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⑬] 에바 곤잘레스 ‘부채를 들고 있는 여인’
[아시아엔=김인철 미술평론가, 충북대 대학원 강사] 그림의 첫인상으로 일단 공간 속에서 떠다니는(浮游)듯한 장면을 느끼게 되는데, 이 점으로 인하여 일본 우키요에(Ukiyo-e, 浮世?, うきよえ) 스타일로 이루어진 작품임을 알게 해준다.
구체적으로, ‘우키요’(浮世)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둥둥 떠다니는 세상’이란 뜻으로, 굳이 그림의 내용을 따지자면, 현세의 이모저모를 그려낸 그림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지만 실제 형식을 살펴보면 매우 정교한 판화이며, 그 결과가 마치 한 장의 종이 안에 세상 모든 것들이 물에 의하여 떠 있는 듯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의 우키요에, 즉 정교하게 만들어진 채색목판화(彩色木版畵, Japanese color woodcut print)는 19세기 중반부터 미국과 유럽에 전파되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도자기와 의상을 비롯한 일본 물품이 앞다투어 시장에 소개되면서 이른바 ‘야포니즘’(Japonism)이라는 유행을 이루었고, 미술 세계 역시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
당시 고전파, 즉 아카데미파 화가들은 물론 특히 인상주의 작가들이 일본판화로부터 받은 영감에 따라 실험적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서구 현대미술의 근본 지형도를 바꾼 것이 바로 일본의 판화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리고 생리적으로 아카데미와 반대의 길을 걸었던 인상파 화가 마네(?douard Manet, 1832~1883)의 작품 중에는 의외로 일본풍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지만 그의 유일한 제자였던 에바 곤잘레스(Eva Gonzal?s, 1849~1883)의 이 그림은 거의 완벽하게 일본 우키요에 방식이다.
여성 모델이 들고 있는 부채로부터 시작되어 배경으로 몰입이 되며 합쳐지는 듯한 처리는 공간을 무시한, 일종의 떠있는 듯한 표현으로, 당연히 일본 판화 스타일이다.
모델의 뒤태를 보면, 그림자 처리로 인하여 실내에서 그려진 것이 분명한데, 앞쪽을 보면 벽쪽이 바다가 된다. 모델은 바닷가 모래 위에 서 있으면서 다가서는 배를 쳐다보고 있는 자세이다.
이렇게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어쩌면 모호한 처리는 좋게 말하여 환상적인 처리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투명한 옷 소매 속에 드러난 여인의 팔과 부채로 인하여 여름이라는 계절을 알게 된다.
아카데미 출신의 저명한 화가이자 미술 교육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마네는 누구를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그림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아카데미 출신 교사를 먼저 찾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네의 명성이 알려지면서 에바 곤잘레스의 부친과 연이 닿았다. 에바 곤잘레스의 아버지 엠마누엘 곤잘레스(Emmanuel Gonzal?s)는 꽤 알려진 소설가이자 극작가였고 관련 문인, 예술인들과 교류하면서 지냈기 때문에 마네와도 친했다. 어릴 때부터 그런 부친으로 인하여 파리의 명사들과 친숙했던 에바 역시 일찌감치 마네를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에바 부친은 마네로 하여금 딸의 교습을 맡아주도록 부탁했다.
그렇게 그림을 배운 그녀는 인상주의 작가였음에도 쌀롱에 출품하는 등 나름 경력을 쌓아나갔다. 또한 두 사람은 여러 번 이어진 인상주의 전시회에 한 번도 출품하지 않은 인상파 작가이기도 했다.
에바는 마네가 친구 에밀 졸라(?mile Zola)나 스테판 말라르메(St?phane Mallarm?)와 같은 문인들의 책에 삽화를 그릴 때 이를 판화로 만들어주던 판각가(engraver)이자 삽화가(illustrator)였던 앙리 게라르(Henri Gu?rard)와 결혼하였다.
그렇지만 스승 마네가 세상을 뜬 지 닷새 지난 후, 에바는 둘째 아이를 출산하다 안타깝게도 생을 마감하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 3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