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⑨] 앙소르 作 ‘마스크’ 그후 120년···”이젠 우리의 일상이 되어 버린”
마스크를 하며 지내보니, 거의 모두 흰색 또는 검정 위주의 단순한 그것을 착용하고 있지만, 더러 패셔너블(fashionable)한 모양도 눈에 띈다. 그러면서 주요 미술관 사이트들에서는 유명 미술작가들 그림을 그려 넣은 마스크까지 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서 언급하는 마스크는 우리가 쓰고 다니고 있는 마스크와 달리 ‘가면(假面)’의 개념으로, 베니스의 카니발(carnival) 등에서 쓰는 매우 특징적인 것들이다.
필자는 ‘마스크’라는 제목의 그림이라 눈길이 갔다. 한번 같이 살펴보자.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60~1949)는 벨기에 오스탕드(Ostende)에서 태어나 대부분 삶을 그곳에서 보내면서 작업한 화가다.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 적지않게 영향을 주었으며, 그 역시 초창기에는 마네, 모네 등이 추구했던 인상주의 기법을 따랐다.
브뤼셀의 왕립미술학교(Acad?mie Royale des Beaux-Arts)에서 배운 그는 데뷔 시절부터 발표했던 작품들이 연달아 문제를 일으켜 벨기에의 쌀롱에서 전시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옥타브 마우스(Octave Maus)와 함께 전위적인 미술단체 ‘그룹 20(Les XX)’을 만들어 활약했는데, 당시 이 단체는 1884년부터 1893년까지 10회의 전시를 열면서 피사로(Camille Pissarro), 모네(Claude Monet), 쇠라(Georges Seurat), 고갱(Paul Gauguin), 세잔(Paul C?zanne), 툴루즈-로트렉(Toulouse-Lautrec) 및 반 고흐(Vincent van Gogh) 등 프랑스의 혁신적 작가들을 초청하는 등 획기적 전시를 진행했다.
한편, 앙소르는 1885년 무렵부터 가면이나 해골, 유령과 같은 기괴한 소재로 환상의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바꾸기 시작하여 이후 개성 있는 작가로 점차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1929년 벨기에 국왕 알베르 1세(King Albert I of Belgium)로부터 남작(Baron) 작위를 받았고 1933년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L?gion d’honneur) 훈장을 받기에 이른다.
사실 그에게 마스크(mask)는 생활과 다름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가족이 운영하던 상점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자신의 작은 작업실 바로 밑에 위치했던 곳에 마스크를 비롯한 축제용품을 파는 가게를 열고 있었다. 아버지와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마스크를 새롭게 되새기면서 작품의 주요 제재로 삼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그의 세계는 비현실적인 면을 담았다는 비평을 받았고 그에 따라 점차 그는 국가 시스템 등을 반대하는 무정부주의자처럼 변해갔다.
가면의 속성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있듯이, 앙소르의 자화상 속 그것 역시 두 가지 은유를 포함한다. 하나는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이지만 일반적으로 이(진실)를 숨기고 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반면에 앙소르는 또 다른 면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것은 주로 정치인들이 마스크를 너무 일관되게 착용하여 결국에는 가면과 합쳐져 회복할 수 없는 부패의 상태에 빠져 정체성을 잃는다는 뜻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스크를 뒤집어 쓴 여러 인간들을 통하여 내면과 동일한 가면, 가면과 같은 인간, 가면도 인간도 아닌 거의 짐승과 같이 난폭한 모습일 수도 있다는 자화상을 표현했다.
이 자화상에서 앙소르는 스스로를 ‘광기의 바다’(마스크 천지) 속에서 온전함을 지향하는 유일한 피조물임을 제시한다. 그는 여러 가면의 입술에 칠해진, 마치 스캔들을 나타내는 것과 같은 붉은색을 띤 자신의 모자와 옷이 이른바 진실을 말한다는 정치인들의 입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