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창간10주년④]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IT-장애인 잇는 컨트롤 타워 구성을”
아시아기자협회를 주축으로 20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창간한 온라인 아시아엔이 지난 2022년 2월 22일 오후 2시 창간 10주년 특별포럼 ‘Next Leadership Toward Active ESG’을 개최했습니다. ‘Next Leadership Toward Active ESG’는 반기문 제8대 유엔사무총장의 기후위기, 탄소중립, ESG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 이어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전 유엔대사)의 진행으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이사장 ‘위기의 한국경제와 동반성장 그리고 ESG’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이화여대 석좌교수) ‘생태적 전환과 ESG’ △박영옥 주식농부 ‘한국의 자본시장, 기업 거버넌스 개선 방향’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기술 개발’ △이석우 두나무(업비트 운영사) 대표이사 ‘블록체인이 만들어가는 ESG 세상’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 ‘공간의 양극화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의 재구성’ 순으로 주제발표 및 질의응답을 가졌습니다. 아시아엔은 연사들의 주제발표와 행사소식 등을 연속해서 전합니다. -편집자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기술 개발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함께 사는 기술 개발이 ESG하고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최재천 교수님의 은사이신 에드워드 윌슨 하버드.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님이 인간의 지구정복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분을 존경해 책을 읽었는데 이런 내용이 있어요.
생물진화라 하면 일반적으로 적자 생존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는 거예요. 인간은 집단을 이루고 그 안에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왔습니다. 집단이라는 단위가 더 우수하고 보호할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집단을 지키기 위해서 싸웠고 노력했다는 거죠. 그래서 적자 생존이 아니라 그룹 셀렉션이었다고 합니다.
25만년 전 1%도 안 되던 소수의 호모사피엔스가 집단을 이뤄 서로서로 도왔기 때문에 오늘날 지구의 강자가 됐다는 얘기입니다. 인류는 항상 사회적 약자와 함께 가면서 성공했고, 앞으로 위기가 닥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생존 전략이 돼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중도 장애인입니다. 15년 전 미국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의료비가 한 열다섯배 비쌉니다. 하루 비용이 약 2300만원, 한 시간에 100만원꼴이었어요. 너무 비싸서 빨리 나왔는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니까 제가 아주 유명해졌어요. 사실은 돈 때문에 이렇게 빨리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제가 특별한 줄 아셨던 거죠.
제가 장애인이 되기 전에는 (사진 속) 저런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사고 이후에 <0.1그램의 희망>이라는 책을 썼는데 사람들이 “0.1이 어디 나오냐 아무리 책을 읽어봐도 0.1이란 말이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 제 옆에 계신 최재천 교수님께서 서평을 써주시면서 그 0.1g의 의미를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제가 서울대 교수 임명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자리에 계신 정운찬 총장님 덕분이었습니다.
컴퓨터는 신이 장애인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합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혁명적인 도구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들은 주저없이 핸드폰 문자라고 할 것입니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ICT기술은 장애인에게 눈이 되고 귀가 되고, 또 거대한 정보의 세계와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저는 15년 전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었지만 이런 정보통신 기기 덕분에 불편함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장애인의 3대고통, ICT 기술로 해결
일반적으로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적인 어려움, 그리고 장애인이 생기면 누가 돌보야 하는가에 따른 가족 간의 갈등이라 하는데 이를 장애인이 겪는 3대 고통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정보통신(ICT) 기술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장애인 복지 관련 기술은 늦을수록, 늦게 시작할수록 세계를 선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다녀보면서 제일 지하철이 불편했던 곳이 런던과 파리였고, 제일 좋은 곳은 대만과 싱가포르였습니다. 늦게 도입했기 때문에 그만큼 더 좋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우리나라가 이 분야애서 세계 1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가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립생활과 고소득 직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많은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있었지만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장애인들도 소극적이었습니다.
장애인에게 제일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직업입니다. 지금까지 보면 비장애인들이 꺼려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것들을 주로 장애인들이 맡아서 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생산되는 것들을 국가가 구매하기도 했고요.
근래 AI 관련 기술이 뜨면서 수많은 데이터를 레이블링 하는 작업을 장애인들이 하고 있습니다. 일반사람들은 지루해서 잘 못하는 그런 일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음성을 통해 아주 고도의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태비스 루드와 데이비드 윌리엄스 두 사람이 시작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는데, 이 사람들은 장애인을 위해서 기술을 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컴퓨터 작업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손을 다쳐서 생계를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건 관련 동영상입니다. 왼쪽은 사람이 손으로 친 거고 오른쪽은 똑 같은 코드를 음성으로 코딩한 것입니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고도의 프로그래밍을 할 경우 고소득 직업을 가질 수 있고, 이들의 삶도 엄청나게 개선될 것입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다음 정권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준비해 왔습니다. 1990년대말 김대중 대통령께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컴퓨터를 세계에서 제일 잘 쓰는 국민으로 만들겠다”고 하시면서 정보문화원을 신설하셨습니다. 그런데 2010년 이명박 대통령 때 그 기관이 통폐합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때는 조금 이른 감이 없지 않나 싶었는데 사회적으로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면서 정작 필요한 시기에 그 기관이 없어 참 아쉽다는 생각을 합니다.
4차산업 붐, 그러나 장애인은‥
최근 정부에서는 4차산업이라고 난리인데 여기에 장애인에 관한 제도나 지원은 없습니다. 다음 정부에서는 IT와 장애인을 잇는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장애인도 재택근무로 빅데이터 처리 및 공공데이터 분석 등의 일을 하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코로나19로 많은 분들이 재택근무를 체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중증 장애인들이 집에서 위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장애인들의 소득과 자존감은 올라갈 것이며, 국가는 정말 필요한 곳에 복지 비용을 투입하는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음성 인식을 통한 고도의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술은 날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실 수 있지만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이 가능합니다. 정부와 사회가 관심 가져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상묵 해양학 교수.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나 이를 이겨내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 불리며, 장애인용 보조 기기를 직접 개발·보완해 왔다. ‘지식의 경계에서 바라본 지구 미래’를 주제로 열린 지구환경 국제포럼 조직위원장을 맡으며 국제적으로도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국제중앙해령연구협의체 의장을 맡고 있으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