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반대 성향 두 교황의 1박2일 ‘독한 썰전’ 결과는?

영화 ‘두 교황’ 포스터

[아시아엔=유종필 영화산책자, 전 관악구청장, 전 한겨레신문 기자] 세계적 찬사가 이어지는 ‘눈부신 걸작’.

보수와 진보의 대척점에 있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베르고글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의 대화 내지는 언쟁과 토론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시쳇말로 ‘독한 썰전’을 방불케한다. 카톨릭 신자 아닌 사람이라도 ‘보편적 세상 이야기’로 봐도 무방할 듯. 필자도 종교적 시각보다는 그냥 세상이야기로 보았는데, 길고 깊은 여운이 남는다. 종교든 정치든 무엇이든 무릇 지도자라면 상대 진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시사하는 바 크다. 공존이란 무엇이며, 지도자의 포용력이란 어떤 것인지….

세상사에 애초부터 무슨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나. 구분은 무의미하다. 보수 진보 가운데 어느 하나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다. 옳은 보수가 있고 그른 보수가 있다. 옳은 진보가 있고 그른 진보가 있다. 보수든 진보든 개별 행위 하나하나에 옳고 그름이 있을 뿐이다. 실제 베네딕토16세 명예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 ‘두 교황’의 공존은 2천년 역사상 두 번째다. 스타일과 성장 배경, 성격, 인생관은 물론 종교관, 당면 현안 등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이 1박2일 한 공간에서 지낸다면 매우 불편하지 않을까. 더욱이 이들은 교황 선거에서 맞선 전력이 있다. 만나고 나면 오히려 관계가 악화되지 않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불꽃 튀는 접전이 벌어진다. 그러나 결국 인간미 넘치는 감동 스토리로 마무리된다. 베네딕토16세 교황은 종신직인 교황직을 사임하고 정반대 성향의 비판자인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에게 평화적인 ‘교권’ 교체를 만들어준다. 경탄 자아내는 명품 연기 영화는 사실에 기반한다. 그러나 두 종교지도자의 대화는 비공식적인 것이라서 시나리오 작가의 창의적 작품이다. 전혀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관련 자료를 최대한 찾아 상상력을 입혔다고 한다.

교황역의 앤소니 홉킨스와 추기경 역의 조너선 프라이스의 연기는 경탄할만하다. 실제 인물의 걸음걸이와 손짓 발짓, 어투, 표정 등을 철저히 연구, 연습하여 실제에 가까운 빙의에 성공했다. 다큐로 착각할 정도로 완벽 연기를 선보인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로 평가받는다. 세트로 만든 시스티나성당 내부 모습도 그럴싸하다.

영화 ‘두 교황’ 스틸컷

전통주의자와 개혁주의자의 진검승부
교황 재임 8년째인 2012년, 추기경은 은퇴 허락을 받기 위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로마행 비행기 표를 끊는다. 때마침 교황은 추기경을 초대한다. 알고 보면 전혀 다른 의도인데 우연의 일치로 때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두 사람은 교황의 여름 별장 정원에서 가벼운 대화를 시작한다. 교황은 전통과 의식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인 반면 추기경은 소탈하고 파격을 좋아하는 개혁주의자다. 교황은 소싯적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소박한 요리로 혼밥을 즐기는 반면 추기경은 사람들과 어울려 길거리 식사를 하고 아바의 ‘댄싱 퀸’과 탱고, 축구를 즐기는 등 자유분방 스타일이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한치 양보 없는 토론과 언쟁
추기경이 공식 숙소가 너무 커서 입주하지 않은 데 대해 교황은 “혼자만 청렴하면 다른 성직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된다”라며 일침을 놓는다. 동성애 문제와 이혼자에게 성체를 주는 것도 의견이 상반된다. 교황이 “집도 담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하자 추기경은 “예수님이 담을 지었나요?”라고 반문한다. 추기경은 “시대는 변화를 요구하는데 교회가 못 따라간다. 양심적으로 홍보할 수 없는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이 되고 싶지않다”고 재반박하고, 교황은 “교회가 세속과 결혼하면 다음 세대엔 과부가 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교황은 “변화라고 하는 것은 타협”이라며 전통 고수 신념을 밝힌다. 추기경은 “주님께서 주신 삶은 변화하는 것이고, 심지어 주님도 변한다”라고 반박한다. 교황은 “2천년 전통이 있는데, 주님이 자꾸 움직이면 어디 가서 찾을 수 있나?”라고 재반박하는 등 말과 말, 논리와 논리가 부딪친다.

“우린 달라도 그냥 형제이고 싶다”
산책을 하던 두 사람은 드디어 인화성 강한 교황청의 현안 이슈로 넘어간다. 추기경은 교황 측근의 기밀문서 유출과 바티칸은행 부정, 성직자들의 아동성착취 사건 등을 거론하며 교황의 미온적 대처를 비판한다.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은 심한 언쟁을 벌인다. 교황은 강한 어조로 “지금까지 어느 것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방어벽을 친다. 이들은 토라져서 각자 다른 길로 헤어지고, 저녁식사도 따로 한다. 카톨릭 최고 어르신들도 싸울 땐 어린애 같다.

식후 또 만난 두 사람. 은퇴 서류를 내미는 추기경에게 교황은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우린 아주 다르고 이견도 많지만 오늘 밤엔 그냥 형제이고 싶다.” 그리고 피아노로 스메타나의 자장가를 연주해 준다. 추기경의 조크에 교황은 소리 내어 웃는 등 좋은 분위기로 하루를 마감한다. 추기경이 “기도할 때 담배 피워도 되나요? 라고 물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담배 피울 때 기도하면 되나요? 라고 물으면 된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지요” 하자 교황은 “나는 늘 혼자였는데 같이 있으니 좋네”라고 화답한다. 이 대목에서 서로 다른 것은 놔두고 공통점을 찾는 ‘구동존이’(求同存異)가 떠올랐다.

다음 날 시스티나성당에서 만난 두 사람. 교황은 전혀 뜻밖의 말을 꺼낸다. “나는 물러나겠소. 당신이 적임자요.” 추기경은 깜짝 놀라 “교황은 사임할 수 없는 자리”라며 강하게 만류한다. 교황은 “주님은 항상 새로운 교황을 보내 이전 교황의 잘못을 시정한다. 어떻게 내 잘못을 바로 잡는지 보고 싶다. 내 의도는 순수하다”며 사임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이런 말까지 한다. “지난 수개월간 그만두고 싶었지만 당신이 선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만두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이 오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당신 스타일은 나와 다르다. 말하는 거나 생각, 행동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왜 당신이 필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축제에서 베네딕트 교황(왼쪽)과 프란치스 교황의 다툼을 패러디한 무대가 시민들의 이목을 끌었다. <사진=EPA/연합뉴스>

토론 통한 상호 존중과 포용
아니, 이렇게 솔직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만두고 싶어도 당신이 교황 될까 봐 그만두지 못했는데,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 생각이 바뀌었고,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당신이 필요하다니….” 인간사 대부분 다르기 때문에 반목 대립하고 싸우고 배척한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독단이 횡행한다. 정치권도 상대를 적으로 대한다. 우리 편은 무조건 옹호하고 상대 편은 무조건 배척한다. 심지어 다른 진영 간에는 ‘팩트와 진실’도 다르다. 하지만 다르기 때문에 서로 필요하고, 그래서 여·야도 상호 필요한 존재 아닌가. 이치는 어렵지 않은데 실천은 왜 이리 어려운가.

교황은 심지어 “교회는 변화가 필요하고 당신이 그 변화일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대화와 언쟁과 토론을 통해 어느새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포용한다. 교황은 추기경의 비판을 수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추기경은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고백하면서 자신은 자격 미달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시절 국민과 성직자 수만명이 죽어나갈 때 성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재정권과 타협한 일을 고백한다. 이에 교황은 “당신은 신이 아니라 인간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 교황의 인간적 모습 깊은 울림
두 사람은 헤어지면서 깊은 포옹을 한다. 이때 추기경은 교황에게 탱고를 가르쳐주며 우정을 나눈다. 그 뒤 교황은 사임하고, 콘클라베에서 추기경이 1차 투표에서 교황에 선출된다.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의 선택이지만 교황의 분위기 조성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속세로 말하면 보수-진보 간 평화적 정권교체의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 새 교황과 직전 교황(명예교황)이 2014년 브라질월드컵 결승전 독일-아르헨티나 전을 함께 TV로 보면서 각자 조국을 응원한다. 와인으로 건배하고 일희일비하는 게 천진난만한 어린이 모습 그대로다. 종교 이전에 두 교황의 인간적 모습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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