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⑧] ‘히파시아’···맹목적·폭력적 광신에 대한 ‘개탄’
[아시아엔=김인철 미술평론가, 충북대 대학원 강사] 하이페시아 또는 히파시아(히파티아, Hypatia, 355~415)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테온(Theon)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으며, 아울러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었던 알렉산드리아도서관의 관장이기도 했다. 그는 딸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은 물론 지식을 만들고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분별력까지 가르쳤다.
그녀가 수학자로서 명성을 알리기 시작한 곳은 보다 수준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한동안 머물렀던 그리스 아테네에서였는데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을 때 이미 수학과 철학을 담당하는 교수가 되어 있었다. 강의에도 재능이 있어서, 그녀의 강의를 듣기 위해 외국의 여러 지역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을 정도다.
그녀는 수학, 천문학 관련 저술활동도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쉽게도 집필한 책은 단 한 권도 남아있지 않다.
평생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연구와 강의에 몰두하던 히파시아였지만 그녀의 죽음은 허망하고 처참하기만 했다.
그녀의 일생을 그린 영화가 바로 2009년 출시된 스페인의 영화 <아고라>(?gora)이다.
레이첼 웨이즈(Rachel Weisz)가 히파시아 역을 맡아 ‘살아 있는 인간군상과 참인간의 모습 그리고 참다운 종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한편으론 국내 일부 기독교단체들의 상영거부 움직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 속 줄거리를 근거로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의 이방신을 섬기는 시민들과 대항했던 그리스도교계의 대표자 시릴(Cyril of Alexandria)은 열성적으로 이교도에 대한 숙청에 성공하고, 주적이 사라지자 알렉산드리아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를 비롯한 알렉산드리아 도시의 절반을 차지하는 그리스도교들은 성난 군중으로 돌변하여 이교도와 시민들에게 마구잡이로 돌을 던지며 학살을 일삼았다.
그렇게 권력을 차지했고, 교회 내 다른 종파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등 악행을 일삼았던 시릴 주교는 훗날 성인으로 교회에서 추앙을 받았다.
영화는 히파시아가 종교적 살인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알렉산드리아라는 대도시의 비극에 맞추었다. 1400년 후 케플러(J. Kepler)에 의한 우주적 발견을 앞서 예견했던 과학자 히파시아는 신앙과 정치의 이름으로 자행된 무분별한 행위에 의하여 비참하게 죽게 된다.
시릴의 유일한 반대세력으로 보이는 오레스테스(Orestes)와 맺은 우정과 신뢰로 인하여 그녀는 두 파벌 사이에서 정치 보복을 위한 인질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기독교와 정치에 세뇌된 폭도들은 대학으로 강의하러 가는 히파시아를 마차에서 끌어내어 안구를 뽑아내고 벌거벗긴 후 날카롭게 간 굴껍데기 혹은 깨진 타일 조각 위에 질질 끌고 다니는 고문을 가한 다음 불에 태워 죽였다. 이런 죽음으로 인하여 히파시아는 역사상 가장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 중 하나이다.
히파시아의 그림들 역시 적지 않게 제작되었는데, 찰스 윌리암 미첼(Charles William Mitchell)이 그린 이 작품이 의외로 많이 알려졌다.
뉴캐슬(Newcastle upon Tyne) 출신의 작가는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의 동료화가였던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와 여러모로 유사한 작품들을 남겼다.
작가에 대한 정보보다는 그가 남긴 히파시아에 대한 것을 더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당시의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 성공회 사제 겸 교수였던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의 연작소설 <히파시아, 오랜 친구인가 아니면 새로운 적인가>(Hypatia, or New Foes with an Old Face)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 속의 히파시아는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그녀의 긴 머리로 앞을 여미고 있는 자세다. 흡사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이는데 장소는 기독교 교회다.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무지한 믿음, 정치적 믿음, 맹목적적이고 폭력적인 광신(狂信)에 대한 개탄을 알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