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20] 자크-루이 다비드 ‘세네카의 죽음’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네로(Nero) 황제의 암살 음모에 가담했던 사실이 드러나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네로는 그에게 자살을 명했는데, 이때 세네카의 부인 역시 남편을 따라 죽음을 택했다. 부부는 형장에서 빨리 세상을 뜨고자 정맥(靜脈)을 내밀었지만 그리 빨리 죽음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세네카는 여자 시종에게 부탁하여 서로의 죽음 집행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약해지는 것을 막고자 자신과 부인을 떼어놓게 하였다. 그렇게 어렵게 형에 대한 집행이 이어졌는데, 결국 세네카의 부인(Pauline)은 네로에 의하여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림을 보면, 의사가 세네카의 발목을 날카로운 것으로 그었고, 그래서인지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그러자 한 노예가 다가와 독약을 건네는 과정이 담긴 장면이다.
또한 흐르는 피를 받으려고 세네카의 발밑 아래에 놓인 양동이도 보인다.
배경에는, 처형을 집행하게끔 네로가 파견한 ‘100인 대장’이 서 있으며, 그의 오른편에서는 한 제자가 사형으로 죽어가는, 도덕적으로 당대 최고의 존엄인 철학자의 마지막 말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위로 길게 솟은 굵은 기둥들과 기념비적 조각상들을 비롯한 장식들은 로마의 대표적 스토아학파(Stoa 學派) 철학자의 소박한 집이라기보다는 화려한 오페라(Opera)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리고 여자들의 우아한 의상과 핑크와 청색의 산뜻한 색조들 역시 연극에서의 몸짓과 소품들을 보는 것 같다.
로코코(Rococo) 방식으로 이루어진 장식적 구성은 1773년 화가들을 로마로 보내주고자 했던 공모전인 아카데미 대상전(Academy for the Grand Prix de Rome, 실제로는 쌀롱, le Salon)에서 엄선하여 지정한 주제를 그린 그림이라 하기에는 어딘가 어색한 모습이다.
실제로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 1748~1825)는 고전적 방식에 몰두하면서 시류에 편승하길 거부했었지만, 공모전 출품에는 약간의 변화를 주고자 했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은 다비드라는 천재를 인정하면서도 그의 이번 그림에서만은 절대적 신뢰를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 그는 벌써 세 번째 출품이었다.
이 작품 이전 해 두 번째 출품에 또다시 2등이 되어 로마로 갈 수 없게 된 그는 작품을 며칠간 걸어두는 항의 시위까지 했었다.
결국 자크-루이 다비드는 영원한 도시(로마)로의 문을 열어 준 로마 대상전(Prix de Rome)에서 최고상(Erasistratus Discovering the Cause of Antiochus’ Disease, 1774, ?cole nationale sup?rieure des beaux-arts, Paris)을 받기까지 또 한 해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후 다비드는 로마로 가서 로코코의 기법을 받아들였고, 그런 다음 바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대표작가로 변신하게 된다. 로코코 미술은 필자의 다른 칼럼 ‘초상화로 살펴보는 역사’에서 다시 자세히 언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