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회화속 여성탐구⑤]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 ‘줄리아 스티븐’의 초상
어떤 여인을 그린 초상화로 보이는데 마치 전체가 아닌 부분을 그린 것 같다. 그리 밝지 않은 실내에는 왼쪽 약간 앞쪽에 창이 있거나 조명이 있는지 그곳에서 빛이 내려와 주인공의 오른쪽에 제법 진한 그림자를 남겨 놓고 있다.
전체적인 톤은 초록과 브라운이라는 두 개의 색상으로 일단 요약되며, 그 사이에 흰색과 그림자를 나타내는 검정에 가까운 색상으로 구분이 된다.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과 많은 부분 눈에 들어오는 초록 계열 색상은 보색(補色)을 이루면서 가운데 보이는 인물을 강조하고 있다. 명과 암의 거의 극단적 대비를 통하여 인물의 극적인 면이 두드러지며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러면서 인물의 이마에서 내려온 흰색에 가까운 밝은 부분이 오른쪽 아래로 사선을 이루고 있는데,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명의 흐름을 만들면서 보는 이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표정에 어떤 역동성을 부여한다. 반면에 왼쪽 아래로 두 손이 겹치게 되는 갈색 분위기는 정적인 모델에게 동적인 암시를 주고 있다.
시야를 조금 확대하여 실내를 살펴보면, 커튼의 색상과 문양, 등을 대고 있는 의자 장식, 어깨에 걸친 외투의 밝은 색상, 귀걸이, 목장식, 기타 의상 디자인 등으로 부유한 여인의 우아한 면모를 알게 해준다. 게다가 헤픈 웃음 같은 것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약간 단호한 표정 역시 모델의 위치와 신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작은 초상화를 통하여 굳이 역사로까지는 거론되기 힘들지만 어떤 저명한 가족의 한 사람이 아닐까 여기게 된다.
그림 속의 모델은 줄리아 프린셉 스티븐(Julia Prinsep Stephen, 1846~1895)이란 여성으로, 결혼하기 전의 이름은 줄리아 잭슨(Julia Jackson)이었던 꽤 유명한 영국 여인이다.
그녀는 전기작가, 비평가, 문학지 편집자, 수필가였던 레슬리 스티븐 경(Sir Leslie Stephen)의 부인이자 영국의 대표적 여성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화가 바네사 벨(Vanessa Bell)의 어머니이면서 라파엘 전파(Pre-Raphaelite) 화가들의 모델, 그리고 블룸스버리 그룹(Bloomsbury Group)의 회원이었다.
줄리아는 영국에서 인도로 파견된 아버지로 인하여 캘커타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와 두 여동생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후 이모이자 초창기 사진 미술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여성 사진작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의 모델이 되었고, 이어 라파엘 전파 화가들의 눈에 띄었다.
첫 번째 결혼은 남편 허버트 덕워스(Herbert Duckworth)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세 아이와 함께 홀로되는 불운으로 끝났다. 그렇지만 불행을 딛고 서려는 의지가 강했던 그녀는 이후 인생에 대한 운명론자가 되어 불편한 사람들을 간호하는 등의 자선사업을 펼쳤고, 한편으로 글을 쓰면서 보냈다. 그러다가 레슬리 스티븐과 재혼한다.
그녀는 이모 마가렛 카메론에게 멋진 모델이 되어 50점이 넘는 사진 작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대부분 1864년부터 1875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들로, 나중에 만들어진 것들은 약혼했던 시기의 사진들인데, 사진작가 카메론은 조카 줄리아의 모습을 청교도적으로 깔끔하면서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상징적인 표현에 적합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쥴리아의 초상화는 프랑스 화가 자크-에밀 블랑시(Jacques-?mile Blanche, 1861~1942)의 작품이다. 블랑시는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후 런던과 파리에서 활약했던 성공적인 초상화가였다.
파리 출신으로, 아버지가 심리치료 전문가로 꽤 유명한 클리닉을 운영했기 때문에 부유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리하여 앙리 제르벡스(Henri Gervex)에게서 그림을 배웠지만, 대부분 그가 거의 독학을 통하여 그림을 터득했고 성공에 이르렀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유명 화가였던 토마스 게인스버러(Thomas Gainsborough)와 마네(?douard Manet),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1870년 일어난 보불전쟁을 계기로 영국으로 건너가 줄곳 그곳에서 활약하면서 파리의 쌀롱에도 작품을 출품했다. 평소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와 매우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초상화도 그렸으며, 자신이 책을 낼 때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아울러 그는 미국 출신으로 당시 파리 문화계의 거물이었던 거르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의 자서전에서도 언급된다.
블랑시는 프루스트 외에도 오브리 비어즐리, 제임스 조이스, 에드가 드가, 클로드 드뷔시, 아우구스트 로댕, 토마스 하디, 존 싱어 사전트 등의 초상화 역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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