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2세 영화①] 흥미로운 여왕의 사생활, 부부싸움 장면 압권

드라마 속 엘리자베스 2세


‘더 크라운 시즌 1~3′(상)

70년간 ‘군림(reign)하되 통치(rule)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별세했습니다. 여왕의 생애를 다룬 명품 대하 드라마 <더 크라운> 리뷰를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추석연휴 즐감하시길 추천합니다. <편집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일대기를 다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목이 ‘더 크라운(왕관)’인 이유가 뭘까? 왕관의 무게를 강조한 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실제 왕관은 상당히 무겁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53개국 영연방의 수장이자 최장수(94세) 최장재위(68년) 군주의 기록을 날마다 갱신 중. 현실정치의 권력은 없는 의전상의 국가원수지만 존재감은 대단하다.

왕실 ‘속살’ 등 인간적 면모에 초점

왕실의 ‘속살’을 다루는 드라마라서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기본 사실을 바탕으로 여왕과 왕실의 체면 손상을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드라마적 흥미를 가미하여 시종일관 군주와 자연인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왕의 모습, 즉 인간적 면모를 그리고 있다. 드라마에선 왕실이 시대 변화에 적응해나가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늘상 여론에 신경쓰는 모습이 강조된다. 왕실이 거저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30회까지 보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여왕의 남편과의 관계, 재클린과의 에피소드, 총리와의 관계였다.(상, 중, 하로 나눠 게재 예정입니다.)

흑백은 실제 여왕 부부이고, 칼라는 드라마의 모습

남편에게 ‘순종’ 공개 선서

여왕(클레어 포이 분)이 남편 필립공(맷 스미스 분)을 군대에서 처음 만난 것은 흥미로운 부분. 2차대전 때 미래의 군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여자국방군 소위로 자원입대하여 구호품 전달부터 차량 정비 업무까지 했는데, 이때 해군 중위인 필립을 만나 전쟁 뒤 연인관계로 발전한 것. 말하지면 연애결혼이다. 필립은 몰락한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출신으로 부모의 별거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누나는 나찌 가문과 결혼했다. 왕실 내 결혼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결혼식.

나, 엘리자베스는 필립공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함께 하고 섬기기를 (중략) 사랑하고 아끼고 순종할 것을 선서합니다.

아내에게 신하로서 ‘충성’ 맹세 

신부의 선서에 식장이 술렁인다. 이는 사전 합의에 의한 것. 대신 필립은 사석에서 “당신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것처럼 담배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다. ‘순종(obey)’은 성경에 나오는 아내의 의무지만 미래 군주로부터 공개적으로 다짐받은 것은 필립의 엄청난 성과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 성공한 그는 이후 부부관계에서 늘 ‘순종’ 선서를 기본으로 내세운다. 반대로 여왕 즉위 때는 남편이 무릎 꿇고 신하로서 충성맹세를 한다. 이 또한 여왕의 요구사항. 필립은 “나는 예외”라고 하지만 결국 수용한다.

나 에든버러 공작 필립은 평생 온몸을 바쳐 폐하를 신하로서 숭배합니다.

여왕은 남편에게 공적으로는 숭배(worship)를 받고 사적으로는 순종을 하는 관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자녀들 성도 아버지 따르도록 약속

필립은 자녀들의 성도 아버지인 자신의 성 ‘마운트배튼'(영국 귀화 때 받은 성)을 쓸 것을 여왕에게 요구하여 약속을 받아낸다. 그는 “내 성을 딴 왕조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처칠의 반대로 좌절한다. 이 문제를 논의할 때 여왕은 처칠에게

나는 여왕이지만 한 남자의 아내입니다. 나는 성공적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싶어요. 우리 가정의 안정은 국익에도 관계됩니다.

이렇게 말할 정도로 남편에 대한 지어미로서의 존중심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다.
변화의 바람을 관철시킨 대관식

여왕의 남편에 대한 존중은 대관식위원회 의장 임명으로 나타난다. 이것 자체가 관례를 깨는 것인 데다 “여왕이 무료한 남편에게 할 일을 주기 위해서”라는 반발을 산다. 필립은 전권 위임을 조건으로 수락한다. 그는 ‘새 시대 젊은 여성’을 중심 컨셉으로 잡고 관철시킨다. 덜 호화스럽고 더 평등한 모습을 연출한다. 진취적 변화의 바람을 실감케 한다는 것. 노조원들과 사업가들까지 초청 범위를 파격적으로 넓힌다. 특히 최초로 BBC를 통한 생중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 모든 것은 당시로선 혁신적 조치로서 “너무 격 떨어진다. 아이들 장난이냐. 대관식을 집에서 밥 먹으며 보는 게 맞느냐. 천년의 전통을 깨는 거냐”는 강한 반대를 부르지만 부부는 밀어부쳐 해낸다.

엘리자베스 2세


여느 부부처럼 토시락 토시락 싸움

아내에 묻혀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남자의 스트레스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일이다. 필립공의 이런 고뇌가 늘 표출된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것을 알고 스스로 선택한 결혼인 것을. 여느 부부처럼 둘은 자녀 교육을 비롯, 크고 작은 문제에서 의견차를 보이면서 자주 다툰다. 여왕이 부부갈등을 옛친구와 상의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적으로 보인다.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공 


유리컵 집어던지는 여왕

이들은 보통 부부처럼 늘 토시락 토시락 다투는데, 부부싸움 중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무슨 일로 말다툼을 하다 흥분한 여왕은 남편을 향해 유리컵과 라켓을 마구 집어던진다. 황급히 밖으로 피하는 필립을 여왕이 쫓아간다. 이 장면이 대기하던 영상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다. 화들짝 놀란 여왕은 정신을 수습한 후 카메라맨에게 다가간다. “내가 어떻게 하면 촬영한 것을 나에게 줄 수 있나요?” 카메라맨이 신사다. 세계적 특종을 쿨하게 포기한다. “예. 여왕님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요즘 시대라면 이런 장면이 나가는 게 오히려 좋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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