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30] ‘여명의 화가’ 그림쇼의 ‘배터시 다리’
파리를 흐르는 센강(la Seine)에는 많은 다리가 있고 이들은 여러 인상파 화가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서 적지 않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마찬가지로 런던의 테임즈강(River Thames)에도 다리가 여럿 있으며 이것들 역시 화가들이 적지 않은 그림으로 그렸는데 주로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영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알프레드 시슬레(Alfred Sisley)가 있었고,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등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주로 머물며 그림을 그렸던 미국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 등이 있다.
지금 소개하는 작가는 영국 출신의 존 앳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로, 그는 인상파 화가라고 명확히 언급할 수 없으나 소재, 기법 및 그와 교류한 작가 등을 볼 때 영국식 인상파 화가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주로 여명, 황혼, 달이 밝은 한밤중 등을 그려 매우 개성 있는 화면으로 유명했던 화가였다.
테임즈강의 다리 중 시슬레, 모네, 피사로 등 인상파 화가들이 주로 그려 남긴 곳은 채링 크로스 다리(Charing Cross Bridge)로, 특히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앙드레 드랭(Andre Derain) 은 이 다리를 제법 많이 그렸다. 그리고 모네가 연작으로 그렸던 워털루 다리(Watreloo Bridge)가 있으며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지금 보고 있는 배터시 다리(Battersea Bridge)를 그렸다.
배터시 다리는 주철 대들보와 화강암 교각으로 이루어진, 다섯 경간(徑間)의 멋진 아치(arch)형 모습이다. 강물의 흐름이 급격히 굴곡 지는 곳에 있는 다리는 남쪽의 배터시와 북쪽의 첼시(Chelsea)를 이어주고 있다. 다리의 기원은 16세기 양쪽을 연결하던 연락선(ferry)이었다고 한다.
당시 선박 운영권을 가졌던 존 스펜서 백작(Earl John Spencer)이 목조다리로 만들면서 유료로 운영했고, 헨리 홀란드(Henry Holland)가 1771년 설계했던 다리는 사람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었으며 다음 해부터 마차도 통행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리 밑을 다니는 선박들이 자주 충돌하는 일이 이어지자 교각을 보강하고 상부를 철제로 덧붙였다.
이렇게 위험한 다리이면서 다른 교량들과 비교하여 인기도 없었지만, 마지막 목조다리의 특징을 알리면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존 셀 콧만(John Sell Cotman) 등이 그림으로 남겼고, 이미 언급했던 대로 제임스 맥닐 휘슬러가 완성한 비교적 실험적인 작품(Nocturne: Blue and Gold ? Old Battersea Bridge, Tate Britain, London)으로 사람들이 다시 기억하게 되었다.
1879년부터 다리는 시 당국에 의하여 공공시설로 개방되었고 1885년에는 부분 철거된 후 새로운 다리로 만들어졌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기(Victorian era)에 활약했던 존 앳킨슨 그림쇼는 밤중이나 황혼, 또는 새벽 무렵 풍경을 그린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이주해 왔던 제임스 티쏘(James Tissot)에게서 영감을 받은, 어쩌면 인상파로부터 간접적 영향을 받은 작가였다.
같은 동네 스튜디오에서 함께 작업했던 동료 작가이자, 이미 명성이 자자했던 제임스 맥닐 휘슬러는 스스로 밤의 풍경을 시작한 화가로 여겼지만 그림쇼를 일컬어 진정한 밤 풍경을 그린 작가로 인정해야만 했다.
그림쇼의 그림들은 주로 포구의 저녁이나 새벽, 또는 밤 풍경 등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달밤의 정취를 제대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 속 분위기는 모두 음산하고 쓸쓸하다. 사람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거나 하나 또는 둘 정도에 매우 작게 되어 있고 범선과 포구, 뒷골목 중심으로 그려진 마을 등이 어두운 빛 가운데 무서운 음모에 쌓여있는 공간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화면 전체에서는 엄정한 투시도 형식을 볼 수 있는데, 억지로 이어본 소실점 끝에서는 잊어버린 역사의 찌꺼기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모든 장치가 희미하며 아련한 빛 속에서 명멸(明滅)하듯 이어진다. 하루가 저물거나 시작하는 어스름한 불빛과 더불어 구차하게 공간을 밝히려는 아스라한 전구들의 발광은 거의 죽어가는 식으로 애처롭다.
어떤 구체적 스토리가 이어지게끔 하거나 그런 이야기를 제공하면서 상념에 빠지게 만드는 역할을, 그렇게 만들어진 여명(黎明)이 중대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를 일컬어 거의 유일한 ‘여명의 화가(painter of the twilight)’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