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⑫] 위그 메를의 ‘동굴의 막달라 마리아’

동굴의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 in the Cave), 위그 메를(Hugues Merle), 1868, 45,1 x 59,7 cm, 개인 소장

막달라 마리아(Maria Magdalena)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및 관련 과정 중 여러 장면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그리하여 예수의 배우자였거나 비서 또는 수제자였다는 설이 있고, 그녀를 조상으로 숭배하던 교파와 교단이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동부에 존속하기도 했다는 설이 이어진다.

예수가 죽은 후, 막달라 마리아는 언니 마르타(St. Martha) 등과 함께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Marseille)로 가서 동굴 속에서 은둔했고, 매일 일곱번씩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죽은 후 그녀의 유해는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교외의 생-막시맹-르-쌍트-봄(Saint-Maximin-la-Sainte-Baume)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생-막시맹-르-쌍트-봄 지역에서는 지금도 막달라 마리아의 유해를 보관,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1295년 세워진 지역 성당 역시 그녀를 위하여 봉헌된 것이다.

또한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던 기간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피를 잔에 담아 배를 타고 서유럽으로 가져갔다는 전설도 있다. 그녀는 알렉산드리아로 피난한 뒤 더 안전한 곳을 찾아 사라(St. Sarah, 막달라 마리아의 딸이라는 설도 있다)와 함께 프랑스의 프로방스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크 메로빙거 왕조(Merovingian dynasty)의 왕 메로베크(Merovech)와 클로비스(Clovis) 1세라고 주장한다. 댄 브라운(Dan Brown)의 <다 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런 맥락과 함께 그림을 감상한다면 그럴듯한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게다가 그림은 예상 밖으로 파격적이며 현실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진 현대적 모습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종속적 인물이거나 예수의 죽음에 마냥 비탄에 빠졌던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 아닌, 그녀의 정체성을 매우 대담하게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녀의 기울어진 자세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런 까닭에 화면 전체가 경사진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 위의 모습이 캔버스를 모두 차지하고 있으며, 특유의 머리카락이 양쪽 어깨 폭 보다 더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찍이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의 발을 닦으며 회개를 구했었다.

화면 왼쪽 위로는 잔가지로 만든 십자가가 보인다. 먼 거리를 이동한 그녀는 이제 막 그곳에 도착하여 들에 있는 나무를 깎아 십자가를 만들었다. 가로막대에는 마치 예수의 피가 묻은 것처럼 붉은색이다. 그리고 그 위로 하늘이 보이는데 동굴에 있는 까닭에 일부만 열려있다. 그곳을 통하여 그녀 역시 하늘로 오를 것이다.

한편, 그녀의 표정은 위험할 정도로 심각하다. 두 눈 아래로 어떤 고뇌 또는 그리움, 갈망, 믿음이 뒤섞여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여인이 겪게 되는 전형적 고뇌의 총체가 나타나 있는 셈이다.

이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는 다르게 해석되는 부분으로, 어머니로의 마리아가 비교적 긍정적인 번뇌의 일면이라면, 막달라 마리아는 그런 일반적인 여성의 어쩔 수 없는 굴레, 운명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오른쪽 머리카락 안으로 파고든 십자가는 그녀의 순결한 몸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작가 위그 메를(Hugues Merle, 1822~1881)은 라 쏜(La Sône) 출신으로, 국립미술학교(École des beaux-arts)에서 배운 아카데미파 화가였다. 감성적이면서 도덕적 주제의 그림을 그렸고, 흔히 같은 아카데미파 화가로 유명했던 윌리엄-아돌프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와 자주 비교된다. 그림의 양식과 기법에서 매우 유사하여 라이벌로도 불린다.

메를은 쌀롱에서 2등 상 두 번과 기사 메달을 받았을 정도로 실력파였는데, 이후 유명한 미술품 중개상 폴 뒤랑-뤼얼(Paul Duran-Ruel)의 친구가 되었고, 이후 부게로와도 알고 지냈다.

1881년 파리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조르쥬(Georges Merle) 역시 화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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