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의 신’이 한국과 함께 하나 보다”…사우디에 역전극

전날 얼람을 켜놓지 않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아차 축구를 놓쳤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TV를 켰더니 사우디에게 0:1로 뒤진 상태로 이제 막 후반 추가시간에 돌입한 순간이었다.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는 동안 10분이나 남았던 추가시간도 다 흘러서 이제 1분밖에 남지 않았다.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설영우의 헤딩패스가 그동안 부진했던 조규성의 머리 쪽으로 향했다. 훌쩍 뛴 조규성의 헤딩은 골문을 갈랐다. 기적의 순간이었다.

조현우는 사우디의 세 번째 네 번째 키커의 슈팅을 모두 막아냈다. 황희찬의 마지막 슈팅은 호쾌하게 골문을 갈랐고 대한민국은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연장전은 체력이 떨어진 사우디에 대한 한국의 일방적 공격이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붉은 옷을 입은 응원단 모습도 보였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좋은 찬스들이 계속 만들어졌지만 골은 터지지 않았고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조현우는 사우디의 세 번째 네 번째 키커의 슈팅을 모두 막아냈다. 황희찬의 마지막 슈팅은 호쾌하게 골문을 갈랐고 대한민국은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시 경기를 보았다. 한국은 3백을 시도하였다. 3백은 양쪽 백이 공격과 수비를 모두 담당하여야 하기 때문에 양쪽 백의 출중한 경기력과 무한 체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소모된 체력을 감안하여 수비에 중점을 둔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전반은 수비에 치중하면서 손흥민 1톱으로 역습에 치중하였다.

전반에 점유율은 내주었지만 크게 뒤진 경기는 아니었다. 유효슈팅은 거의 비슷했다. 유일한 위기는 전반 40분 사우디의 코너킥 상황이었다. 한국의 골대를 2번이나 맞추고 이어진 사우디의 3번째 슈팅은 조현우 손끝을 스치며 아슬하게 골문을 벗어났다. 어떻게 골이 들어가지 않을 수 있나 할 정도의 순간이었다.

막상 한국이 한골을 먹은 것은 불운이었다. 후반 1분 사우디 선수가 자기에게 오는 패스를 제대로 트랩핑 하지 못했는데 툭 튀어나간 공이 바로 기가 막힌 스루패스가 되었다. 패스방향을 읽고 뛰던 김민재는 뒤늦게 뒤쫓았으나 골키퍼와 마주한 사우디의 왼발 슈팅을 막을 수 없었다. 골 이후 다시 평상시의 4백으로 돌아왔으나 한 골 뒤진 상태로 경기가 거의 끝나가는 순간에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사우디는 축구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나라다.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유일하게 조별 예선에서 이긴 나라다. 사우디 오일머니는 전 세계의 축구스타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손흥민에게도 추파를 던진 적이 있다.

피파 랭킹은 떨어지지만 그동안 한국과의 전적은 거의 막상막하다. 더구나 카타르의 경기장은 사우디에서 불과 몇시간 운전해서 올 수 있는 거리다. 사우디는 관중석을 사우디를 상징하는 녹색으로 완전히 뒤덮었다. 붉은색의 응원단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마침 카타르에 간 지인도 백방으로 표를 구하려고 노력했으나 경기장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런 불리한 조건에서 굴하지 않고 기적적 승리를 거두었고 온 국민에게 용기를 주었다.

대한민국 8강전 경기는 호주전이다. 호주와 한국은 2015년 아시안컵 결승에서 만났고 0:1로 뒤지다 경기 마지막 순간 손흥민의 골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에서도 잘 싸웠으나 아쉽게 한골을 내 주어 준우승에 머무른 적이 있다. 그때에 비해 예선전을 통해서 판단할 때 호주는 전력이 많이 떨어진 듯하다.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연장전까지 치르고 방전된 체력이다. 더구나 5일이나 쉬고 경기를 치르는 호주에 비해 3일 만에 경기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번 사우디전도 체력을 걱정했으나 전혀 문제 없었고 오히려 사우디를 체력으로 제압하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16강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면서 이탈리아를 이기고 3일 만에 벌어진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전혀 체력의 열세를 보이지 않고 연장전 혈투 끝에 이긴 적이 있다. 체력 못지않게 정신력이 중요하다. 한국의 강한 멘탈이 체력의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

사우디전과 같은 날 벌어진 또 다른 16강 경기 이라크와 요르단 경기도 관심사였다. 요르단은 최강 일본을 2:1로 이긴 이라크에 전혀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한골을 넣어 전반을 1:0으로 이기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이라크에 2골을 허용해서 역전 당했다. 그런데 이라크의 기쁨의 순간에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번째 골을 넣은 이라크의 선수가 세리머니를 너무 즐기다 경고를 받았다. 그는 이미 한 장의 옐로카드를 받았기 때문에 즉각 퇴장당했다. 한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라크는 잘 버텼으나 후반 추가 시간에 2골을 허용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우리가 호주와의 8강전에서 승리하면 다음 4강전 상대는 요르단이다. 예선전에서 보았듯이 요르단은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다. 일본에 비해 결승전까지 대진 운이 좋은 편이다. 축구의 신이 끝까지 우리와 함께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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