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도쿄올림픽 육상 이야기⑩] 남녀 400미터 허들…’소문난 잔치’ 볼거리도 풍성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도쿄올림픽에서 방송들의 구기 종목 편중중계는 극대화되었다. 육상경기는 실황경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9시뉴스에서 결승전만 보여주어서는 전체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선수도 모르고 기록도 모르고 누가 100미터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육상을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적어도 준결승 경기부터 보여주고 결승전을 진행하여야 한다. 그래야 결승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 육상의 편중중계는 여태까지 어느 올림픽보다 심했던 것 같다. 지나친 편중중계는 문화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국민 의식보다 훨씬 떨어지는 매스컴의 의식이 안타깝다.
도쿄올림픽 남자 100미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제이콥스가 9.8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결승전에서 9.98초로 6위에 그쳤지만 준결승에서 제이콥스를 이기고 9.83초의 최고기록을 세운 중국의 쑤빙텐이 준결승기록을 유지했다면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
남자 200미터에서는 남자 100미터 동메달리스트 캐나다 그라스가 우승했다. 400미터는 남아공의 니케르케가 준결승에서 탈락함으로써 김빠진 맥주가 되어버렸다. 400미터에서는 바하마의 스티븐 가드너가 우승했다.
남자 4X100미터 계주에서 일본과 중국은 8명이 겨루는 결승에 올랐다. 우승후보 미국이 탈락하는 이변 속에 리우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일본과, 4위에 그친 후 일본의 은메달에 충격을 받고 계주에 중점을 둔 중국은 안전하게 결승에 올랐다.
결승에서 놀랍게도 새로운 육상강국으로 등극한 이탈리아가 마지막 스퍼트로 영국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은 캐나다에 아깝게 뒤져서 리우에 이어 이번에도 4위에 그쳤다. 이번에도 메달이 기대되었던 일본은 안타깝게 1번 주자와 2번 주자 간에 바톤 전달에 실패하면서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이번 도쿄올림픽의 백미는 남녀 400미터 허들 경기였다. 미국에서 남자 400미터 허들 경기는 매우 인기있는 종목이다. 1984년 LA올림픽을 나는 미국에서 지켜보았다. 당시 400미터 최강자는 미국의 에드윈 모세스였다. 그는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고, 모스크바올림픽을 건너뛰고 LA올림픽에서 당시 그가 연승기록을 유지하고 우승할 것인가에 관심사이 모아졌다. 모두의 관심 속에 LA올림픽에서도 그는 우승했다. 그는 1976년부터 1987년까지 107회 연속으로 모든 참가대회에서 우승하는 엄청난 실력을 유지했다. 모세스는 LA올림픽 대표선수로 선수선서를 했는데 그가 텍스트를 까먹어서 모두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다행히 텍스트를 기억해서 뒤늦게 한참 지나서 선수선서를 마무리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모세스는 연승기록이 깨지고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마지막으로 은퇴하였다. 최초로 꿈의 기록을 세우고 400미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니케르케가 불과 4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쿄올림픽에서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4번의 올림픽이 지나는 동안 최강의 실력을 유지했던 칼 루이스나 모세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었는지 새삼 다시 생각해본다.
이번 도쿄올림픽 400미터 허들의 최강자는 노르웨이의 카르스텐 바르홀름이다. 그는 이미 46.7초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었고 세계선수권대회를 2연패했다. 도쿄올림픽 400미터 허들에서 그는 마지막 10번째 허들을 넘을 때까지 라이벌인 미국의 라이 벤자민과 거의 비슷했으나 마지막 허들 이후 40미터 구간에서 앞서 45.94초의 믿기 힘든 세계기록을 세웠다. 라이 벤자민도 46.17초의 세계신기록을 세웠으나 바르홀름의 신기록에 묻혔다. 3위를 차지한 브라질의 산투스도 47.72초의 거의 세계신기록 급의 기록을 세웠으나 이 대단한 선수들에 묻힐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세기의 레이스였다.
여자 400미터 허들도 한 수 더 뜨는 숨 막히는 레이스였다. 2016년 리우올림픽 우승자인 미국의 모함마드와 떠오르는 신성인 미국의 매클로플린은 2019년 카타르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엄청난 접전을 벌였다. 국제육상경기연맹도 카타르에서의 여자 400미터 허들 결선을 ‘대회 최고의 명승부’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대회에서 모함마드는 매클로플린을 간발의 차이(0.07초)로 제치고 우승했다. 두 사람은 모두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이 두 사람의 대결에 의해서 400미터 여자 허들은 전 세계 육상경기 중 가장 인기있는 종목이 되었다.
도쿄올림픽에서도 두 사람의 대결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미 미국 올림픽 예선전에서도 두사람은 치열한 대결을 벌였고 이번에는 매클로를린이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1위를 차지했다. 도쿄올림픽 400미터 허들 결승전에서 두 사람은 마지막 10번째 허들을 넘을 때까지 똑 같은 위치였다.
누구도 앞선 포지션을 차지하지 못했다. 마지막 40미터를 서로 질주하면서 떠오른 22세의 매클로플린이 간발의 차이로 32세의 모함마드를 앞섰다. 두 사람 모두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매클로플린 우승기록은 51.46초, 모함마드는 51.58초로 간발의 차이로 뒤졌으나 두 사람 모두 세계신기록(52.16초)을 넘어섰다.
소문난 잔치였고 실제로 너무 풍성한 잔치였다. 이런 경기를 실황으로 볼 수 없었던 우리 국민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