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 #23] 매향에 취한 게이샤 담은 日쿠치에

창밖의 매화와 게이샤 미녀(Plum Beauty, Geisha Yonehachi, 芸者 米八), Hiresaki Eihō(鰭崎英朋), 1914, 25 x 38 cm 

우리보다 봄이 일찍 찾아오는 일본이라서 그들은 벌써 매화(梅花, plum)의 소식을 전하고 있다. 관련 판화 작품 하나를 보고 있는데 무척 아름답다. 이런 작품은 어떻게든 구입하여 간직하며 감상하고자 하는 생각이 굴뚝 같다.

작품의 형식은 쿠치에(Kuchi-e, 口絵)라고 하는데, 그것은 책의 표지 삽화로, 특히 1890년대에서 1910년대에 발행된 일본 로맨스 소설과 문학 잡지의 목판 인쇄 표지로 흔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쿠치에(口絵)라는 단어는 ‘입(口)의 그림(絵)’으로, 즉 ‘입구 그림’은 문학 작품(집)의 전면부를 말한다. ‘표지화’가 되어 책의 내용을 알리는 역할을 한 것이다.

쿠치에는 대체적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묘사했으며, 단행본의 책 등에 철해지거나 문학잡지에 삽입되어 독자에게 어떤 유형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상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주로 여성 독자를 대상으로 한 로맨스 소설의 목판화 형식 쿠치에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제작 방식의 일부는 석판화도 있었지만, 우키요에(Ukiyo-w, うきよえ, 浮世絵) 형식에 의한 채색 목판화로 이루어져 다른 유형의 문학(시가집) 등에도 적용이 되었다.

그리하여 1895년부터 1914년경까지 230명이 넘는 쿠치에 작가들이 활약하면서 인기 있는 문학 잡지들에 쿠치에 디자인이 정기적으로 소개되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최초의 대량 인쇄 간행물이라는 위치를 차지했다.

책자 대부분의 크기는 22 x 30 cm 또는 14 x 20 cm 정도이며, 먼저 언급된 것은 3분의 1로 접히고 뒤의 것은 반으로 접히게 되어 있다. 쿠치에 판화 제작의 일반적인 기준은 예상 밖으로 높았는데, 그 까닭은 목판화 기술이 최고로 발달한 시기에 제작된 것이라 판화 제작비가 책자 제작비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치에 분야는 대다수의 판화 수집가들에게 예술로서 과소 평가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매우 인기가 있어서 자주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봄을 기다리며 새로운 기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매화에 대한 상찬(賞讚)은 우리 글 속에서도 꽤 찾을 수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그림을 그려 남긴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까닭에 일본 우키요에에 감탄하게 된다.

아름다운 용모의 한 게이샤(Geisha, 芸者)가 창가에 앉아서 봄볕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자세히 보면 그녀는 봄볕뿐 아니라 매화 향기에도 취해 있다. 창밖에는 매화가 피어올랐고, 꽃봉오리 한 개를 따서 입에 문 그녀는 상념에 빠져 나무를 바라다본다. 그녀의 생각은 매화 향기를 따라 어디론가 멀리멀리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옷의 파랑색상은 마치 매화가 활짝 피어 있는 푸른 하늘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위 아래로 조금씩 보이는 그녀 옷의 빨강색은 이제 봄이 만개하면서 숨겨졌던 낭만이 활짝 펴질 것을 은유하고 있는 듯하다.

작자인 히레사키 에이호(Hiresaki Eiho, 鰭崎英朋, 1881~1968)는 우키요에와 니홍가(にほんが, 日本画) 작가이자 신문 삽화가로 츠키오카 요시토시(Tsukioka Toshimitsu, 月岡年光)의 제자였으며, 그의 또 다른 스승은 역시 유명한 전통 화가이자 판화가로 서구적 스타일을 개척했던 미기타 토시히데(Migita Toshihide, 右田年英)였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쿠치에 작가 중 선두에 있으면서 여러 소설, 신문, 잡지를 위하여 뛰어난 작품을 꽤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다이쇼(Taishō, 大正)와 쇼와(Shōwa, 昭和) 시대 일본화의 거장으로, 특히 비진가에 뛰어났던 카부라기 키요카타(Kaburagi Kiyokata, 鏑木清方, 1878~1972)처럼 히레사키 역시 미인화의 부활과 대중화에 전념했던 미술 운동의 일원으로, 인물의 미묘한 감정을 가장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표현하는 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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