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22] 대표적인 인상파 존 사전트 ‘베니스 거리에서’

‘베니스 거리에서'(Street in Venice), 존 싱어 사전트 작, 1882, 45.1 x 53.9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인상주의의 진전은 두 갈래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피사로(Camille Pissarro), 모네(Claude Monet) 등이 이루어낸 야외 풍경, 즉 외광파(en plein air)를 들 수 있으며, 둘째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드라마틱한 구성인데 바로 마네(Édouard Manet)와 드가(Edgar Degas),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등이 이룩했던 방식이다.

그렇게 나누면서 생각해보면, 실내(indoor)와 실외(outdoor)라는 아주 상반된 방법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렇게 달랐던 두 가지 스타일에 매우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르네상스 이후 수백 년 이어지던 아카데미, 즉 고전파에서 몰입하고 있던 주제를 비롯하여 제재들과 비교하여 내용과 형식 모든 것이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다.

고전파에서는 기독교, 신화, 위인 등을 주제로 하면서 그것들로 이루어진 사람들의 면모를 그렸고, 풍경 역시 그런 주제를 묘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보조적 요소였다. 따라서 고전파 화가들이 밖에서 이젤을 펴놓고 사생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으며 기본적으로 귀족이나, 부르주아, 성직자 등으로부터 미리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려야 했던 그들에게 그림에 대한 실험 같은 것을 할 시간적, 물질적 여유조차도 거의 없었다.

인물을 그릴 경우에도 그리스 신화 속이나 성경 속의 주요 캐릭터, 아니면 귀족, 성직자, 이름 난 부호 등이거나 그들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극적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만일 그렇게 추구했던 그들만의 ‘틀에 박힌 방식’에서 벗어나면 바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행위는 국가 공식의 화가 등용문이었던 ‘쌀롱’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들에게 반기를 들면서 어쩌면 일탈에 가까운, 그리고 혁신적 실험을 시도한 작가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인상주의자들이었다. 인상주의는 그들만의 풍경을 추구하기 위하여 바깥에서 그림을 그리며 실험했고, 사람이 들어간 장면 역시 실제 생활 속의 주변 인물들을 주로 그렸다.

인상주의자들은 이른바 고전파이자 아카데미파들과 크게 대립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결국 대단한 승리를 거두면서 현대 미술을 본격적으로 열게끔 만든다.

그렇게 인상주의가 승리를 거두고 있을 무렵 두각을 나타낸 화가들이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1856~1925)라고 할 수 있다.

존 싱어 사전트는 미국 출신이었지만, 엄밀히 말하여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주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였다. 그는 마네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았으면서 모네의 방식도 따랐다. 아다시피 마네는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 ~1660)의 방식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마네의 화면 구성에는 그가 영향을 받았던 벨라스케스의 영향은 물론, 그런 영향을 주었던 이탈리아 바로크 화가 카라밧지오(Michelangelo Merisi Caravaggio, 1571~1610)의 방식 역시 읽을 수 있다.

그럼 카라밧지오는 누구였을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매너리즘(Mannerism) 말기, 그리고 바로크(Baroque)의 시작과 유행을 대표했던 카라밧지오는 그야말로 천재적 작가로, 이른바 키아로스큐로(Chiaroscuro)와 같은 극적 광선 효과를 만들었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화면 속 주요 인물에 광선이 집중되도록 하면서 그것이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비껴 나가며 그에 따른 효과를 만든 기법은, 그의 회화에서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는데 그것이 그 이후 전 유럽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벨라스케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등이 그런 방식을 따르면서 극적인 입체 속에 정리된 화풍을 만들어 서양 회화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다.

또한 카라밧지오는 그런 광선의 이용은 물론이고 화면 속에 이른바 극적인 구성(Dramatic Setting)을 만들어 보는 이들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주었는데, 이는 키아로스큐로와 달리 그만의 또 다른 독보적인 면모였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마치 중요한 영화 속에서 이루어질 법한 인물들의 극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진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것들 모두 군더더기가 없다. 어찌 그런 장면 구성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인지 감탄을 절로 하게 된다. 기독교를 주제로 하여 그가 만든 일련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그리스 고전에서 비롯된 그림들에서도 거의 연극에서의 멋진 무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렇게 연속적인 장면 중 잘 된 하나를 자르고 또 자른 듯이 구성한 모습(크로핑, cropping)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라서 이후 그를 따르는 작가들에게 큰 과제가 되었다.

그리하여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은 카라밧지오 방식의 장면 구성이 벨라스케스 등의 작가에게 이어진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이를 본받아 함께 고민하면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자가 바로 마네였으며, 그랬던 마네의 화면 구성은 존 싱어 사전트에게도 이어졌다.

1629년, 30살이 된 벨라스케스는 고향 스페인을 떠나 이탈리아로 갔다. 그는 2년간 주로 베니스, 피렌체 그리고 로마에서 머물면서 대가들의 여러 작품을 파고들었다.

1882년, 존 싱어 사전트 역시 베니스, 피렌체, 시에나 그리고 로마를 방문했는데 벨라스케스의 동선과 거의 겹쳤지만, 사실 그는 피렌체 태생이었다. 아무튼 사전트 역시 벨라스케스의 방식을 따라 고전 작품을 열심히 연구했다.

당시 벨라스케스는 어쩌면 단색의 그림까지도 찾아볼 수 있었던 환경 속에서 흙빛으로 이루어진 진한 톤의 그림들에 매료되었고 아울러 그 속에서 순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동세(動勢, movement)와 표정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림을 보면, 사전트는 좁은 광장과 그리 밝지 않은 베니스의 뒷 골목으로 보는 이를 안내하고 있지만, 이 장면 속에서는 미약한 한 줄기의 빛이 뒤쪽 건물들 벽면 위를 살짝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 낡은 옷차림의 여인은 그 지역을 대표하던 화가 티치아노(Titian)가 그렸던 미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언젠가 언급했듯이 이탈리아에서 인상파 화가들이 드물었던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이루어진 것 중 두 번째 것으로, 당시 사전트는 20대 초반의 나이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돌면서 그곳 거장들의 작품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베니스에서 광선과 그림자에 대한 연구에 집중했고 그곳 건축은 물론 그림자 속의 뒷골목과 그곳 사람들을 실험적으로 묘사했다.

그 역시 벨라스케스에 매료되었고, 베니스의 전문 사진 작가 카를로 나야(Carlo Naya, 1816~1882) 등이 추구했던 씰루엣(silhouett)과 가위로 잘라낸 듯한 장면 포착(cropping) 방식의 화면 구성에 큰 관심을 가졌다.

아무튼 파리로 보냈던 이 작품은 그저 진부하고 낡아 빠진 방식이라는 혹평을 받았고, 1887년 사전트는 작품을 결혼하는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한 여인이 베니스 뒷골목의 판석길(flagstones) 위를 자신의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면서 걸어가고 있다. 그녀의 오른편에는 마치 그림자와 같은 색상으로 두 남자가 어두움 속에 서 있다.

고개를 숙였기 때문에 내려보는 여인의 두 눈, 교차한 손, 두 남자 앞을 지나칠 때의 의도적으로 그리 빠르지 않은 발걸음은 그들의 주의를 피하는 듯하면서도 그들로부터의 관심 역시 보여주고 있다. 그리 튀지 않은 몸짓이지만 그녀가 걸친 숄과 밝은 빛 스커트에서 보이는 움직임으로 보아, 실제 그녀는 빠르게 그들 앞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작품을 후기 인상파의 방식으로 그렸는데 그런 방식은 여인이 입은 드레스, 건물 벽면에 그려진 넓은 붓터치와 함께 마치 사진을 잘라낸 듯한(cropping) 구성 등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사전트는 거리가 보여주는 건축적 측면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서 대신 인물들의 구성과 그것들이 만들어가는 스토리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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