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회화속 여성탐구②] 가장 슬프고 힘든 때의 ‘신데렐라’
화가로 영국에서 최초의 작위를 받았던 프레데릭 레이턴(Lord Frederic Leighton, 1830~1896)의 그림 중에는 세계적인 명작이 있는데 바로 몇 차례 소개했던 ‘타오르는 유월(Flaming June, 1895, Museo de Arte de Ponce, Ponce, Puerto Rico)’이다.
그것은 한동안 소재가 불분명했었는데 1960년대 초 런던 배터시(Battersea) 공원 한 주택의 굴뚝 위 박스 속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그때 작품을 입수한 이는 그것을 판매하고자 바로 킹스 가로(Kings Road)의 한 상점에 맡겼고 이때 지나가던 유명 뮤지컬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하여 로이드 웨버는 그림을 구입하고자 할머니에게 50파운드를 빌리고자 했지만, 할머니는 “나는 빅토리아(Victoria) 시기의 쓰레기를 집에 둘 수 없다”며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작품을 갖지 못하게 된 로이드 웨버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자신의 미술 컬렉션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이 바로 로이드 웨버 컬렉션에 있는 것 중 하나로, 영국의 유명한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의 것이다.
존 에버렛 밀레이(Sir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는 이른바 ‘100대 명화’를 가려낼 때 언제나 언급되는 ‘오필리어(Ophelia, 1851-1852, Tate Britain, London)’를 그린 영국의 라파엘 전파 화가였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단한 소질을 보여 왕립미술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했으며, 19세기 중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등과 함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라는 문예 및 미술 단체를 만들었지만, 그들과 결별한 후 새로운 사실주의에 몰두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유명한 신데렐라(Cinderella)이다.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호박 마차와 유리 구두, 멋진 무도회와 행복한 결말 등으로 화려하기만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가장 슬프고 힘들 때의 모습이다. 그녀는 빗자루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 맨발로 일을 하다가 쉬고 있으며, 아마도 계모와 못된 언니들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구석에 있는 것 같다.
베어진 나무 둥치들이 아무렇게 놓인 흙바닥에는 뱀으로 보이는 물체와 쥐가 보이는데 그것들은 그녀에게 펼쳐질 그야말로 ‘신데렐라’ 스토리를 암시하고 있으며 그런 확신은 한 손으로 무릎 위에 쥐고 있는 공작의 깃털과 마치 강조점처럼 머리에 쓴 빨강색의 작은 고깔 모자를 통하여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에 지쳤지만, 의지로 시련을 이겨내면 희망이 이루어질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이 그런 그녀를 다시 보게 만들고 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빼고 보면 영락없는 사실주의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