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회화속 여성탐구⑧] 보불전쟁서 전사한 화가의 유작, 살로메

살로메(Salome), 앙리 르뇨(Henri Regnault), 1870, 160 x 10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NY

이 여자는 누구인가? 요사(妖邪)스러운, 성인(St. John the Baptist)의 죽음을 부른, 그것도 목을 잘라 은쟁반에 갖다 바치게끔 한 여인이자 요부(妖婦). 그야말로 팜므파탈(femme fatale)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는 ‘살로메(Salome)’라는 이름이 직접적으로 나오지만, 살로메는 같은 이름의 두 사람이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살로메는 세베대의 아내로 사도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다. 그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현장에 있었고 나중에 예수의 빈 무덤을 확인했다.

그림의 주제가 된 살로메는 마태복음서(제14장)과 마가복음서(제6장)에 묘사되어 있는데 ‘헤로디아의 딸’ 또는 ‘여자아이’로만 기록되어 있다.

헤로데 안티파스와 헤로디아가 결혼하자 세례자 요한은 이를 강하게 공개적으로 비난한다. 그러자 안티파스와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려고 하지만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 옥에 가두기만 하고 감히 처형을 명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 헤로데 안티파스의 생일을 맞아 연회가 벌어졌을 때 헤로디아의 딸(살로메)은 아름다운 춤을 추었고 이에 고무된 헤로데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준다고 약속한다. 이에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의 사주를 받아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줄 것을 요구하자, 결국 안티파스는 곧바로 요한을 처형했다.

이에 전해져 내려오던 매우 극적인 스토리 구조에 따라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희곡으로 만들었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는 오페라로 만들었다. 아울러 여러 화가 역시 많은 그림으로 남겼다.

살로메(Salome), 앙리 르뇨(Henri Regnault), 1870, 160 x 101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NY

보고 있는 작품은 프랑스 화가 앙리 르뇨(Alexandre Henri Regnault, 1843~1871)가 그린 살로메이다.

1870년 파리 쌀롱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작가 르뇨는 그림 전시 직후 일어난 보불전쟁에 참전한다. 그때 벌어진 전투(Battle of Buzenval)의 최전선에 있던 그는 결국 전사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회화에 가깝다. 당시 고전파, 즉 아카데미파 화가 중 여럿이 그런 유형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를 충실히 따른 것 같다.

신명 나게 춤을 춘 살로메는 이미 그녀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켜 이제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흐트러진 윗옷과 몸을 거의 비치게 만드는 치마는 어떤 춤을 추었는지를 명백하게 알리고 있으며, 신을 벗고 있는 발과 드러난 맨살의 다리 역시 그녀의 관능적인 면모를 나타내고 있다.

득의에 찬 미소 속에서는 두려움 같은 것 역시 읽을 수 없다. 그리고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담게 될 커다란 은제 대야를 무릎 위에 올리고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다른 그림들에서 보이는 어설프게 잘려진 머리 표현보다 어쩌면 더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상징적 구성이다.

카페트와 함께 호랑이 가죽으로 보이는 깔개, 노랑 벽지 등이 오리엔탈리즘 회화임을 알리고 있는데, 무엇보다 살로메의 짚시풍 머리 모양과 옷매무새 등에서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작자 앙리 르뇨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학교 수업은 중도에 포기하고 당대의 대표적 고전파 화가들이었던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Antoine Montfort, Louis Lamothe) 등으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이후 꾸준히 쌀롱에 출품하면서 주목을 받는 작가가 되었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온 후 동방적인 그림에 보다 매진하면서 1870년 유디트(Judith)와 이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다가 곧 보불전쟁이 발발하여 전투 중 사망하고 만다.

그와 매우 친했던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ëns)는 그를 그리면서 ‘영웅행진곡(Marche héroïque)’을 만들었다. 1872년 조각가 앙리 차푸(Henri Chapu) 역시 국립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 그를 기리는 조각 작품을 세웠다. 그리고 메소니(Jean-Louis-Ernest Meissonier)는 보불전쟁 당시 파리 방어 전투 장면을 그리면서 그의 모습을 가장 가운데 있는 병사로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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