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초상화 감상하며 세계사를 한눈에···미술평론가 김인철의 <초상화로 읽는 세계사>
절대왕권 시대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국왕과 그를 둘러싼 왕실의 인물들은 그 존재만큼 이미지 관리도 중요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초상화를 심혈을 기울여 제작, 보존하였다. 국왕이나 왕실 인물뿐만 아니라 그들에 버금가는 정치적으로 비중 있는 사람들과 종교 지도자들도 초상화로 남게 되었다.
세계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의 초상화는 역사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림 속에는 인물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등 역사적 사실과 함께 당시의 문예사조나 유행, 실세 권력의 향방도 잘 나타나 있다. 또 국왕이나 유력 인사들이 총애했던 연인들 초상화도 시대 분위기를 흥미롭게 전달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초상화는 역사를 되돌아보게 해주는 가장 좋은 결과물이다.
<아시아엔>에 ‘김인철의 미술산책’ ‘초상화로 읽는 세계사’에 이어 ‘김인철의 회화속 여성탐구’를 연재하고 있는 김인철 미술평론가가 <초상화로 읽는 세계사>(양문출판사, 2023.1.10 초판)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역사를 쓴 글이지만, 세부 주제는 초상화다. 따라서 관련 이미지를 세심하게 선정하였다. 역사적 비중이 높은 인물임에도 실제 초상화가 없는 경우가 많았고, 훌륭한 초상화였지만 역사적으로 크게 중요한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하여 수준 높은 초상화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초상화 주인공의 삶에서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찾아내 실었다. 또 초상화를 실제로 제작한 화가들 이야기까지 실어 그 초상화가 그려진 배경을 독자에게 확실하게 전달하려 했다.
이 책은 15세기 후반 피렌체 도시국가를 지배했던 메디치가의 쥴리아노 데 메디치와 시모네타 베스푸치 초상화, 이 초상화를 남긴 대화가 산드로 보티첼리로부터 시작한다. 이어 프랑스혁명 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유럽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폐렴으로 사망하는 그들의 장녀 마리 테레즈 샤를롯에 이르기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혁명 시기에 해당하는 주요 인물들을 그린 인물화, 초상화도 망라하고 있다. ‘천일의 앤’으로 잘 알려진 앤 볼린, 헨리 8세, 왕비 아라곤의 캐서린, 제인 시무어 등의 이야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었던 엘리자베스 1세 이야기, 당시 역사를 이끌어 갔던 남자들의 연인, 총희 등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초상화로 읽는 세계사>는 역사책이면서 그림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초상화를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개인사적으로, 그린 화가의 화풍과 관점까지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그림 속 인물을 뛰어넘어 역사 한 가운데를 사는 것 같은 생동감을 주고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닌 한 시대의 역사 배경 속 슬픔, 기쁨, 안타까움, 놀라움 등을 저자는 담담한 문체로 끌어내준다.
이 책에는 역사와 초상화라는 두 가지 주제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탄탄한 콘텐츠가 아름다운 도판과 함께 실려 있다. 덕분에 볼거리와 읽을거리가 독자에게 동시에 제공된다. 저자 김인철 미술평론가는 영문학자이지만 미국, 캐나다에서 미술사, 미디어아트를 공부하였고 한국미술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저자는 ‘미술에 조예가 깊은 인문학자’로서 역사 혹은 미술로 치우침 없는 유익한 내용을 풍성하게 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