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19] 덴마크 출신 일스테드의 ‘책 읽는 소녀’

책 읽는 소녀가 있는 실내(Interior with girl reading), Peter Ilsted, c. 1910, Art Renewal Center, Port Reading, NJ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가 남긴 글이나 그림을 보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의 치열하고 끊임없던 노력과 집중 때문이다.

그림이라는, 어찌 보면 하찮게 볼 수 있는 물질적 결과물을 남겼지만, 그는 그 안에 정신적이며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자 애를 썼고, 성공을 거두었다. 게다가 그렇게 하고자 온몸을 다 녹여 없애 버린, 그야말로 예술 탐구에 목숨을 바친 그의 인생은 언제나 커다란 무언가를 준다.

그는 전형적인 북유럽인 자체였다. 그가 남긴 방식이었던 북유럽적 표현주의(Expressionism)가 많은 작가에게 영향을 주었고, 현대 주류회화 속에서 거의 그의 방법론을 읽을 수 있으며, 아울러 적지 않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 고흐 시기 또는 그 이후의 스칸디나비아 작가들의 그림들 역시 많이 볼 수 있는데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 1863~1944)를 비롯한 적지 않은 화가의 그림 속에서 반 고흐의 영향 관계나 특유의 표현양식을 알게 된다.

한편, 또 다른 네덜란드 화가인 얀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Jan Vermeer, 1632~1675) 역시 북유럽 회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는데 그가 이룩했던 ‘실내 묘사의 전형’에서 특히 그렇다.

그의 실내에는 비교적 소박한 벽 장식이 있고 예외 없이 창이 보이는데 그 창가에서 언제나 무슨 작업이 이루어진다. 음악 연주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거나 과학 연구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거나 우유를 따르거나 거래를 하거나 말이다.

신화나 역사, 위인, 기독교 등이 아닌,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그림을 주제로 그는 그렇게 하나의 양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방식 역시 북유럽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네덜란드, 독일을 비롯한 북쪽 지역 회화에서는 이렇게 일상의 간절한 삶이 매우 소박하고 치밀하게 그려져 있다. 모두 매우 흥미로운 그림들이다.

위 그림을 그린 페테르 일스테드(Peter Ilsted, 1861~1933)는 덴마크 출신으로, 지금 보고 있는 작품과 유사한 작품들을 주로 그려 남겼다. 그가 그린 실내에는 뜨개질이나 독서 등에 몰입한 여인들이 나타나며 밝지 않고 화려하지 않은,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어둡지만 적당하게 아름다운 조명의 실내 또는 우아한 커튼이 내려진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밝혀진 방안의 여인들은 거의 뒷모습, 옆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정면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렇게 이루어진 공간은 결코 빈한한 집안의 모습이 아닌,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는 중산층 가정의 실내이다. 누가 말했던가. 북유럽인은 책 읽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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