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창간10주년①]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기업간 상생협력이 ESG 성공의 관건”
아시아기자협회를 주축으로 20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창간한 온라인 아시아엔이 지난 2022년 2월 22일 오후 2시 창간 10주년 특별포럼 ‘Next Leadership Toward Active ESG’을 개최했습니다. ‘Next Leadership Toward Active ESG’는 반기문 제8대 유엔사무총장의 기후위기, 탄소중립, ESG을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 이어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전 유엔대사)의 진행으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이사장 ‘위기의 한국경제와 동반성장 그리고 ESG’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이화여대 석좌교수) ‘생태적 전환과 ESG’ △박영옥 주식농부 ‘한국의 자본시장, 기업 거버넌스 개선 방향’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기술 개발’ △이석우 두나무(업비트 운영사) 대표이사 ‘블록체인이 만들어가는 ESG 세상’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 ‘공간의 양극화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의 재구성’ 순으로 주제발표 및 질의응답을 가졌습니다. 아시아엔은 연사들의 주제발표와 행사소식 등을 연속해서 전합니다. -편집자
위기의 한국경제와 동반성장 그리고 ESG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안녕하십니까? 정운찬입니다.
오늘 아시아엔의 ESG 컨퍼런스에서 동반성장과 ESG를 주제로 발표를 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의 저성장 및 소득양극화에 따른 문제를 동반성장 모델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 한국경제는 어려운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장기성장률은 하락하고 소득분배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교육의 창조적 인재 육성은 실패하고, 대·중소기업 양극화, 공동체 정신의 약화 등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게 하는 조건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동반성장을 제도화하는 노력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저는 2012년에 동반성장연구소를 설립하여 ‘소상공인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시작으로 갑을 문제, 교육 문제, 남북한 문제, 지역간 문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 노사 문제, 세대간 문제, 남녀 문제, 디지털혁신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80회 이상의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동반성장의 제도화에 필요한 연구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동반성장이란 무엇이고, ESG와는 어떤 관계를 갖는 걸까요? 이 물음이 바로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문제의식입니다.
먼저 동반성장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동반성장, 빼앗아 나누는 것이 아닌 분배 규칙의 보완
‘동반성장(Shared Growth)’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자’는 사회 철학입니다. 인류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 집단, 국가 사이를 ‘동반자’ 관계로 조성하여, 공동체가 지속 가능하도록 운영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동반성장은 어느 일방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승자 독식의 경쟁’을 배제하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당한 몫이 돌아가는 ‘협력적 경쟁’을 추구합니다.
동반성장에서 말하는 ‘함께 나누자’라는 것은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없는 사람에게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경제 전체의 파이는 크게 하되 분배의 규칙은 조금 바꾸자는 것입니다.
동반성장이 자본주의에 위배된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동반성장은 이익 극대화를 견제하자는 것이니 자본주의와 반대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입니다. 동반성장은 이익극대화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동반성장은 승자독식의 이익극대화를 견제합니다. 승자독식은 자본주의의 바람직한 참모습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자본주의는 대주주 중심주의에 의해 지배되고 있습니다. 대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유일한 기업 목표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생각이 대기업들의 중소상공인들에 대한 부당한 관행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론으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고객과 근로자, 협력업체에 성과가 합당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한국의 자본주의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모습입니다.
동반성장은 그 개념이 매우 넓습니다. 대기업·중소기업 간 동반성장뿐 아니라, 빈부 간, 도농 간, 지역 간, 수도권·비수도권 간, 남녀 간, 국가 간 동반성장 등 매우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은 남북한 간 동반성장의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었고, 서울대학교가 입시제도로 채택하는 지역균형선발제는 지역 간 동반성장을 위해 고려한 것입니다. FTA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국가 간 동반성장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변화, 경제적 불평등 심화·양극화 초래
동반성장의 철학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에 맞닿아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경제와 사회가 조화와 균형 속에서 발전하려면 세 가지 덕(virtue), 즉 현려, 정의, 인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려(賢慮, Prudence)’의 덕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과 이들이 모인 시장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정의(正義, Justice)’의 덕과 ‘인혜(仁惠, Beneficence)’의 덕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아담 스미스는 각자가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면서도 개인의 내면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가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사회의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무한 자유를 제어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공정한 관찰자 역할을 확대하여 정부가 독점이나 매점매석, 폭리 등의 불공정한 사태에 개입해 공정을 유지토록 하는 것을 ‘정의’의 덕이라 했습니다. ‘인혜’의 덕은 한 예로 ‘경제활동을 할 자유’가 없는 소외계층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만을 좇더라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왜곡한 것에 불과합니다.
스미스는, ‘정의’는 경제사회의 기둥이며 ‘인혜’는 그 지붕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담 스미스의 이 두 가지 덕은 또한 동반성장의 기둥이자 지붕입니다. 동반성장은 이 두 가지 덕에 기대어 승자독식을 지양하고 상생 협력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자본주의 경제 질서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 왔습니다. 아담 스미스 시대의 고전적 자본주의는 개인의 공정한 관찰자 개념을 국가로 확대한 케인즈적 자본주의를 거쳐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을 극대화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변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아담 스미스가 강조한 정부의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은 부정되고 ‘개인의 자유로운 경쟁’만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능력주의와 실력주의란 명분으로 승자독식의 이윤추구만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였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 바로 동반성장입니다. 동반성장은 신자유주의와 달리 개개인을 상호작용의 관계를 갖는 공동체 사회 구성원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동반자’ 관계로 설정합니다. 동반자 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대등한 관계로 함께 살아가는 관계를 말합니다. 동반성장은 아탈리(J. Attali)가 말한 이타적 이기주의를 기반으로, 개인과 사회를 분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복, 나아가 공동체 사회의 행복을 함께 추구합니다.
이제 동반성장과 ESG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동반성장과 ESG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습니다. ESG가 추구하는 가치는 동반성장이고, 동반성장은 ESG를 통해 실현될 수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ESG는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의 약자입니다. ESG는 지구와 지구를 토대로 삶을 영위하는 우리 인간들이 직면한 위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해결 방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E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따른 것으로, 기업생산활동의 외부성(externality)을 내재화하고 에너지전환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기후 위기는 미래 인류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심각한 세대간 불평등을 초래합니다. S는 기업이 더 이상 이윤에만 얽매이지 말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good citizen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래로 철학이 담당해 오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 경제학이 철학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소위 이윤을 중시하는 경제적 가치는 사회적 가치를 협소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가치가 없거나 적더라도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맑은 공기와 물이 그렇고, 아담 스미스가 역설한 도덕감정이 그렇습니다. 이윤의 원천이 되지 못하는 이들의 경제적 가치는 시장에서 거의 혹은 전혀 인정되지 못하지만 인간의 삶이 유지되고 건강한 사회공동체를 위해서는 절대적입니다. 맑은 물과 공기가 사라진 이후에야 그 가치를 알게 된다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소득양극화가 심화되어 더 이상 사회의 존립이 불가능한 때에 이르러서야 정의와 인혜의 가치를 알게 된다면 이 또한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shared value 즉 동반가치를 경제활동의 목적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이윤극대화 대신에 동반후생극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윤을 낳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는 시장감정(market sentiments)을 넘어 동반가치를 실현하지 못하면 시장가치 또한 가치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도덕감정(moral sentiments)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도덕감정의 회복을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자연인과 기업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동반성장을 위한 사회적 계약(social contract)을 추진해야 합니다. 사회계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 방식에 따라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ESG의 G가 주장하는 핵심입니다. 흔히들 G를 corporate governance 즉 기업지배구조로 이해하는데 이는 G의 일부입니다. 물론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만 기업 차원으로만 제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E·S 지향가치, G·E 실현 위한 제도
E와 S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한다면, G는 E와 S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입니다. 인간과 제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 시장의 실패, 정부의 실패가 발생하듯이, E와 S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로서의 G를 구축하는 것 역시 많은 시행착오가 따를 수 있습니다. E와 S를 추구하는 기업 중에는 훌륭한 성과를 내는 기업이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실적이 부진함에 따라 CEO가 경질되는 사례도 있습니다. 또한 오랜 기간 동안 시장가치에 대한 집착과 이를 정당화하는 제도의 존재로 인하여 ESG를 추구하는 기업활동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ESG를 이용하여 겉보기에 그럴싸한 포장으로 부실을 숨기는 ESG Washing 사례도 있습니다.
이름은 ESG 인베스트먼트이지만 그 투자대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직면한 전환기적 상황에서 ESG의 추구는 절박하지만 과도하게 서두르기보다는 하나하나 실체로서 성숙되고 완성해가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저 서둘러 될 문제가 아닙니다. ESG의 실천을 위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해야 합니다. 진정으로 ESG를 추구하는지 여부는 동반 가치를 존중하고 파트너기업과 동반성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여부에 의해 판단될 수 있습니다. 각 기업이 파트너기업과 사회에 대한 자신의 외부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를 해소하고자 노력하는 상생협력이 바로 ESG 성공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정운찬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경제학도의 필독서인 ‘경제학원론’과 ‘거시경제론’을 집필했다. 제40대 국무총리, 제23대 서울대학교 총장, 제22대 KBO 총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동반성장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우리 사회에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