 2006년 쓸쓸히 사망했다. 2012년 호주의회는 이 위대했던 선수에게 공식사과성명을 발표한다.
스포츠 최초로 저항의 메시지를 던진 사람은 손기정과 남승룡이다. 손기정과 남승룡의 기록이 워낙 월등했기 때문에 일본이 전혀 원하지 않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일본을 대표해서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손기정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고 남승룡은 동메달을 딴다. 시상대에서 고개를 숙인 슬픈 얼굴의 두 선수 모습은 바로 저항의 메시지였다. 영문을 모르는 독일의 신문은 동양에서 온 두 선수가 신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우승 직후 베를린에서 손기정이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슬푸다’라는 석자가 쓰여 있었다. 남승룡은 “받은 꽃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던 기정이가 그렇게 부러웠다”고 회고했다. 시상대 사진을 보면 남승룡이 일장기를 조금이라도 가리려고 바지를 명치까지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남승룡은 11년 후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출전하여 10위권의 성적을 거두며 건재를 과시했다. 많은 나이로 출전한 남승룡은 출전 이유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마지막으로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달고 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시상식의 두 선수의 모습에서 일장기를 덧칠해서 지워버렸고, 총독부는 동아일보 관계자 10명을 체포하였다. 이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고,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처분을 당했다. 나라가 없어진 나라에서 온 두 젊은이가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올림픽 시상식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슬픈 표정 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스포츠에서 승리는 부와 명예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정신이다. 스포츠는 부와 명예를 넘어서 국민의 정신을 대변하고, 약자를 대변하고, 정의를 대변해야 한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승부한다는 명분으로 아름답게 표현되는 소위 ‘순수스포츠 정신’ 외에 의미가 없다면 스포츠는 콜로세움에서의 검투사의 대결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동방의 태양, 정의를 믿는 자들의 눈과 같이 빛난다···.” 이란국가 가사의 일부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억압받는 약한 자들의 눈동자는 태양처럼 빛날 것이다.
*김현원 필자의 직함 ‘팬다이머’는 “패러다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편견없는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