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회화속 여성탐구③] 낭만파 대가 들라크루아 보살핀 누나 ‘마담 베르니낙’

마담 베르니낙의 초상(Portrait of Madame de Verninac),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99, 145.5 x 112 cm, Louvre, Paris

위젠 들라크루아(Eug?ne Delacroix, 1798~1863)는 프랑스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m)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그의 작품을 여럿 루브르(Louvre)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데, 그가 만들지는 않았지만 루브르에는 그의 누나를 제작한 작품들도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이 누나의 초상화로, 그의 누나는 결혼 후 이름이 마담 드 베르니낙(Madame de Verninac)이 되는 앙리엣 들라크루아(Henriette Delacroix, Henriette de Verninac, 1780~1827)이다. 그녀는 유명화가 동생 위젠보다 열여덟 살이나 위였다.

오누이의 아버지(Charles-Fran?ois Delacroix)는 프랑스 혁명집정부(the Directory)의 외무부 장관까지 역임한 고위직 정치인이었다. 앙리엣은 1798년 레이몽 드 베르니낙-상-모르(Raymond de Verninac-Saint-Maur)와 결혼했는데, 남편 레이몽은 1791년 아비뇽 합병(Annexation of Avignon)을 해결하도록 위임을 받았던 세 명의 위원 중 한 명이자, 루이 16세가 처형되면서 관계가 끊어졌던 스웨덴과 술탄 셀림 3세(Sultan Selim III) 시기 오스만투르크 주재 대사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혁명 집정부 시기 직후 론 지방(Rh?ne department)의 지사를 지냈다. 그는 스위스 주재 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다. 그랬던 베르니낙 부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막내 동생 위젠을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았다.

1799년 유명한 고전주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는 당시 인기 있던 그리스 고전풍 옷차림을 한 앙리엣의 초상화를 그렸다. 당시 유행하던 옷차림은 다비드의 또 다른 명작 ‘마담 레카미의 초상(Portrait of Madame R?camier, 1800, Louvre)’에서도 볼 수 있다. 아울러 1808년 조각가 조셉 치나르(Joseph Chinard)는 화살을 들고 있는 사냥의 여신 디아나(Diana) 모습의 그녀를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현재 루브르 미술관에 있다.

1822년 남편이 죽은 다음 앙리엣은 유산 분쟁 등으로 어려운 삶을 살다가 1827년 세상을 떠났으며, 동생 들라크루아는 지금 보고 있는 누나의 초상화를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오늘날 낭만주의 미술을 언급할 때 항상 맨 먼저 언급하는 위젠 들라크루아. 그의 성공에는 열여덟 살 위 누나 앙리엣의 보살핌이 절대적이었다. 아름답고 기품있는 그녀의 모습이 당대 최고의 고전파(Neo-Classicism) 화가 중 한 사람인 자크-루이 다비드에 의하여 대단한 빛을 발하고 있다.

마담 베르니낙의 초상(Portrait of Madame de Verninac),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99, 145.5 x 112 cm,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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