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회화속 여성탐구①] 존 밀레이의 ‘신선한 청어’
이 그림을 접하는 순간, 중고등학생 때의 수학 과제를 생각했다. 선생님들은 어쩌면 무책임하게 마치 어지럽게 얽힌 실타래를 던지듯이 문제를 주면,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당황스러우면서도 책상 밑에 답에 있는 듯이 고개를 아래로 내젓곤 했었다. 그때 포기보다는 일단 어떤 실마리 찾기부터 시도하면서 주어진 과제의 실타래를 아주 천천히 풀기 시작했었다.
그림은 그렇게 주어진 난제처럼 적지 않은 것을 던져주면서 어떤 상념과 더불어 명상이라는 방식으로 그 흔한 추측을 요구하고 있지만, 좀처럼 접근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소녀의 눈, 눈매, 눈동자에 있다. 그것부터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끌면서 그다음 우리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표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절대로 단정하지 않은, 그리하여 덜 정리된 채 양쪽으로 풀어져 내린 머리는 소녀의 턱을 완강하게 받친 그녀의 주먹과 손목으로 인하여 방해를 받는다.
오른쪽 얼굴을 빛나게 만든 광선이 그녀의 굳게 쥔 손에서 더욱 강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면서 청 데님(denim)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하늘색 상의에 눈이 머무는데, 그것은 약간 헤진 듯 보이지만 정리된 분위기를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의 시선은 접힌 소매의 흰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래 쪽을 보면 희끗희끗한 줄이 그어진 평범하기만 한 스커트를 볼 수 있는데 그것으로 그녀의 현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고 이어 오른팔로 거머쥔 바구니와 그 안의 청어(herring)들을 보면서 가난한 행상 소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갈대 바구니의 손잡이는 강하고 분명하게 처리되어 중요한 물건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안의 청어는 어쩐지 소녀의 모습과 연결이 되면서 화면에 정감(emotion)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부분이 잘렸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또다시 소녀의 얼굴로 옮기게 된다.
별빛이 더해진 검은 어두움이 등 뒤로 밀려 들어오면서 이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청어를 얼마나 잡았는지, 그리하여 적지 않게 팔았는지 하는 일은 소녀의 표정에 나타난 밝은 희망과 사랑을 생각할 때 절대 문제 되지 않는다.
대체 무엇으로 소녀는 희망과 사랑의 끈을 부여받았던 것일까?
‘신선한 청어(Caller Herrin’)’는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노래(민요)로, 에딘버러 뉴하븐(Newhaven) 지역 어부의 여인들이 갓 잡아 올린 청어를 바구니에 담아 동네 골목 여기저기를 돌며 소리쳐 판매하던 내용과 장면을 담고 있다.
1798년 무렵 에딘버러에 있는 어떤 교회의 악단장이면서 바이얼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나싸니얼 고우(Nathaniel Gow)는 청어를 파는 여인들의 외침 소리를 듣고 곡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곧 널리 퍼졌다. 이어 1820년 필립 냅턴(Philip Knapton)이 대중화된 피아노 또는 하프를 위한 변주곡으로 만들었고, 조셉 빈스 하트(Joseph Binns Hart)는 1827년 8번째 스코틀랜드 쿼드릴(Set of Scotch Quadrilles) 중 하나로 편곡했다.
그림을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Sir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는 이른바 ‘100대 명화’를 가려낼 때 언제나 언급되는 ‘오필리어(Ophelia, 1851-1852, Tate Britain, London)’를 그린 영국의 라파엘 전파(the Pre-Raphaelites) 화가였다.
일찌감치 미술에 천재적 소질을 보여 왕립미술학교(Royal Academy of Art)에 최연소로 입학했으며, 19세기 중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등과 함께 라파엘 전파를 만들었지만 얼마 후 그 그룹에서 나와 지금 보고 있는 그림과 같은 방식의 새로운 사실주의에 몰두했다.
대륙 프랑스에서 인상주의가 퍼져나가고 있을 때 영국의 라파엘 전파는 르네상스 이후 매너리즘(Mannerim)에 반기를 들면서 라파엘로(Raphael) 이전 시기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하며 사실적인, 그리고 고전적인 기법의 회화를 되살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국에서 인상파 화가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