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⑥] 마네의 ‘절친’ 자카리 아스투르크의 ‘초상’

자카리 아스투르크의 초상(1866년, 90×116 cm)

[아시아엔=김인철 영문학자, 미술평론가] 인상파 화가들과 관련이 깊었던 자카리 아스트루크(Zacharie Astruc, 1833~1907)는 두어 차례 소개했음에도 여전히 생소한 이름이다.

아스트루크는 19세기 파리 미술계에서 꽤 비중 있던 인물로, 조각가이자 화가, 시인, 미술평론가였다. 이미 소개했던 앙리 팽텅-라투(Henri Fantin-Latour)가 그린 ‘바티뇰의 스튜디오’(A Studio in the Batignolles, 1870, Musée d’Orsay)에서 그는 앞줄 가운데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작 그를 볼 수 없지만, 인상파 화가 프레데릭 바지유(Frédéric Bazille)의 화실이던 파리 ‘라 콩데민가 9 화가의 스튜디오’에서 역시 그들과 함께 있었다고 한다.(작년에 펴낸 졸저 <내 손 안의 작은 미술관> 표지 참조)

두 작품 속에는 당시 인상주의를 이끌던 주요 화가 및 비평가 여러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스투르크는 스페인 문화 찬미자(hispanophile)로, 그곳의 문학과 미술에 정통하여 프랑스에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1864년 스페인을 다녀온 후 친한 친구였던 마네에게 여행을 권장하면서 구체적인 준비까지 시켰다. 그리하여 마네 역시 1865년 그곳을 다녀왔는데 이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받아 그의 작품세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만들었다. 아스투르크는 특히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그림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고 소개했으며, 1860년대와 1870년대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일본풍 운동(日本風, Japonism movement) 역시 이끌었다. 그는 당시 파리 문화계를 대표하던 신문(L’Etendard)에 야포니즘과 스페인 미술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그는 특히 매우 열정적 자질을 지녔던 친구 마네의 작품세계를 줄곧 지켜봤던 비평가이기도 했다. 마네에게 스페인에 다녀오게끔 하여 그의 미술세계에 깊이를 더했던 것처럼 그는 친구 마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눈물겹도록 혁신적인 노력을 매우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줄기차게 글로 용기를 북돋웠던 비평가였다.

마네는 인상파 화가들에게 우호적인 비평가이자 문인 에밀 졸라(Émile Zola)와 스테판 말라르메(Stéphane Mallarmé)의 초상화도 그렸다. 아스투르크의 초상화 역시 그가 그렸다.

그의 시선은 보는 이들과 마주하고 있다. 검정색 재킷을 걸치고 안쪽에 입은 흰색 옷은 린넨처럼 반짝여 보인다. 아울러 버건디(burgundy) 색상의 하의와 그 안쪽으로 빨간색 언더 셔츠를 입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마치 고통스러운 제스처처럼 심장 쪽으로 오른쪽 팔을 집어넣고 있다.

또한 검은 머리카락의 그는 두터운 얼굴 윤곽에 수염을 기르고 있으며, 머리카락과 재킷이 벽의 검은색 배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질감 정도다. 그의 옆에는 책, 스케치북, 그림도구 및 연필 등이 덮인 작은 탁자가 보인다.

그 물건들로 인하여 그가 화가, 시인, 조각가, 미술평론가라는 정체성을 알게 된다. 테이블을 덮고 있는 천처럼 그 위에 걸쳐진 직물에서도 버건디 색조를 볼 수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작품의 흥미로운 모습은 테이블 뒤에 있는 왼쪽 배경이다. 마네는 거실을 청소하는 여성과 함께 주인공의 삶에 대한 또 다른 엿보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여인은 흰색, 회색 및 파란색 음영으로 조명이 이루어지는 배경과 비슷한 색조의 흰빛이 도는 회청색 옷을 입고 있다.

마네는 이렇게 다양한 색조와 음영 영역을 강조하면서 그림을 계획적으로 꾸며나갔는데 이런 점으로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후 최고의 화가로 그를 평가하게 된다. 물론 그런 면모는 그가 남긴 불후의 명작 ‘풀밭 위의 점심 식사’(Le Déjeuner sur l’herbe, 1863, Musée d’Orsay)에서 정점을 이루었다.

아울러 이 작품에서 그는 사실주의적 기법과 함께 인상주의의 방식을 성공적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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