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릴리벳”···세기의 장례식, 엘리자베스 여왕 하늘의 별로!
엘리자베스 2세, 윈저성 성 조지 교회당 안장
부모, 여동생, 남편과 함께 영면에 들어간 여왕
어릴 때부터 처지 잘 안 릴리벳, “나는 3, 너는 4!”
여왕은 윈저성을 평소 ‘집’으로 여겼다. 작년 먼저 하늘로 떠난 필립 공 곁으로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선친 조지 6세 부부와 동생 마거릿 공주와 나란히 안장돼 영면한다.
영국 버크셔 윈저성의 성 조지 교회 북쪽에 있는 석조 별관 ‘조지 6세 기념 예배당’. 19일(현지시간) 엘리자베스 2세는 향년 96세로 이곳에 안장됐다. 조지 6세 기념 예배당에는 여왕의 부모인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여왕의 동생 마거릿 공주도 잠들어 있다. 이번에 남편 필립공까지 교회 지하 묘실에서 이장돼왔다.
여왕이 생전 ‘집’으로 여긴 윈저성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안식을 맞게된 셈이다. 엘리자베스 2세 관이 이날 윈저성 성 조지 교회로 들어서는 순간. 앞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장례식 직후 여왕의 관은 윈저성으로 왔다. 윈저성 인근에서 장례 행렬은 재개됐다. 롱워크를 따라 5km 가량 행진하며 모여든 조문객들과 재차 작별했다.
그리고 윈저성 내부 성 조지 교회로 관이 옮겨졌다. 찰스 3세 국왕 등 왕실 일가들이 속속 윈저성에 합류했다.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지막 장례 의식이 거행됐다. 성 조지 교회에서 여왕의 제국 왕관(The Imperial State Crown)을 관에서 내릴 때, 눈물을 글썽인 사람들이 많았다. 여왕의 통치가 70년 만에, 마침표를 찍는 최후의 통과의례다. 여왕의 제국 왕관과 왕권을 상징하는 홀(笏·scepter)과 보주(orb)도 관에서 내려졌다. 찰스 3세는 관 위에 근위대 기를 올렸다. 여왕 의전장은 지팡이를 부러뜨리면서 한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 오후 7시 30분, 여왕 영구 앞에 마지막으로 왕실 일가들만 모였다. 작년 4월 99세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공 곁에서 여왕도 안식에 들어갔다. 여왕이 잠든 윈저성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40㎞ 떨어진 곳이다.
11세기 영국을 정복한 윌리엄 1세가 왕궁으로 건축했다. 사람이 거주하는 성 가운데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성 중 하나. 국왕의 관저이자 집무실은 버킹엄궁이다. 하지만 여왕은 이곳을 썩 좋아하진 않았다. 런던에 있을 때나, 크리스마스 때는 가능한 윈저성에 거주하려 했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외출이 제한됐던 시기 여왕은 이곳에서 머물렀다. 윈저성은 엘리자베스 2세의 피붙이들이 모두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조지 6세와 왕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엘리자베스·마거릿 공주는 서로 깊이 아끼고 위했다. 가족애가 넘치는 화목한 가문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기 어려워 해 스스로 ‘릴리벳(Lilibet)’이라고 불렀다. 가족 및 주변 사람들도 주로 이 애칭을 사용했다.
왕위와 관련 없는 종친의 삶을 살던 이들 가족이었다. 태어났을 당시 조지 5세의 첫 손주이자 큰아버지 에드워드 왕세자, 아버지 요크 공작의 뒤를 이어 계승서열 3위였다. 그런 만큼 그녀의 탄생은 대중에게 화제가 되어 많은 축복을 받았다. 하지만 일개 왕자의 딸인 방계 왕족인데다, 미혼이었다. 하지만 큰아버지 에드워드 왕 세자의 나이가 젊어 그녀가 여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조지 6세의 형인 장자 에드워드 8세가 이혼녀와 ‘세기의 결혼’을 하는 바람에 사정은 돌변한다.
그가 왕위를 포기함에 따라 릴리벳의 왕위 계승 순위도 확 바뀐다. 조지 6세가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조지 6세는 물론, 그의 가족들 중 누구도 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조지 6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끌며 과로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잦은 흡연으로 인해 건강도 좋지 않았다. 폐암으로 왼쪽 폐를 절제하기도 했고, 결국 1952년 57세로 숨을 거둔다.
이어 ‘릴리벳’이 왕위를 이어받아 70년 간 재위했다. 어린 엘리자베스가 마거릿에게 아버지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 마거릿이 “언니도 언젠가 여왕이 되겠네?”라고 물었다. 엘리자베스가 “그래, 언젠가는…”이라고 답하자, 마거릿은 “불쌍한 언니”라고 한 일화가 있다.
엘리자베스는 여동생 마거릿과 함께 어머니와 가정교사 메리언 크로포드에게 교육을 받았다. 크로포드는 “매우 예쁘지만, 고집세고 영악하다”고 그녀를 묘사했다. 수업은 주로 역사와 언어, 문학, 음악 위주였다고 한다. 크로포트가 저술한 에서 엘리자베스는 말과 개를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질서 있고 책임감 있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의 주변인들도 그와 비슷한 품평의 말을 했다. 2살 때 그녀를 본 윈스턴 처칠은 아내에게 “어린 아이가 놀라운 권위를 가졌고, 생각이 깊다”고 평했다. 이종사촌인 마거릿 로즈(Margaret Rhodes)는 “즐거운 어린 소녀이지만 근본적으로 분별 있고 예의 바르다”고 촌평했다. 어린 나이인 데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던 거다.
왕실에 전해오는 일화가 있다. 1933년 어느날, 엘리자베스가 여동생 마거릿에게 자신있는 말투로 “나는 3이고, 너는 4야!”라고 했다. 그러자 마거릿은 “아니야, 나는 3이고 언니는 7!”이라고 반박했다. 한참 뒤에야, 언니가 말했던 숫자가 나이가 아니라 왕위 계승 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엘리자베스의 계승 서열은 3위, 마거릿은 4위였다.
18세이던 1945년, 아버지 조지 6세의 허락을 받아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기에 영국군 여군부대인 ATS에 중위(subaltern)로 입대한다. 그후 대위(junior commander)로 진급했다. 릴리벳의 당시 임무는 보급차량 운행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2차대전 때 일개 운전병으로 참전한 것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비록 군에서 활동한 기간은 약 3주에 그쳤다.
엘리자베스 2세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마지막 국가원수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 공의 유해도 성 조지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른 후 왕실 지하 납골당에 임시로 안치돼 있었다. 남편의 사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거의 하객도 없는 장례식장. 그 의자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홀로 앉아 시름에 잠겨 있는 사진이 공개돼 영국민들의 가슴을 짠하게 했다.
암흑의 제2차대전 후, 엘리자베스 1세와 빅토리아 여왕을 잇는 새로운 ‘젊은 여왕의 시대’가 열렸다. 여왕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동화 속 여왕’으로 떠올랐다. 결혼한 지 5년도 안 돼, 조지 6세가 숨을 거두면서 바로 왕위에 오른 릴리벳. 그러다보니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에게는 많은 애정을 쏟지 못했다. 심지어는 1953년엔 아이들을 두고 남편과 함께 영연방으로 6개월에 걸쳐 순방을 떠났다. 당시 엘리자베스 2세는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을 보였다.
훗날 순방을 마친 후 버킹엄궁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상봉하던 순간. “아이들은 끔찍하게 예의가 발랐다. 나는 그 애들이 우리가 누구인지 정말 몰랐다고 생각한다.” 당시 올챙이 여왕이던 릴리벳의 가슴 저린 회고다.
“굿바이 릴리벳!” 여왕의 재위 기간 임명된 영국 총리만 무려 15명이었다. 첫번째 총리는 선친 때부터 전시 내각을 이끈 터프한 사나이, 위대한 윈스턴 처칠. 여왕에게 보고할 때, 예의에 어긋나진 않았지만 시거를 피워 물 정도로, 친구처럼 지냈다. 같은 여성인 마가릿 대처에게는 군기를 잡듯, 일부러 20, 30분 늦게 알현해주기도 했다.
여왕 임기 중 미국 대통령은 14명이나 교체됐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을 제외한 13명을 만난 바 있다. 앞서 여왕 서거 직후 버킹엄궁 쌍무지개가 화제였다. 왕실 공식 주거지 버킹엄 궁전 하늘 위의 쌍무지개에, 영국민은 “여왕의 마지막 메시지 같다”고 했다. 혹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 필립공이 여왕을 마중 나왔나 보다”라고 애틋한 말을 하기도 했다.
아듀! 릴리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