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철의 회화속 여성⑫] 프랑스 르네상스 이끈 마르그리트 왕비

나바르 왕비 마르그리트의 초상(Marguerite of Navarre, 앵무새를 들고 있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of a Lady with a Parrot), Jean Clouet, c. 1527, 59.8 x 51.4 cm, Walker Art Gallery, Liverpool

잔 달브레(Jeanne d’Albret)로 알려진, 프랑스 국왕 앙리 4세(Henry IV)의 어머니 조안나 알브레테코아(Joana Albretekoa), 즉 조안나 3세(Jeanne III)는 1555년부터 1572년까지 나바르 (Navarre) 왕국의 국왕이자 왕비였다.

그녀가 개신교의 지도자이자 중요한 인물이 되었던 직접적인 계기는 그녀의 어머니이자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Francis I of France)의 누나 마르그리트 당굴렘(Marguerite d’Angoulême, 1492~1549), 즉 나바르의 마르그리트(Marguerite de Navarre) 때문이었다.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나바르 왕국의 군주 헨리케 2세의 왕비로, 마르그리트 도를레앙(Marguerite d’Orléans),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 등으로도 불린다. 마르그리트는 앙굴렘 백작 샤를 당굴렘과 부인 루이즈 드 사보아 사이에서 첫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시인으로 유명한 샤를 도를레앙(Charles d’Orléans)의 조카였다.

마르그리트 당굴렘은 1509년 알랑송 공작 샤를 4세와 결혼했지만, 공작이 1525년 사망함에 따라 2년 뒤인 1527년 나바르의 왕 헨리케 2세와 재혼했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1남 1녀(잔 달브레)가 태어났다.

마르그리트는 인문주의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활동을 후원했을 뿐더러 당시 유럽에 불어닥친 종교개혁의 바람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초기 종교개혁자들을 보호했다.

열린 사고와 합리적인 마인드로 개신교에 거부감이 적었던 앙굴렘의 마르그리트는 프랑스 국왕이 되는 남동생과 더불어 그녀 역시 프랑스의 정치적 문화적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궁정 살롱을 열었을 정도로 지성적이었던 그녀는 이후 전개되는 부르봉 왕가에게 적지 않은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또한 그녀는 <엡타메롱>(Heptaméron)과 같은 저서를 남겼을 정도로 혁신적 인문주의자로, 프랑스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뛰어난 인물이었다. 후대의 한 학자는 그녀를 두고 ‘최초의 근대적인 여성(The First Modern Woman)’으로 평하고 있다.

그림 속 마르그리트 왕비는 한 손에 초록 앵무새를 들고 있는데 그것으로 인하여 왠지 이국적인 취향을 느끼게 되면서 상징 역시 따져보게 된다. 16세기 앵무새 역시 아메리카 신대륙에서 유입된 것이었을까? 하지만 유럽에 소개된 앵무새는 알렉산더 대왕이 인도 원정으로부터 가져온 것이 시초였다.

특히 초록색 앵무새의 모습은 중세 유럽 미술에서 더러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여러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흉내낼 수 있어서 이른바 ‘말하는’ 동물로 취급받았고, ‘앵무새처럼 말하기(parroting)’는 바로 신의 말을 전하는 성경(Word of God and the Bible)을 지칭하게 되었다.

또한 앵무새는 마리아의 무염시태의 상징(Immaculate Conception of Mary)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유명한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아이엑(Jan van Eyck)의 그림(Virgin and Child with Canon van der Paele, 1434-1436, Groeningemuseum, Bruges) 등에서 아기 예수가 작은 녹색 앵무새를 들고 있는 이유이다.
또 결혼의 순결을 상징하면서 가족의 의미로도 상징이 확대되었다.

비슷한 앵무새는 장 클루에(Jean Clouet, 1480~1541)가 그린 그녀의 남동생(프랑수아 1세)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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