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27] 반 고흐는 봄을 이렇게도 그렸다

반 고흐의 ‘과수원에 꽃이 핀 아를의 풍경'(View of Arles, Flowering Orchards), Vincent van Gogh, April 1889, 72 x 92 cm, Neue Pinakothek, Munich

4월을 그린 인상파 화가들의 풍경 작품 중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이 있다.

작품에 대한 설명 이전에 이 그림은 189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렸던 국제전(Les XX)에 출품되었던 것 중 하나이다. 이 전시는 회원전 이외에 초대전 형식으로, 반 고흐는 아를(Arles)에서 만들었던 몇 작품을 심사숙고하여 골라 출품했다.

두 점의 해바라기 그림과 나리꽃, 그리고 해가 뜨는 상-레미(Saint-Rémy)의 밀밭, 붉은 포도밭과 더불어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이 그것들이었다.

풍경화들은 프로방스를 그린 전형적인 인상파(Impressions of Provence)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인상파에 대한 반발이 남아 있던 시기라 결국 문제가 일어나고 말았다.

전시회는 1월 18일부터 2월 23일까지였는데 오프닝을 이틀 앞두고 기념 만찬을 하는 도중 다툼이 일어났다.

앙리 드 그루(Henry de Groux)가 자신의 그림 옆에 빈센트의 작품을 걸 수 없다면서 ‘무식하고 개념도 없는 화가’라며 그를 비난하자 테이블 끝에 있던 툴루즈-로트렉(Toulouse-Lautrec)이 크게 화가 나서 그루를 향하여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루 역시 이에 응수하려는 순간 폴 시냑(Paul Signac)이 만일 툴루즈-로트렉(그는 신체장애가 있었다)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모든 행사 진행을 접겠다며 차갑게 선언하듯 말을 했다.

다음 날 그루는 사과했지만 결국 회원에서 제외되었고, 시냑이 대신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이때 전시를 주최했던 단체의 설립자였던 위젠 보시(Eugène Boch)의 여자 형제 안나(Anna)가 반 고흐의 ‘붉은 포도밭(The Red Vineyard)’을 구입했다.

작품을 보면 이해하기 힘든 구성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리에서 아를로 내려온 반 고흐가 일련의 풍경 연작을 다수 그려 남긴 일은 모두 알고 있지만, 이 작품의 구도는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방식이다.

일단 굵은 세 그루의 포플라가 화면 앞에서 마치 시선을 가리듯이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들 둥치에서 삐져나온 가느다란 가지들의 모습은 반 고흐 특유의 묘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일찍이 누에넨(Nuenen) 시절부터 인상적인 나무둥치들을 그렸다.

그리고 포플러들 뒤로 전형적인 풍경을 만들었는데 전경, 중경, 배경이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되면서 구름과 함께 빛의 구분이 불명확한 옥빛의 하늘을 볼 수 있다. 꽃이 만발한 과수원에서는 농부 한 사람이 부지런히 작업에 열중하고 있고 배경을 이루는 건물들에는 스토리가 담겨 있는데 어렴풋이 보이는 운하와 더불어 배를 정박시키는 곳을 중심으로 아를의 역사적 중심인 생-트로핌(Saint-Trophime)과 성 샤를 콜레지(College St Charles)를 왼편에, 그리고 반대편인 오른편에 프랑스 외인부대인 수아브 연대(Zouave Regiment)가 있는 캐센느 캴르빈(Caserne Calvin) 건물을 대칭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반 고흐는 수아브 연대의 장교 몇 명과 친분이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인 밀리에 중위(Lieutenant Milliet)가 제복 입은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인상적인 포플라 나무들은 아직도 그곳에 있지만 과수원과 군부대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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