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도시락 배달사업’ 유종필 관악구청장 “진정한 삶 시작되는 도서관, 나를 이끌었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유종필 서울 관악구청장은 2012년부터 머리에 물을 들이고 있다. 그를 만나는 이들이 거부감 같지 않느냐는 물음에 “짧은 인생, 언제 갈지 모르는데 즐겁게 살자는 게 내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이 행복해야 구민들도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종필 구청장과 기자는 1988년 봄,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안국빌딩 ‘한겨레신문 창간사무국’에서 처음 만났다. 기자는 한겨레신문사 공채 1기로, 유 구청장은 <한국일보>에서 경력기자로 한겨레에 온 것이다. 만 28년이 다 된 지금, 기자와 구청장으로 다시 만났다. 그의 튀는 행동은 여전하지만, 그제나 지금이나 여유와 생각의 깊이는 변함이 없다.
스트레스가 많을 것 같다.
“구청장을 하면 보람도 있지만 심신이 고되고 즐겁지 않은 일이 많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즐겁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복잡한 문제들은 어떻게 푸나?
“주민들 문제는 직접 만나서 해결한다. 공무원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주민들과 직접 부딪히는 걸 어려워 하고 골치 아프다 생각하는데 나는 거의 다 배짱으로 대응하는 편이다.”
오늘 아침 현관문 나오면서 무슨 생각하셨나?
“날이 추운데 걸을까 말까 고민했다. 하루에 무조건 만 보 이상은 걷는다. 구청에 오면 5층에 있는 내 방까지 무조건 걷고, 집은 3층인데 마찬가지. 건물 있는 곳은 항상 걸어다니니 1년에 에베레스트 산 높이 정도는 걷는다고 보면 된다. 지하철이나 버스 타는 대신 웬만하면 다 걸어다닌다.”
요즘 무슨 책을 주로 읽나? (그는 1994년 MBC TV만평 <단소리 쓴소리>(문예당)를 시작으로 <9남매 막내 젖 먹던 힘까지>(2003, 상상미디어), <세계 도서관 기행>(2010, 웅진지식하우스),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2013, 메디치미디어) 등 7권의 책을 ‘직접’ 썼다.)
“‘즐겁게 살자’는 주의자니까 책을 봐도 ‘어느 구청장이 잘하나’ ‘사회 어떻게 잘 만드나’ 그런 책 안보고, 그림이나 소설 건축 관련 책을 읽는다. 최근엔 양귀자씨가 쓴 책을 읽었다. <원미동 사람들> 조금 보다 말았는데 이번에 <슬픔도 힘이 된다>는 소설을 우연히 발견하고 읽었다. 1980년대 말 상황이 배경인데 읽을 만하더라.”
하루 일과는 어떤가?
“어떤 때는 점심 먹고도 나오고. 그리고 거의 6시 이전에 사무실에서 나간다. 사무실에 잘 없다. 집 아니면 동네, 서울대 캠퍼스에 우두커니 서있거나, 바깥 세상에 있거나. 안에 계속 앉아 있는 것보다 바깥에서 바람 쐐는 게 더 정신건강에 좋다. 머리가 맑아야 일도 잘 된다.”
정창교 관악구 정책실장이 얼마 전 카카오스토리에 “관악구에 도서관이 유종필 구청장 취임 전 5곳에서 43곳으로 늘었다는 글을 읽고 인터뷰를 하게 됐다.
“우리 도서관의 핵심은 ‘지식도시락배달사업’이다. 2014년 27만권, 2015년 31만권 정도를 배달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신청할 수 있다. 나도 이용 많이 한다. 장서는 59만권 정도 된다. 주민들이 찾는 책은 거의 다 있다. 민선 5기 취임 직후 관악구를 ‘책 읽는 도시’, ‘인문학 도시’로 만들기 위해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 만들기 사업에 적극 나섰다. 주민의 소득을 일시에 올려주거나 갑자기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는 어렵지만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은 돈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10분만 걸으면 누구나 도서관을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구청 1층에는 ‘용꿈 꾸는 작은 도서관’이 있다. 2012년 11월 문을 연 이래 하루 1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찾는다. 구청 근처에서 구두수선방 부부가 최고 단골이라고 들었다.”
구청장 하면서 제일 골치 아픈 일은 뭔가?
“재개발, 재건축! 재산권 문제가 제일 머리 아프다. 마르크스가 말하기를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잊어도, 내 재산 빼앗아 간 사람은 못 잊는다’ 그랬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평생 벌어서 땅 사고 집 샀는데, 그걸 헐고 짓느냐? 그런데 이게 다 주민들끼리의 싸움이다. 우리 주민과 다른 구 주민 싸우면 우리 주민들 편이나 들 텐데, 한 울타리 안에서 싸우니까 참 골치 아프다. 그래서 원칙대로 해결한다. ‘절대로 구청에서 어디 편들지 마라, 철저하게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진행해라’고 직원들한테 당부한다. 물론 그러니까 양쪽에서 다 불만이다. 전에는 구청이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요즘에는 부동산경기도 안 좋아서 하겠다고 한 사람도 지금은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구청장실에 ‘구정목표’ 같은 거 적은 액자가 안 보인다. (그때 주막 같은 집 앞에 키 큰 남성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사진이 눈에 들어와 물었다) 저 사진은 뭔가?
“돈키호테가 하룻밤 묵었던 주막 앞에서 찍은 거다. 뜬구름 잡는 돈키호테,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면서,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아라! 이게 돈키호테의 핵심이다. 짐승은 항상 땅만 보고 걷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나도 땅만 보고 걷더라. 쓰레기 혹시 있나 보면서. 나는 몸은 구청장으로 묶여있지만 영혼은 좀 자유롭게, 머리에 물도 들이고 그러면서 살고 싶다.”
민선 5기 4년과 6기 1년 반 재직 기간 동안 가장 보람 있던 일과 아쉬운 일은 무언가?
“우리 구에 등록된 장애인은 2만여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중 4번째로 많다. 그 중 90%가 후천적 장애인이다. 장애인복지과를 신설하고 ‘장애인복지관 건립기금 설치조례’를 제정해 평균 10억원 씩 31억원의 기금을 적립하고, 로또기금 17억원과 서울시 지원금 15억원을 유치해 지난 12월10일 복지관 건립 첫 삽을 뜨게 됐다. 2017년 1월 개관 목표다.”
2015년 12월 어느 하루의 동선을 소개해 달라. 그리고 그 가운데 느꼈던 감상은?
“12월8일 일정을 소개하겠다. 오전에는 6개국의 국장과 현안업무 부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장단회의가 있다. 그 후 동장, 통반장 교육, 동 주민 건의사항 등을 통해 수렴한 주민건의사항 처리결과 보고가 이어진다. 회의 후에는 올해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200여명에게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관악의 미래가 될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세계도서관기행’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등의 주제를 가지고 특강을 하는 것은 큰 기쁨이다. 엉뚱함과 창의성이 가수 싸이를 세계적인 스타로 이끈 성공 요인임을 강조하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모두가 스타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로 강의를 했다.”
인터뷰 말미 유 구청장이 기자에게 두권의 책을 전했다. 아주 감명깊게 읽었다는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과 자신이 2010년 쓴 <세계도서관 기행> 두권이다. <세계도서관 기행>은 작년 말 개정증보판 9쇄가 발행됐으며 이미 대만판이 나온데 이어 내년에 일본어판이 나온다고 한다.
그는 이 책 증보판 프롤로그에서 “도서관은 진정한 삶이 시작되는 곳이다. 책은 우리 내의 구석구석 산소를 공급해 준다. 나는 영혼이 이끄는대로 도서관 여행을 했고, 이제 도서관이 나를 이끌어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