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16] 드레퓌스사건으로 충돌, 드가-캐섯의 우정과 ‘가을의 리디아 캐섯’
드가Edgar Degas가 이끄는 판화 수업을 캐섯Mary Cassat이 열심히 따라 하던 1879년부터 1880년 가을, 겨울에 두 사람은 가장 긴밀하게 협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드가는 작은 판화인쇄기를 갖고 있었는데 낮에는 그의 다른 그림 도구들과 인쇄기를 사용하며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일을 했고, 저녁에는 다음 날 이루어질 동판화에 대한 구상을 했다.
그러던 1880년 4월 드가는 공동 작업을 하고 있던 판화 출판 작업에서 돌연 물러났는데 그러는 바람에 연작 프로그램은 끝이 나고 말았고 이로 인하여 캐섯 역시 더 이상 인쇄와 관련된 보다 진전된 작업을 하지 못했다.
과정은 조금 달랐지만 석판화lithography를 마스터하여 몽마르트르의 여러 업소는 물론 영국에서까지 수준 높은 작업을 했던 툴루즈-로트렉의 예Divan Japonais, 1893,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에서 당시 판화의 유행과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드가와 캐섯의 관계를 가늠하고자 할 때 중요한 사실은 서로 자신의 견해에 솔직했다는 점도 들 수 있겠다.
그들은 결국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을 두고 충돌하고 말았는데 그녀는 화가 초창기 시절 그 사건의 중심에 있으면서 사법적 조치의 대상이었던 프랑스군 대위의 친척이었던 미술 수집상 모이스 드레퓌스Moyse Dreyfus의 초상화를 마무리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드레퓌스 문제로 서로 언성을 높였지만 드가가 반여성적 발언을 할 경우나 인상파의 그림이 상업적으로 발전해갈 때 별 반대 없이 지냈고 결국 1917년 드가가 죽기 직전까지 서로의 작업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참고로, 드레퓌스 사건은 보불전쟁이 끝난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휩쓸었던 군국주의, 반유태주의, 강박적인 애국주의를 고취시킨 한 사건을 말한다. 억울하게 옥살이한 프랑스 포병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 Alfred Dreyfus의 간첩 혐의를 놓고 프랑스 사회가 무죄를 주장하는 드레퓌스파와 유죄를 주장하는 반드레퓌스파로 양분되어 격렬하게 투쟁했던, 일종의 정치적인 스캔들이었다.
당시 부모를 잃고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와 인상파 화가 르누아르의 보살핌을 받던 베르트 모리소의 딸이자 에두아르 마네의 조카였던 쥴리 마네가 우연히 르누아르의 드레퓌스에 대한 견해를 듣고 놀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아무튼 캐섯의 명성은 엄마와 아이를 주로 다루면서 엄격하게 절제된, 그러면서 부드러운 관찰로 이루어진 그림과 판화라는 광범위한 연작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들 수 있다. 이런 그녀의 세계에는 관련된 여성들의 모습 역시 포함된다.
작품을 보면, 가을빛이 완연한 공원 벤치에 한 여인이 앉아 있는데 그녀는 작가 매리 캐섯의 동생 리디아이다.
캐섯이 자주 모델로 삼았던 리디아는 지속적으로 재발하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그러다가 1882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 일로 인하여 매리 캐섯은 한동안 붓을 들 수 없었다.
작품을 보면 화면 위와 아래에는 가을빛을 나타내는 가을바람과 같은 붓터치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친구이자 동료 여성 인상파 화가였던 베르트 모리소의 기법을 느끼게끔 만든다.
당시 프랑스 비평가들은 모리소의 기법을 두고 ‘스치듯 가볍게 지나치는 붓터치'(effleurer)라며 비난과 칭찬을 섞어 언급했는데 그런 그녀 방식의 붓터치가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가을이라는 계절이 이제 겨울 속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가을빛이랄 수 있는 붉은색에 가까운 갈색조 색상이 리디아가 입은 옷 아래에서 위로 이어지면서 그녀의 얼굴을 비교적 분명하게 마무리하고 있다. 검정색 모자와 같은 색상의 목을 완벽하게 감싸고 밑으로 내려가는 스카프 역시 위 아래에 이루어진 회오리 바람으로 만들어진 그림의 감정을 진정시키고 있다.
아울러 인물을 주제로 한 작품답게 보는 이의 시선은 결국 리디아의 얼굴에 고정되며 그녀의 표정을 살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