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31] 고갱이 사랑에 빠져 그린 마들렌의 초상화

마들렌 베르나르의 초상(Portrait of Madelaine Bernard), Paul Gauguin, 1888, 72 x 58 cm, Musée de Grenoble, Grenoble

“마오리 매춘부들의 요염한 열정은 파리 매춘부들의 수동적인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테후라의 피에는 불길이 치솟고, 그 불길이 본질적인 자양분이 되어 사랑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마치 독한 향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눈과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계산을 하고 있든 아니든, 그녀의 눈과 입이 말하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이 글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이 타히티(Tahiti)에서 쓴 글로, 그곳으로 간 고갱은 원주민 소녀 여럿을 성적 대상이면서 자신의 그림을 위한 목적으로 삼아 죽을 때까지 함께 지냈다. 마치 갈증에 목이 탄 어떤 짐승이 물을 찾아 헤매듯이 그가 타고났던 주체못하는 성적(性的) 갈망이 그곳에서 성취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때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들을 제외하더라도 그의 그림 여러 곳에서 성욕구 해소를 위하여 소녀만을 원했던 취향이 담겨 있음을 알아볼 수 있다.

즐겨 방문하던 브레통(Breton)의 소녀들을 그린 그림들이 대표적으로, 그가 그곳에서 그렸던 ‘순결의 상실, 또는 피어나는 봄(The Loss of Virginity, The Awakening of Spring, 1891, Chrysler Museum of Art, Norfolk)’을 보면 그의 성적 취향에 따른 생활을 말해주는 내용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그림을 보면, 브리타니(Brittany)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앞에는 한 소녀가 누드로 누워있다. 그녀는 힌두(Hindu) 신화에서 유혹을 상징하는 한 마리의 여우와 함께 있으며 멀리 배경에는 결혼 예식 중이라 지역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이 이 여인을 향하여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작품은 고갱 자신이 타히티로 떠나기 바로 전이었던 1891년 4월에 그린 것으로 모델은 당시 막 스무 살로, 그곳에서 그의 정부였던 쥘리엣 위에(Juliette Huet)이다.
당시 고갱은 그의 주된 후원자였던 사람들의 인문학적 취향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게끔 상징주의 화가들의 방식대로 공을 들여 이 작품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그렇게 일련의 그의 그림들을 통하여 상징주의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힘을 썼다고 비평가들은 그를 옹호하고 있는데, 실제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오히려 변태적 상징성만 느껴질 정도이다. 즉 그림에서 여인의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 여우의 모습은 악마적으로 최고의 음란성을 나타내고 있다. 아울러 손에 쥐고 있는 끝이 붉은
시클라멘(Cyclamen)꽃은 소녀가 최근에 처녀성을 잃은 것을 은유한다.

이처럼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임에도 그가 유별나게 묘사한 성적인 여성의 모습은 폴 세잔(Paul Cézanne)이나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베르나르의 여동생 그림을 살펴보자. 그림 속 주인공 마들렌 베르나르(Madeleine Bernard)는 퐁타벤파(Pont-Aven School)의 지도적 인물로 당시 그곳에서 실험적 그림을 그리고 있던 후기 인상파 화가이자 미술이론가였던 에밀 베르나르(Émile Bernard, 1868~1941)의 여동생이었다.

작품은 1888년 고갱이 퐁타벤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그린 것으로, 그곳에서 17세의 베르나르의 여동생 마들렌을 다시 만났고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하여 그녀를 모델로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림 속 인물은 결코 나이 어린 모습이 아니며 오히려 성숙한 어떤 여인이 잠시 공상에 잠긴 듯한 태도이다. 헝클어진 머리, 수수께끼 같은 시선, 비교적 짙게 화장한 눈, 조심스럽게 그려진 입술로 마들렌을 마치 유혹하는 여인으로 그려 놓았다. 그러면서 배경은 매우 차분한 장식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림 뒤 위쪽에 붙어 있는 삽화는 오랫동안 ‘오페라에서(At the Opera)’라는 제목의 드가(Edgar Degas)가 그렸던 것으로 알려졌었지만 실제로는 인상파 화가 장-루이 포랭(Jean-Louis Forain)의 판화였음이 밝혀졌다.

그림이 그려진 브리타니를 주제로 나타내면서 장식적으로 오른쪽 아래 놓인 푸른 나막신은 마들렌의 그곳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가 입은 옷의 지배적인 파란 색상으로 그림과 모델에 어떤 높은 격조를 부여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얼굴과 팔의 구불구불한 드로잉 역시 자연스럽게 배경의 직선적 표현과 대조되는 원적 요소로 강조되고 있다.

또한 그렇게 이루어진 선과 윤곽선의 상호 작용이라는 장식 효과는 당시 일본판화의 영향과 더불어 에밀 베르나르가 몰두했던 클루조아니즘(cloisonnism, 칠보주의, 七寶主義)이 고갱에게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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