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④] 고흐 마지막 작품 ‘나무뿌리’ 단서 된 우편엽서

빈센트 반 고흐의 나무뿌리, 1890, 50.3 x 100.1  

[아시아엔=김인철 미술평론가]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밀이 무르익은 들판에서 자신의 아랫배에 스스로 권총을 발사한다. 그렇게 시도한 자살은 1890년 7월 27일의 일이었고, 사흘째 되는 7월 29일 그는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면서, 마치 신앙처럼 절실하게 살아온 37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일찌감치 세상을 떠난 화가 빈센트가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은 어떤 것이었을까? 사람들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가 그린 마지막 그림으로 여겼었다. 그 이유는 수확을 바로 앞에 둔 밀밭을 보고 베어져 없어지는 이별을 직감한 고흐의 순수한 감성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아를과 오베르에서 매우 많은 밀밭 그림을 그리면서 그것들을 인간의 삶과 연결하며 심각한 통찰을 부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미술사가, 평론가, 전문가들은 바르비종파 화가 ‘도비니의 정원(Daubigny’s Garden, Hiroshima Museum of Art)’을 마지막 작품이라며 입을 모은다. 그런데 그렇게 그려진 매우 순수하고 일상적인 정원 모습으로 인하여 그의 자살이 과연 진짜였는지에 대한 적지 않은 의문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의 학예사들이 사진으로 된 한 점의 우편엽서를 근거로 빈센트의 또 다른 마지막 작품을 추정했다. 그것은 반 고흐가 사망한 곳인 오베르-수-와즈(Auvers-sur-Oise)의 도비니街(rue Daubigny) 주소로 된 장면이 인쇄된 우편엽서였는데, 사진 속 장소는 당시 빈센트가 살던 집(Auberge Ravoux)에서 불과 1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다.

빈센트가 살던 집(Auberge Ravoux)에서 불과 150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풍경을 담은 우편엽서. 고흐박물관 학예사들은 이 엽서를 근거로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을 ‘도비니의 정원’으로 추정했다. 

알다시피 빈센트는 1890년 5월 남프랑스 상-레미(Saint-Rémy)에 있는 정신요양소를 나온 후 생의 마지막 두 달을 파리 서북쪽의 이곳 작은 마을에서 보냈다.

위의 작품은 또 다른 마지막 그림으로 여겨지는, 거대한 나무뿌리들의 모습이다. 그의 미술 수업 초기였던 1882년의 헤이그(The Hague) 시절로 돌아가면, 그는 적지 않은 수의 나무뿌리(나무둥치)를 그렸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사실 역시 동생(Theo)에게 보낸 편지 속에 언급되어 있다. 그는 당시 소묘를 주로 그리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나무뿌리 그림을 보면, 첫인상으로 마치 뒤범벅이 된 밝은 색상들과 함께 환상적이면서 추상적 형태를 느끼게 되며, 이어 기울어진 나무둥치와 뿌리를 파악할 수 있다.

이회토(泥灰土) 성분의 흙 속에 보이는 나무는 굵기가 목재로 쓸 수 있을 정도이며, 아울러 오베르 지역에서는 관련 채석장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이 미완성이기 때문에 빈센트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림을 두고 동생 테오(Theo van Gogh)의 처남인 안드리스 봉허(Andries Bonger)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죽기 전날 아침, 그는 태양과 생명으로 가득한 숲의 풍경(sous-bois)을 그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미술관의 한 학예사(Jan Hulsker)는 빈센트가 사용한 고유의 캔버스 중 하나가 맞으며, 처음 작품을 보는 이들은 나무둥치와 뿌리를 분간하기 어렵고 따라서 전체적인 주제 파악 역시 힘들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들(Van der Veen, Knapp)은 땅 아래에서 뒤틀려 있는 두 개의 형태를 주목하면서 이는 독일 표현주의(German expressionism)와 추상회화(抽象繪畵, abstract painting)의 전조(前兆)를 알린 중요한 그림이라고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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