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칼럼]② 관료주의·획일주의가 ‘봉우리’를 죽인다

과학기술과 리더십: 원칙으로 돌아가자

봉우리를 기르기 위한 두 번째 과제 ‘인센티브 시스템’

봉우리를 길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교육과 함께 중요한 것이 과학기술정책 차원에서의 지원을 포함한 과학자에 대한 인센티브 시스템 정립이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시켜서 좋은 과학자가 될 자질을 다 갖춰도, 아무도 과학자가 되려하지 않는다면 과학기술계의 봉우리는 나올 수 없다. 과학기술자가 충분히 대접받는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차이는 엄청나다.

중국 명나라는 과학기술의 최첨단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과학기술이 황제의 권력에 도전하는 수단이 될 것을 우려해서 과학기술을 배척하기 시작한 후 중국의 국력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반대로 유럽에서는 어느 나라가 과학기술자를 핍박하면 다른 나라에서 이들을 모셔와 국력을 키우는 식으로 경쟁을 벌이며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세계사를 이끌어나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이공계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고 있지만 똑똑한 학생들은 과학기술자보다는 안정적인 고소득 직종을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다. 인센티브 시스템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은 매우 광범위하게 유익한 외부효과를 갖는다. 외부성에 따른 시장 실패를 교정하는 차원에서도 과학기술자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시스템을 통해 봉우리가 될 재목을 키웠다고 해도 이들이 과학기술자로 진정한 봉우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토양과 제대로 된 과학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관료주의와 획일주의는 봉우리가 될 재목들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특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서 단기 업적주의는 근원적인 지식을 창출하는 봉우리들의 출현을 돕기보다는 단기적 지엽말단적 지식만을 양산하는 데 적합한 인센티브 구조를 제공하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봉우리를 기르기 위한 세 번째 과제 ‘과학기술정책’

교육을 보완하여 봉우리를 길러내는 인센티브 중 중요한 축을 이루는 과학기술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도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 젊은 과학자, 아직은 업적이 많지 않으나 새로 시작하는 유망한 젊은 과학자들에게 정부가 지속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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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연구비가 업적중심으로 지원되다보니, 업적이 뛰어난 과학자가 된 후에야 비로소 연구비를 따기 쉽다. 업적도 없고, 잘 할지 못할지 모르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무모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우리나라의 연구 잠재력을 믿고 과학자의 풀(pool)을 크게 하겠다는 목표로 과감하게 투자해야만 한다.

또 연구는 벤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늘 상기해야 한다. 열 군데 연구비를 투자하면 좋은 결과는 한 군데만 나올 수도 있다. 좋은 결과가 나온 연구에 따른 우리 사회의 이익은 엄청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연구들에 들어간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게 된다. 실패를 두려워말고 가능성 있는 많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국가가 과감하게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사실 정부가 지원한 대부분의 연구가 계획대로 결과가 잘 나왔다고 보고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커다란 문제이다. 의미 있는 연구들은 자원을 투입하면 1년 뒤에 100%의 확률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연구는 인내심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과학자를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 연구비 지원은 3~5년 지원해 주고, 매년 연구결과를 평가하여 하위 20~30%에 대해서는 중간에 지원을 중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식의 근시안적인 연구비 지원은 오직 낮은 수준의 연구 혹은 사이비연구만을 양산할 수 있다.

국제수준의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연구비를 주고 그것이 잘 되었나를 1~2년 뒤에 저널에 실렸는가로 평가한다면, 게재하기가 쉬운 저널에 출판할 인센티브만 생기고 따라서 손쉬운 수준 낮은 연구만 할 인센티브가 생기게 된다. 과학자들에게는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입증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과 연구비가 필요하다.

셋째, 기초 연구가 튼튼해야 세계적인 응용연구 결과도 나올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정부와 기업연구소에서 응용연구를 강조하고, 연구비도 기초연구보다는 응용연구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기초과학 분야의 새로운 지식창조 없이는 독창적이면서 영향력 큰 연구가 이뤄질 수 없다. 비록 가시적이지 않을 수는 있으나 과학발전의 근간이 될 수 있는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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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너무 빨리 변한다. 기술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도 너무 빨리 바뀐다. 미국 대학들은 1970년대에 이미 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졸업 후 3~4년이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대적인 대학개혁에 들어갔다. 개혁의 아이디어는 응용적인 것을 좁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기초적인 것들을 넓게 가르치자는 것이었다. 미국이 1990년대에 역사상 가장 큰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1970년대의 교육 개혁에 있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미국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보고되고 있다.

넷째, 과학기술정책이 연구업적이 뛰어난 과학자에 의해 만들어질 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과기부나 교육부의 행정직 공무원이나, 더 이상 연구를 수행하지 않는 교수들이 만드는 정책보다는, 현재 실험실에서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내고 있는 교수가 느끼고 생각하는 방향이 우리나라 과학발전을 위하여 더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과학정책 결정에도 리더가 되어야 한다.

연구의 질적 평가 능력이 전혀 없는 관료들이 행정편의주의에 따라 저널게재논문수와 같은 양적 잣대로 연구를 평가하고 이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역선택의 문제가 일어난다. 이 경우 연구비 지원 규모가 커질지라도 나라 전체 과학계의 연구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하게 저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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