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 러시아가 외면하는 세계적 인물

고르바초프 저작 및 그를 다룬 출판물들

구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최초이자 마지막 대통령을 지낸 고르바초프(1930년 3월 2일 생)가 8월 30일 별세했습니다. 유종필 전 관악구청장은 13년 전 모스크바에 있는 고르바초프재단을 방문한 이야기를 <세계도서관기행>에 담은 바 있습니다. 유 전 구청장이 31일 아침 페이스북에 당시 방문기를 올렸습니다. 이에 일부 표현이 현재 시점으로 돼 있으나, 모두 과거 시제임을 일러둡니다. <편집자>

현대 러시아를 말하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은 고르바초프(Mikhail Sergeevich Gorbachëv)다. 서방세계에서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국제 뉴스에서 매일 빠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못할 뿐더러 서방에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으로 소련 국내의 개혁 개방, 나아가 동유럽의 민주화를 불러와 세계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가 가장 환대를 받는 곳은 독일이다. 그 덕분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1990년 그는 소련의 최초이자 마지막 대통령에 취임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는 공산당 신강령을 마련하는 등 개혁을 추진해 보수강경파의 쿠데타를 유발했고, 결국 옐친 주도로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이 탄생하자 사임했다.

지금은 고르바초프재단을 개설해 활동하지만 연중 절반은 강연 등을 하며 해외에서 보낸다. 한국에도 대통령 재임 때를 포함하여 여러 차례 왔다. 나는 2006년 광주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수상자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를 만찬석상에서 본 적이 있다.

바쁜 일정을 쪼개 모스크바 시내에 있는 재단을 직접 찾아가 보았다. 그곳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출판된 그와 관련한 출판물 수천 종과 자신의 저서들, 노벨평화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과 메달 등 화려한 과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와 그의 시대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은 반드시 찾아보아야 할 공간이다. 전자도서관도 운영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재단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자헛과 루이뷔통 광고에도 직접 출연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러시아에 고르바초프는 없었다.” 열 곳의 도서관을 탐방하면서 과거 황제들과 레닌, 스탈린, 옐친, 푸틴, 메드베데프의 족적은 수없이 접했지만,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만큼 국민과 권력에 의해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오직 자신이 만든 재단 안에서만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고르바초프재단은 ‘고르바초프의 섬’이나 다름없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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