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⑤] 마네의 ‘말라르메의 초상’

스테판 말라르메의 초상

[아시아엔=김인철 미술평론가] 프랑스의 클래식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는 1894년 유명한 ‘목신의 오후 전주곡’(Prelude to the Afternoon of a Faun,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을 발표했다.

이는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의 같은 제목의 시(L’après-midi d’un faune)에서 따온 것으로, 서양 고전 음악사에서 전환점을 기록한 작품이었다고 한다. 아울러 곡은 나중에 발레곡으로도 편곡이 되었다.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는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문학계를 이끈 지도자와 같은 존재였다. 언어의 고유성, 상징성 및 인상에 중점을 둔 상징주의(Symbolism)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그는 고교 영어교사 출신으로,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의 ‘갈가마귀’(The Raven)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대 파리의 여러 문학인, 음악인 등과 가깝게 교류했으며, 이후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폴 클로델 등 20세기 초 프랑스 문학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아울러 말라르메는 인상파 화가들과 무척 가까웠다. 화가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의 제수씨이자 유명 여성 인상파 화가 베르트 모리소(Berthe Morisot)가 세상을 떠나 마네의 조카 쥴리 마네(Julie Manet, 1878~1966)가 졸지에 홀로 되었을 때 그녀의 후견인이 되어 보살폈을 정도였다.

마네는 1876년 말라르메가 출판했던 시집(Après-midi d’un faune)에 판화로 삽화를 그렸고, 말라르메의 초상화를 그렸다. 두 사람은 1년 전에 에드가 앨런 포의 ‘갈가마귀’ 출판에도 함께 번역과 삽화 작업을 했었다.

거의 10년 넘게 파리 예술계에서 자주 만나 줄기차게 회화, 문학, 그리고 미학은 물론 고양이와 여성의 패션 등을 함께 논했을 정도로 그들의 우정은 매우 깊었다.

그리하여 마네는 1866년 고향 친구이기도 했던 ‘에밀 졸라의 초상화’(Portrait of Emile Zola, Musée d’Orsay, Paris, 이미 소개)를 그렸던 것처럼 말라르메에게도 감사와 우정의 뜻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 말라르메는 파리의 콘도르세(Condorcet)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 역시 졸라처럼 마네의 회화는 물론 인상주의를 칭찬하고 격려하는 글을 많이 발표했었다.

말라르메는 마네를 위하여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했고, 마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자세의 모델을 위하여 작은 크기의 캔버스를 선택했다. 쿠션에 등을 기댄 시인은 한 손은 코트 주머니에, 다른 한 손은 종이 뭉치 위에 놓고 있다. 이는 최근에 출판된 기사 혹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암시이다. 또한 그의 손은 우아한 제스처를 만들면서 커다란 시가(담배) 하나를 피우고 있다.

그림은 인상파, 즉 그 대표자에 해당하는 마네의 작품답게 춤추는 듯한 붓터치로 이루어진 화면으로 되어 있다. 마치 솔직한 스냅사진을 찍은 듯 시인의 모습에는 활기가 넘친다.

모델 자신이 ‘호기심 가득 표현된 작은 그림’이라고 불렀던 이 세련된 작품은 시인의 가족 소유였다가 1928년 현재의 미술관으로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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