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월드컵] “축제는 끝났다. 이젠 ‘빌드업’에서 ‘창의적 축구’로”
일본과 크로아티아 경기에서 일본이 전반을 1:0으로 이기는 것을 보고 잠시 잠을 청했다. 얼람으로 4시에 깨어 제일 먼저 경기 결과를 확인했다. 일본이 후반에 한골을 내 주고 페널티킥 승부에서 져서 8강 진출이 좌절된 것을 보고 마음의 큰 부담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이 패배하고 일본이 8강에 진출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참기 힘든 괴로운 일이다. 이제 브라질과의 승부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 하자.
축구시즌 중에 열리는 월드컵이라서 조별 예선이 끝나고 그전 월드컵과 같이 하루 휴식이 주어지지 않았다. 무리한 일정의 최대 피해자는 대한민국이었다. 포르투갈전의 극적인 승리로 16강에 가장 마지막으로 진출한 팀에게 단 3일 만의 휴식 후에 벌어지는 FIFA랭킹 1위 브라질과의 마지막 경기는 매우 힘든 경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과의 16강전은 체력도 달리고 독일과 스페인을 물리친 일본과 같은 전략으로 수비하면서 역습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팀은 브라질과 처음부터 1:1로 맞불을 놓았다. 그렇게 해서 상대하기에 브라질은 너무 강한 팀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에 한골을 내주었고, 곧 이어서 이해하기 힘든 페널티킥으로 한골을 더 내주었다. 한국도 반격했다. 황희찬의 강한 슈팅들이 골키퍼에게 막혔다. 하지만 또 수비라인이 무너지면서 2골을 더 내주었다. 전반은 4:0으로 끝났다.
후반에도 브라질은 아직도 배고픈지 조금도 멈추지 않고 공격의 고삐를 넘추지 않았다. 승패를 떠나서 더 이상의 실점은 한국인의 자존심을 크게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의기소침하지 않았다고 계속 공격을 이어갔다. 손흥민의 결정적인 슈팅이 아쉽게 골문을 벗어났다. 몇 번의 안타까운 슈팅들이 이어진 끝에 드디어 후반 30분 백승호의 강한 중거리 슛으로 한골을 만회했다. 다행히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한국은 계속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브라질도 한국의 골문을 계속 노렸다. 경기는 4:1로 끝났다.
1980년대 말 영국에 있을 때 실험실의 영국 친구가 “너네 나라 얘기가 <이코노미스트> 지에 났는데 읽어봐. 기사내용이 너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거야” 했다.
‘한국인은 뭐든지 크게 시작한다…’ 이렇게 기사는 시작했다.
‘임진왜란 때 간신히 나라를 지켰지만 20세기 초 이번에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인의 자존심은 유전적으로 키가 작은 일본인들을 왜놈(small guy)라고 부름으로써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그러나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가난한 나라에서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한국인의 키는 일본인보다 오히려 작아짐으로써 한국인의 남은 자존심마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최근 통계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의 평균키는 드디어 일본의 평균키를 넘었다- 지금 한국인의 평균키는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거의 차이가 없다- 드디어 한국인의 자존심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현대는 조선업을 시작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로 시작했고, 그 배를 수리하기 위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수선 도크를 또 만들었다… 한국은 무조건 큰 것을 좋아한다.’
기사는 한국과 대만의 경제를 비교했다. 한국은 대기업 위주이고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이다. 어느 나라가 더 유리할까? 이코노미스트는 대만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인은 그렇다. 작은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강팀과의 경기에도 수비만 하는 것은 성에 차지 않는다. 죽을 때 죽더라도 ‘무릎 꿇고 죽기보다 서서 죽기 바란다..’ 노래 가사와 같이 싸우는 것이 한국인의 기질이다. 성질이 급해서 뭐든지 악착같이 달려들어 이루어낸다. 세계 최빈국인 주제에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앞서가던 일본도 우습게 봤다. 결국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기적을 이루었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최빈국일 때 태어나서 한 세대만에 선진국으로 변화하는 기적을 지켜보았다. 학회에 초청한 미국의 교수에게 내가 최빈국에서 대한민국이 거의 선진국에 달하는 수준(almost to the level of advanced country)까지 변하는 기적을 목격한 세계 유일한 세대라고 했더니, 내가 틀렸다고 한다. 너희는 이미 선진국이다. 코리아가 선진국이 아니면 어느 나라가 선진국이냐고 반문했다.
한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일 때도 축구 강국이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 대표로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나라에서 일본이 경기하는 꼴을 볼 수 없다” 해서 일본에서 2번의 경기를 벌였다. 지고 나서 현해탄을 다시 건너지 않겠다는 각오로. 실제로 이승만은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현해탄에 빠져 죽어라”는 무시무시한 협박성 발언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1승1무로 일본에게 이겨서 스위스월드컵에 아시아 대표로 출전했다.
대표팀의 스위스로 가는 길도 험난했다. 비행기 표도 없어서 미군 군용기로 도쿄로 가서 스위스행 비행기표를 ?그것도 5개국을 거치는 세계일주에 준할 정도의 장거리 비행- 구했다. 그나마 티켓이 모자라서 일정을 도저히 못 맞출 상황에 일본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영국의 신혼부분가 딱한 사연을 듣고 자기들의 비행기 티켓을 양보해서 간신히 1진만 먼저 출발해서 경기 이틀 전 밤 10시에 스위스에 도착했다.
고생 끝에 유니폼만 갈아입는 수준으로 경기에 임했고, 바로 세계 최강 헝가리를 상대해야 했다. 경기는 9:0으로 대패했지만 당시 무적함대 헝가리의 막강한 경기력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선전이었다. 스위스 월드컵 우승팀인 서독도 헝가리와의 예선전에서 8골이나 허용하고 8:3으로 졌다. 대한민국팀의 눈물나는 투혼을 보고 헝가리 감독은 “그들은 사자처럼 용맹했다. 쓰러져도 계속 일어나 뛰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국팀 김용식 감독은 절망적인 상황이었지만, ”져도 좋다. 그러나 한골만 넣자. 그래야만 전쟁 때문에 헐벗고 힘든 국민들 조금이라고 속이 시원해지지 않겠냐“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 소박한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이다.
브라질과의 경기는 승패를 떠나서 축제가 되어야 했다.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최강 브라질과 맞불을 놓아서 비록 대패했지만 후반 한골을 만회해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다. 더구나 한국도 졌지만 일본도 함께 져서 마음이 편하다. 가나도 대한민국에 졌지만 ‘원수’ 우루과이를 16강 진출을 저지한 것만으로도 기뻐했듯이 나의 마음도 이렇게 편협하다.
언젠가 내 마음이 진심으로 일본의 승리를 축하할 수 있을까? 태생적 열등감이 없는 나의 아이들은 이런 편협한 마음이 없을 테니 다행이다. 욕심은 끝이 없다. 16강에 진출한 것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이긴다면 그건 포르투갈에게 이긴 것과 비교하기 힘든 기적일 것이다. 더구나 초반 너무 쉽게 수비진이 무너진 상태에서 당당하게 싸웠고 맹공을 퍼부어 후반 한골을 만회한 것은 자축할 만하다. 브라질도 무너지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독일전에서 7골이나 허용한 적이 있지 않은가?
벤투호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벤투는 항상 빌드업을 중요시한다. 빌드업은 다름 아닌 차근차근하는 정석플레이를 의미한다. 히딩크은 “왜 한국축구가 포메이션이라는 틀에 집착하고 창의적 플레이를 무시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벤투는 전혀 창의적이지 않다. 플랜B가 없다. 선수 구성에서 가장 창의적 플레이를 한다고 볼 수 있는 이강인과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승우를 홀대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강인만이라도 카타르에 와서 더구나 후반전에 출전시켜서 한국팀의 16강 진출이 가능하게 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대활약을 했음에도 마지막 브라질과의 경기 선발로 이강인을 출전시키지 않은 것은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지나친 특정선수에 대한 의존도 문제다. 손흥민이 출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 월드컵 한달이나 남았을 때 손흥민이 부상당해서 조금이나마 회복된 상태에서 월드컵에서 손흥민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천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매번 점유율에서 우세하다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수비전술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빌드업이라는 남들도 하는 정석플레이로는 대한민국 축구가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월드컵 진출이 일상적일 정도로 한국축구는 발전했다. 하지만 새 시대에는 새 전술이 필요할 때다. 일본이 강팀과의 대결에서 보인 수비전술과 같은 창의적 전략이 필요하다. 뚫리지 않을 탄탄한 수비라인을 만들어야 하고 다양한 공격루트가 필요하다. 이번에 운이 따라서 16강에 진출했지만 항상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대한민국 축구가 월드컵 출전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16강에 자력으로 진출하는 팀으로까지 발전해야 한다.
일본은 지난 대회에 이어 독일과 스페인을 물리치고 연속으로 16강에 올랐다. 일본은 언제든지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항상 혈투를 벌이던 일본과의 대결이 최근에는 참패로 끝나고 있음을 잊지말자.
빌드업으로 표현되는 벤투 축구는 대한민국 축구를 발전시킬 수 없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창의적인 히딩크 축구가 필요할 때이다.
*김현원 필자의 직함 ‘팬다이머’는 “패러다임에 사로잡히지 않고 편견없는 과학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