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축구의 완성은 골’ 입증한 독일 게르트 뮐러···월드컵 본선에서만 14골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 팬다이머] 8월 15일 광복절, 독일의 게르하르트 뮐러가 알츠하이머 투병 중 76세 나이로 별세했다. 뮐러는 득점력과 득점기록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타고난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분데스리가 통산 최다득점(365골)과 최다 득점왕 타이틀(7회)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대항 유럽컵에서도 4차례 득점왕에 올랐다. 그는 월드컵, 유럽컵과 유럽클럽팀 대회인 UEFA 챔피언스 리그 모두에서 우승했고 동시에 득점왕에 올랐다. 더구나 A매치 62경기에서 경기수보다 많은 득점(68골)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다.
내가 게르하르트 뮐러를 처음 본 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었다. 당시 세계 최강팀은 브라질과 전 대회 우승팀 영국이었다. 브라질과 영국은 예선 같은 조에서 치열한 명승부를 벌인 끝에 브라질이 1대0으로 이겼다. 영국은 2위로 8강에 올라 독일(당시 서독)을 만났다.
영국은 먼저 2골을 넣고 승리를 예감한 듯 후반 유럽 최우수선수 보비 찰튼의 체력을 안배해 교체했다. 1970년 월드컵에서 축구경기 처음으로 선수교체가 시작됐었다. 그 전에는 선수가 부상으로 실려 나가도 교체할 수 없었다.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로 위험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에게 경고와 퇴장을 할 수 있는 제도도 멕시코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그전까지는 수비수의 위험한 플레이에 공격수는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펠레는 1962년 칠레 월드컵과 1966년 런던 월드컵 때 반칙으로 얻은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할 수 없었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때 프랑스의 쥐스틴 퐁테인은 단일 대회에서 13골을 넣은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잡이였으나, 부상으로 28세 나이에 은퇴했다.
다시 영국과 서독의 8강전. 후반 중반에 서독은 베켄바우어가 중거리 슛으로 한골을 만회한 후, 젤레의 유명한 뒤통수 헤딩으로 동점을 만들고 연장전에서 뮐러의 골에 의해 3대2로 영국에 역전승하였다.
서독은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와 만난다. 이탈리아가 먼저 한골을 넣고 이탈리아의 뛰어난 수비전략에 의해 후반 마지막까지 1대0의 스코어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후반 마지막 순간에 서독이 동점골을 넣고 1대1로 비겨 연장전에 들어간다. 연장전에서 이탈리아는 수비전략을 버리고 서로 진검승부하기 시작한다. 먼저 뮐러가 한골을 넣어 리드하고, 이탈리아가 2골을 넣어 다시 역전한 상태에서, 뮐러가 한골을 넣어 다시 동점이 되었다. 3대3. 뮐러의 마지막 골 이후, 이탈리아의 센터서클에서 시작된 공격은 그대로 서독의 골문으로 들어간다. 더 이상의 골은 없었다. 양 팀은 연장전에서 5골을 주고받으며 경기는 4대3 이탈리아의 승리로 끝났다. 역사에 남을 만한 경기라고 할 수 있다. 결승전에서 이탈리아는 브라질에 1대4로 패해서 준우승에 머문다.
1974년 서독에서 다시 월드컵이 열렸다. 서독은 예선에서 동독과 한조가 되었는데, 예선에서 동독에게 0대1로 패배한다. 하지만 예선 각조의 1, 2위 팀들이 맞붙는 2차 리그에서는 서독과,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가 1위를 차지해서 결승전으로 직행한다. 결승에서 네덜란드와 맞붙은 서독은 게르하르트 뮐러의 터닝슛이 결승골이 되어 2대1로 승리했다. 뮐러의 이 골은 내가 본 최고의 슛이었다. 서독은 이로써 1954년 스위스 ‘베른의 기적’ 이후 2번째 월드컵을 가져간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뮐러는 무려 10골을 넣어 득점왕을 차지했고,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는 4골을 넣었다. 총 14골의 득점기록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호나우도에 의해서 깨졌다. 하지만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 팀이 16개에서 32개로 늘어났고 경기 수도 많아진 것을 감안하면 실제 경기 수 당 환산한 최고의 득점왕은 아직도 게르하르트 뮐러이다.
뮐러는 특별한 선수였다. 호날두 같이 체격이 월등하거나 주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메시같이 드리볼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펠레나 크루이프같이 경기를 지배하는 능력도 없었다. 뮐러는 키도 작고 뚱뚱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골 에어리어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위치선정과 동물적인 순발력으로 골을 넣었다.
물론 그는 주어먹는 골잡이가 아니었다. 그는 탁월한 골 트래핑 능력을 갖고 있었고, 뛰어난 체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스스로 찬스를 만들어냈다. 느닷없이 튀어나와 골로 향하는 그는 항상 골 가는 곳에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바로 그의 동물적 순발력과 뛰어난 위치선정의 비밀이다. 수비수 입장에서 가장 막기 힘든 골잡이였다. 그는 늘 움직이면서 빈틈을 만들어 골 찬스를 만들어냈다. 그가 많은 골을 넣은 것 외에도 누구보다도 많은 골 어시스트를 했다는 점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월드컵의 경기당 평균득점이 떨어지는 것은 현대축구에서 공격력에 비해서 수비기술이 발전한 탓일 것이다. 골키퍼 기량이 향상된 것도 이유의 하나일 것이다. 월드컵 경기당 골이 4골에서 2점대로 줄어든 것은 축구경기의 재미를 반감한다. 한 골로 승부하는 상황도 많아지니 과거의 다득점 경기들에 비해서 이변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 축구는 아무리 점유율이 높아도 골을 넣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뮐러는 ‘축구의 완성은 골’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진정한 타고난 스트라이커였다. 그래서 수비력이 발전한 현대축구에서 게르하르트 뮐러와 같이 골을 탁월하게 잘 넣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전무후무했던 위대한 스트라이커 게르하르트 뮐러를 추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