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14년 전 ‘파리의 연인’과의 재회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

[아시아엔=유종필 국민의힘 서울관악갑 당협위원장, <세계도서관기행> 작가, 전 국회도서관장] 14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났던 나의 ‘연인’이 있다. 작년 11월 1일 시작해 3월 1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에서 다시 만난 그 연인은 다름 아닌 ‘외규장각의궤’다. 의궤란 왕실과 국가의 중요 행사에 관한 기록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2009년 여름 파리의 유서 깊은 리슐리에국립도서관에서 직접 안아보고 넘겨보았던 바로 그 고귀한 서적들을 한국 땅에서 다시 만나니 잔잔한 감회가 밀려왔다. 서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때는 약탈당해 이역만리에서 ‘피랍자’ 신세로 지내다 고국에서 면회 온 필자를 만났는데, 이번엔 고국에 돌아와서 필자를 다시 만난 것이니 서적들도 혼이 있다면 어찌 반갑지 않았겠는가.

14년 전 외규장각 의궤를 안아본 사람 2009년 프랑스 리슐리에국립도서관에서 반환되기 전 외규장각의궤를 안고 다소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자. 이번에 서울에서 다시 만난 이 멋진 ‘파리의 연인’과의 데이트는 한결 마음 편하게 이루어졌다. <사진 유종필 제공>

이 서적들은 병인양요(1866년) 때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 군함에 약탈당한 사실만 전해올 뿐 정확한 행방을 모르던 중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1929~2011) 박사에 의해 발견되어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서적들로 인해 지금 우리나라의 고속철이 프랑스산 TGV(떼제베)이다.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걸까.

이 서적들이 1975년 존재를 드러낸 이래 반환 문제가 한동안 한-프랑스 외교 현안이 되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가 고속철을 도입하기로 한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TGV를 팔기 위해 방한했다. 이때 외규장각 의궤 297 책의 반환을 약속하고 그중 맛보기로 <휘경원원소도감의궤>라는 책 한 권을 가져왔는데, 리슐리에국립도서관의 여성 사서 2명이 책을 가지고 따라왔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두 나라 대통령이 직접 반환식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사서들이 책을 못 내놓겠다고 고집 피우는 바람에 프랑스측에 초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외무장관이 장시간 면담 끝에 전달식 몇 분 전에야 사서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나타나 마지못해 책을 내놓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사서들은 귀국 후 책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내는 초강수를 두었고, 프랑스 언론들은 대통령을 비판하고 사서들을 지지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TGV는 팔고 의궤 반환 약속은 지키지 않아 한국측의 원망을 샀다. 그 후 숱한 교섭 끝에 145년 만인 2011년 프랑스 국내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영구대여 형식을 빌어 사실상 한국에 반환된 것이다.

순조순원왕후가례도감의궤.왕의 결혼식 행렬 장면이 천연색 사진처럼 실감나게 펼쳐지고 있다. <사진제공 유종필>

의궤 가운데 임금에게 올리는 어람용(御覽用)은 녹색 비단 표지와 놋쇠 변철(邊鐵), 최고급 초주지(닥나무 종이) 등 최상의 품질과 고귀한 멋을 뽐낸다. 반듯한 글씨체에 인물과 기물을 정교하게 묘사한 후 화려한 채색을 했다.

행사의 목적과 의의, 진행 과정, 참여 인물은 물론 행차 모습, 연주된 악기, 음식 등 물품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소요비용과 일꾼들의 품삯까지 상세히 기록하고 있어 가히 조선 기록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조선왕실 의궤에는 예법으로 바른 정치를 실현하고자 한 조선의 의례 경험과 통치 철학이 담겨 있다.

‘파리에서 돌아온 나의 연인’은 고국의 품에서 한층 품위 있는 멋과 향취를 내뿜고 있었고,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연인과의 데이트를 즐겼다.

아직도 귀환하지 못한 기구한 운명의 의궤 한 권
영국에서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만난 추억을 소환하다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 군함에 약탈당했다 우리나라에 반환된 297 책의 외규장각 의궤와 달리 홀로 떨어져 아직도 이역만리 타향살이 중인 한 권의 의궤가 있으니 이것이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이다. 순조가 할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 경춘전에서 열었던 잔치에 관한 기록이다.

3월 19일까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외규장각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특별전을 둘러보던 필자는 이 기구하고도 귀한 책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더구나 다른 의궤들과 달리 손으로 만질 수 있게 전시되어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소장자인 대영도서관의 협조를 받아 거의 비슷하게 만든 복제품이었다. 이 복제품 의궤는 필자가 2009년 대영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추억을 소환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 복제본(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수많은 외규장각의궤를 열람 신청해서 보고 대영도서관에 갔을 때 도서관측은 뜻밖의 의궤 한 권을 내놓았다. 당시 필자는 프랑스에 약탈당한 의궤는 알았지만 영국에도 조선왕조 의궤가 있는 줄은 몰랐다.

대영도서관측에 소장 경로를 물었더니 1891년(피탈 25년 후) 파리의 한 치즈상점에서 10파운드(한화 약 2만원)에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책장을 넘겨보면서 또 한번 놀랐다.

프랑스에 있는 의궤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답고 다채로운 도화(圖?)가 수십 장 들어 있었다. 당시 임금 내외와 임금의 할머니, 신하들과 궁녀, 악공 등 각급 복식(服飾)은 물론 잔치의 대형과 다양한 궁정 악기의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혜경궁이 참석자들에게 꽃 한 송이씩을 하사했다는 사실, 그리고 꽃의 모양을 종류별로 그려놓았다. 한 마디로 최상품 의궤라 평가할 만하다. 더욱이 이 의궤는 단 한 권만 있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다른 의궤들은 ‘같은 내용 다른 품질’의 책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왕과 세자, 신하 등 바치는 대상에 따른 격차 때문)

추측컨대 영국에 있었기에 반환 대상으로 거론도 되지 않았고, 지금까지 고국에 귀환도 못한 운명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장물(贓物)이므로 반환 대상이 된다. 이제 영국에 반환 요구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순조가 할머니인 혜경궁 홍씨에게 큰절을 두 자리 올리는 애니메이션의 장면

일반 대중에게 이번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는 맨 마지막에 있다. 기사진표리진찬의궤의 도화를 바탕으로 궁중 잔치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여 상영하는데, 궁중음악과 더불어 실감 나는 잔치 모습이 절로 흥을 돋운다.

임금이 살아 있는 할머니에게 큰절을 두 자리 올리는 것이 이채로웠다. 특히 외국인들이 여럿 보고 있었는데 슬쩍 훔쳐보니 흥미로운 표정들이었다. 주최측의 아이디어와 성의가 돋보인다.

의궤 반환 막으려 대통령에 맞선 국립 도서관 사서

앞서 1993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TGV(떼제베) 고속철을 한국에 팔기 위해 방한했을 때 ‘맛보기용’ 의궤 한 권을 가지고 따라왔던 국립도서관 사서들이 서적을 내놓지 않으려고 눈물 범벅이 되었고, 귀국 즉시 항의성 사표를 냈다고 소개했다.

기사를 읽은 한 언론계 인사는 필자에게 전화 해 “사서들의 분투가 눈물샘을 자극하더라”고 했다. 미테랑 방한 16년 후인 2009년 필자가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그 사서들과 관련해 겪었던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다.

파리 센 강변에 책을 반쯤 펼쳐 세워놓은 듯한 모습의 프랑스국립도서관. 특수유리로 둘러싸인 20층 건물 네 개가 지하로 연결된 가히 압도적인 건축물이다. <ⓒ Alain Goustard>

프랑스국립도서관은 지하로 연결된 네 건물 합계 80층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 거대한 지식의 탑에 들어선 필자는 여름휴가 중인 관장 대신 사서 부문 총국장을 만나 한국과 프랑스 도서관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이 도서관을 나와 외규장각 의궤들을 만나기 위해 리슐리에국립도서관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안내역인 국제 담당에게 “국립도서관 안에 1993년 미테랑 대통령과 함께 한국에 왔던 사서가 지금 근무하고 있나요?”라고 무심코 물었다가 전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좀 전에 만났던 사서 부문 총국장이 그때 그 사서입니다.” 순간 놀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그래서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어쩐지 화통하지 않은 느낌을 주었구나. 내가 방금 전 만난 자클린 상송 총국장은 16년 전 의궤를 못 내놓겠다고 버티며 한국 TV에 눈물범벅 얼굴을 보였고, 귀국 즉시 “사서의 직업윤리에 반하는 행위를 강요받았다”는 성명과 함께 사표를 내며 대통령과 맞섰던 바로 그 사람이었던 것이다.

1993년 방한한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을 수행하여 외규장각의궤 한 권을 가지고 왔던 프랑스국립도서관의 사서 자클린 상송. 2009년 필자가 프랑스국립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사서 부문 총국장이 되어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방한 당시 의궤 반환에 반대했으며, 귀국 즉시 항의성 사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나는 그와의 대화 서두에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 차원에서 가벼운 인사말을 건넸다. “한국 사람들은 프랑스산 TGV를 애용하고 파리 바게트를 좋아한다. 한국은 물 좋기로 유명하지만 에비앙 생수를 비싸게 사서 마실 정도로 프랑스에 우호적이다.”

나의 유머 섞인 말에 상대는 예상과 반대로 굳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TGV 부분이 그의 아픈 과거사를 건드렸던 모양이다. 당시는 외규장각 의궤 반환 전이라서 한국인이 프랑스 사람에게 TGV를 거론하면 경제적 이익만 취하고 약속은 안 지킨 것을 비난하는 것으로 여겨져 콧대 높은 그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었다. 더욱이 자클린 상송은 대통령의 약속을 무산시킨 장본인 아닌가.

그로부터 2년 뒤 우여곡절 끝에 의궤 297책이 반환되었지만 과거와 달리 국립도서관측의 특별한 반대 행위는 알려진 바 없다. 도대체 ‘사서의 직업윤리’가 뭐기에 자클린 상송은 대통령을 비판하며 사표까지 냈을까.

사서(司書)란 한자로 책을 맡아서 관리하고 지킨다는 뜻이다. 정치 경제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한번 입수된 자료는 절대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 사서의 직업윤리다. ‘지식 내비게이터(navigator)’로서 고전에서 최신 지식까지 취급하므로 과거엔 노자, 프란시스 베이컨 등 동서양 막론하고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이 사서 역할을 했다.

정조 때 왕실도서관인 규장각 내 검서청에서 정약용, 이가환, 유득공, 박제가 등 최고의 실학자들이 검서관(檢書官)이란 직명으로 사서 역할을 했다면 그 위상이 짐작이 가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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