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미술산책⑮] 푸른색의 화가 ‘외젠 얀손’

‘지붕 위로 뜨는 해'(Sunrise over the rooftops) 외젠 얀센(Eugène Fredrik Jansson), 1868년, 150 cm x 210 cm, Nationalmuseum, Stockholm

[아시아엔=김인철 미술평론가, 충북대 대학원 강사] 북유럽인에게 청색(blue)은 마치 운명과도 같은 색상 아닐까. 그들에게 푸른색은 숙명이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다. 특히 푸른 밤은 속절없이 길게 이어지는 겨울을 상징하는 색상으로, 어쩌면 그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상으로도 여겨진다.

그들이 지닌 눈동자도 역시 거의 푸른색이다. 푸른 눈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의 입장으로, 그것은 어찌 보면 두려움과 함께 냉정함, 이성의 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과 같은 푸른색임에도 죽음을 나타낼 수도 있다. 그들의 자연 역시 냉혹한 푸른색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노출되면 당장 그 잔인하도록 엄혹한 추위 속에서 죽을 수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푸른빛은 경외와 경고를 나타내는 이중의 부호로, 믿음이자 종교이다. 바로 삶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다.

외진 얀센(Eugène Fredrik Jansson)

외젠 얀손(Eugène Fredrik Jansson, 1862~1915)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 출신으로, 그곳의 청색과 그 그림자로 이루어진 밤의 도시풍경을 그린 화가로 알려져 있다. 일찌감치 푸른색을 주로 추구했던 까닭으로 인하여 ‘푸른색의 화가’(the blue-painter, blåmålaren)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얀손의 부모는 허드렛일을 하는 하층민이었지만 두 아들에게 자신들이 좋아하는 미술과 음악에 흥미를 갖게끔 이끌었다. 그리하여 외젠은 스톡홀름의 독일 학교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던 중 14살 무렵 성홍열에 걸리는 바람에 그 후유증으로 평생 시력, 청력 및 신장의 장애를 겪었다.

1881년 스웨덴 왕립미술학교(Royal Swedish Academy of Arts)에 입학하지만, 프랑스 파리로부터 받아들였던 그곳의 고전적 교육과정을 그리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후 1900년 주변 국가를 여행하면서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해 나갔다.

평생토록 어머니, 동생과 함께 스톡홀름의 남쪽 구역(Södermalm)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내려보는 스톡홀름 경치에 매료되어 그림의 모티브로 삼았다. 그곳은 구시가와 바다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에 썩 괜찮은 장소였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 1890년대부터 1904년까지 이루어졌는데, 푸른 색조의 하늘 그림자를 두드러진 붓 터치를 사용하여 서로 교차시켜 강조하는 기법으로 마무리한 밤 풍경이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방법은 단순해졌고 추상적으로 되어갔다. 그렇게 ‘푸른색’ 시대가 끝나갈 무렵 그림 속의 거리 불빛, 그것이 수면에 반사하는 모습 등을 분별이 어렵게 한 덩어리로 만들었다.

1904년 이후, 스톡홀름에 대한 개성적인 묘사로 꽤 알려져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그는 친구에게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몇 년간 전시회 출품을 중단하고 어린 시절부터 비롯된 질병과의 투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겨울에도 냉수욕을 할 정도로 부지런히 수영을 즐겼다.

외진 얀센 작 ‘Pushing Weights with Two Arms’

그러던 도중, 해군 목욕탕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그림의 소재를 발견했다. 운동기구를 들면서 신체 단련을 하며 일광욕을 하는 누드의 남자 선원들의 몸과 자세에 흥미를 가져 이를 그리기 시작했다.

한편 미술사가와 비평가들에게 동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에 대한 언급은 오랫동안 금기였다. 그러다가 그들은 나중에 그의 그림 속에서 당시 모델을 섰던 남자들과 관계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년간 작가와 관계 했던 아드리안 얀손(Adrian Jansson)이라는 친구가 그와 주고받은 편지와 서류를 모두 불태워 버리는 일을 일으켰는데, 바로 그때 제기되었던 스캔들의 증거를 없애기 위한 일로 추정되었다.
참고로, 스웨덴에서는 1944년까지 동성애가 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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