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2세 승계 찰스3세 ‘왕실 회의론’ 어떻게 잠재울까?

2018년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당시 찰스 왕세자(왼쪽부터), 그의 부인 커밀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해리 왕자의 부인 메건, 해리 왕자, 윌리엄 왕자, 그의 부인 게이트가 서 있다.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로 찰스 3세가 64년 간 ‘왕세자’로서 오랜 국왕 수습 기간을 끝냈다. 일찌감치 왕세자로 낙점돼 ‘준비된 국왕’으로 환경운동 등 활동을 해왔다.

다이애나 비와 이혼 및 의문의 사망, 사우디에서 거액 기부금 수수 등에 모친보다 대중적 인기가 떨어진다는, 아니 혹평이 꼬리를 물었다.

찰스 3세는 1948년 11월14일 여왕과 필립공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2년 여왕이 즉위한 이후 쭉 왕위 계승 1순위. 9살이던 1958년 ‘웨일스 왕자’(Prince of Wales)로 책봉된 이래 64년간 왕위를 학수고대했다.

찰스 3세 국왕은 케임브리지대를 나온 뒤 공군과 해군에 복무했다. 1981년 세계인의 호평을 받은 다이애나와 결혼했다. 다이애나의 인기는 뜨거웠지만 찰스 3세와는 불편했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결국 1996년 혼인 관계는 파탄으로 끝났다. 이듬해 다이애나가 국영 BBC 인터뷰에서 남편과 커밀라 파커 볼스의 불륜을 털어놓아 일대 파란이 일었다. 찰스 3세와 커밀라는 각자 결혼하기 전 뜨거운 사이였다.

다이애나가 파리에서 파파라치 탓으로 비명횡사 했다. 비운의 다이애나 추모는 찰스 3세 악평의 진원지였다.

찰스 3세는 2005년 커밀라와 정식 결혼했다. 올해 초 여왕은 커밀라를 왕비(Queen Consort)로 사실상 인정해줬다.

엘리자베스 2세(EIIR)는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고 영국민들에게도 담담하게 호소했다. 그러나 영국민의 마음을 누그러뜨리진 못하고 있다.

찰스 3세는 그동안 왕세자로 기후위기 대응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다. 그런 와중에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 가족과 사우디 기업인에게 거액 기부금을 받아 도마에 올랐다.

돈을 사적으로 쓴 건 아니지만, 후원하는 자선단체에 보냈다. 이 과정에 측근이 훈장 수여를 알선한 일도 불거졌다. 국정개입 의혹으로 구설에 오른 점도 우려 요인이다. 여왕이 정부와 국민 간 절묘한 균형을 지켰던 것과 대조적이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reign but not govern)는 원칙 말이다.

영국이 경제위기로 어려운 시기에 비호감의 늙은 국왕이 탄생했다. 당연히 우려의 목소리가 물밑에서 커지고 있다.

가디언은 “(찰스가) 여왕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인디펜던트 역시 찰스 3세의 즉위로 영국 안정성은 물론, 군주제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영국민의 통합에 여왕이 중추적이었다. 지금 그런 역할이 과거보다 더 절실하다. 그러나 젊은 세대일수록 군주제에 비판적이다. 지금도 잠복하고 있는 왕실 회의론이 커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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