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포니즘’ 미술, 19세기 영국 프랑스 화단에 큰 영향

[아시아엔=김인철 미술평론가, 영문학자, 충북대대학원 강사] 고대 그리스의 호머(Homer)가 썼다고 하는 <오디세이아>는 유명한 ‘트로이 전쟁’의 매우 흥미로운 에필로그가 되면서 수천 년에 걸쳐 지금까지 큰 흥미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오딧세이’(Odyssey)라고 줄여 칭하고 있는 이야기에 영향을 준 것 중에는 중동 수메르(Sumer, 현재의 이라크 땅)에서 만들어진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의 비중이 크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호머의 기록보다 1500년 정도 앞섰으며, 큰 전쟁이 벌어진 후 주인공 길가메시가 이상적인 인간을 찾아 먼 길을 떠난다는 식의 구조가 ‘오딧세이’와 매우 유사하다.

한편, 오딧세이는 자신의 왕국을 대표하여 트로이(Troy) 전쟁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둔 후 자기 나라 이타카(Ithaca)로 돌아오는 도중 10년 넘게 지중해를 떠돌며 겪은 여러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넓은 지중해 여기저기에서 항로를 잃고 오가면서 외눈박이 괴물 키클립스, 부하들을 돼지로 만든 키르케, 외로움 때문에 오딧세이를 놓지 않으려 했던 칼립소, 어쩌면 마지막 사랑이었던 나우시카 및 사람 잡는 목소리의 무시무시한 여자 님프 사이렌(Siren) 등을 만나게 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천신만고 끝에 고향에 도착한 그는 그동안 자신의 아내(Penelope)를 괴롭히며 왕국을 도탄에 빠지게 만든 이른바 구혼자(suitor)들을 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모두 처치한다.

19세기 프랑스 화단에서 인상주의(Impressionism)라는, 일종의 약진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영국의 화단은 어쩌면 그와 반대되는 흐름의 단체가 만들어졌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뒤를 이었던 매너리즘의 화가들에 대한 거부와 더불어 보다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화풍을 되살리는 것이 이 예술가 집단의 목적이었다.

당시 영국 예술가들은 특히 라파엘(Raphael) 작품의 고전적인 자세와 우아한 구성이 아카데믹한 미술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완벽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었다. 이들이 바로 라파엘 전파(前派, Pre-Raphaelites)였다.

이들은 역사 회화와 재현, 자연의 모방이라는 개념을 미술의 주된 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런 방식의 참신성을 주장했는데 여러모로 대륙의 인상주의와는 아주 다른 흐름이었다.

한편, 1853년 일본은 미국에 의하여 17세기 이후 이어진 쇄국을 끊고 문호를 개방했다. 그리하여 마치 봇물 터지듯이 그들의 문화가 서유럽과 미국으로 전달되었다. 이렇게 이루어진 야포니즘(Japonism)은 단순히 ‘일본 취미’(Japanese taste)를 넘어 19세기 유럽에서 30여 년 이상 지속적으로 일본을 동경하고 선호했던 풍조로 자리 잡는다.

야포니즘의 시작은 일반적으로, 1855년 파리에서 열렸던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에 일본의 판화 및 화가들이 제작한 100여 점의 미술작품이 전시된 것을 그 기원으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채색 목판화였던 우키요에(Ukiyo-e, 浮世絵, うきよえ)의 대유행이었다. 따라서 그 시기 이후 유럽과 미국의 많은 미술가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런 영향 관계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눈에 띄는 작품이 바로 영국의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s)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의 ‘율리시즈와 사이렌’(Ulysses and the Sirens)이다.

앞서 살펴봤던 오딧세이에서의 내용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 일행이 겪는 모험 중 사이렌의 공격을 받는 모습이다. 작품을 보면, 일단 그림의 길이가 예외적으로 가로로 넓게 이루어져 있다. 이는 마치 우리에게도 익숙한 병풍(屛風)을 보는 것 같다.

일본 목판화에서는 3폭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꽤 있었는데, 서양에서는 이를 두고 3폭 목판화(triptych woodblock print)라고 불렀다. 이른바 3폭 병풍인 셈이다. 당연히 그림이 가로로 넓게 이루어지게 된다.

서유럽 세계에서 3폭 병풍 스타일이 꽤 유행했음은 휘슬러(James McNeill Whistler)의 작품 ‘황금 병풍’(Caprice in Purple and Gold-The Golden Screen) 등에서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이제 그림의 전체적인 내용과 형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여성 또는 중성의 사이렌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새(半人半鳥)로서, 바다를 지나는 뱃사공들에게 특유의 노랫소리를 유혹하여 죽음으로 빠뜨리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감미로운 소리를 들으면 도저히 그곳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림을 보면, 많은 사이렌이 앞뒤 좌우 가릴 것 없이 소리를 내면서 공격해오고 있다. 이때 이미 오딧세이(율리시즈)는 명령을 내려 부하들의 귀를 밀랍(蜜蠟, wax)으로 봉하고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돛대에 묶게끔 했다. 정말 어렵고 또 어려운 유혹의 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바다에는 엄청난 파도가 사납게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부하들은 위험 속에 있는 힘을 다하여 노를 젓고 있다.

사누끼의 전 황제 수도쿠가 부하들을 보내 타메토모를 구함(The Former Emperor Sutoku from Sanuki Sends His Retainers to Rescue Tametomo, Sanuki no in kenzoku o shite Tametomo o sukuu zu), Utagawa Kuniyoshi, 1851-1852, 34 cm x 24 cm, Museum of Fine Arts, Boston

이쯤에서 워터하우스의 그림과 매우 유사하게 이루어진 일본 목판화 한 작품을 보자. 또 다른 그림은 우타가와 쿠니요시(Utagawa Kuniyoshi, 歌川國芳, 1798~1861)가 제작한 것이다. 1843년 만들어진 3폭 병풍으로 이루어진 목판 채색화로, ‘사누끼의 전 황제 수도쿠(Sutoku, 崇德)가 부하들을 보내 타메토모를 구함’(讃岐の院眷属をして為朝をすくう図, The Former Emperor [Sutoku] from Sanuki Sends His Retainers to Rescue Tametomo, Sanuki no in kenzoku o shite Tametomo o sukuu zu)이 작품의 제목이다.

작가 우타가와 쿠니요시는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대가 중 마지막을 장식한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업 범위는 풍경, 미인, 가부키 배우, 고양이와 신화적 동물 등 매우 넓었다. 그는 사무라이(samurai, 侍, さむらい)들의 전설적인 전투 장면도 잘 그렸다. 아울러 독특한 매력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전설적인 무사들의 모습은 물론 그들의 꿈과 좌절, 귀신들의 모습과 주술적이며 초인간적인 면모 등을 나타내면서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림을 보면, 어떤 상징처럼 거대한 고래에 의하여 난관에 빠진 듯한 배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사방에는 고래에 의한 만들어진 것 같은 거대한 파도가 치면서 사람들이 물에 빠져 있다.

이때 새 모습을 한 바다의 회색빛 악령들이 달려들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대부분 사람이 물에 빠진 채 오직 한 사람만이 배에 남아 배를 지키고자 한다. 그러자 악령들이 그 사람을 목표로 달려들고 있다. 이는 마치 돛대에 스스로 묶여 사이렌들의 치명적인 유혹을 물리치려는 오딧세이와 부하들의 모습과 거의 일치한다. 특이하게도 달려들고 있는 검정의 새들 역시 사이렌과 매우 비슷하다.

이렇게 파도치는 바다의 설정과 배, 그리고 그 안에서의 분투와 두 사람의 주인공, 그리고 사람들을 향하여 달려드는 새와 같은 악령, 사이렌의 설정은 굳이 두 작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색채와 구도의 유사성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그 명확한 영향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식으로, 서양 미술에서 꽤 많은 작가가 일본 채색 목판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는 결국 인상주의에 이어져 서양 현대 회화에서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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